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I'm hungry…….


……. 사막을 달리는 트럭위에서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I'm hungry. (나 배고파)


주변의 친구들이 흠칫거리며 놀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트럭위에서 사막의 앞만 주시하고 앉아있던 흑인 아저씨. 영어 한마디도 못한다면서 내가 하는 영어는 다 알아듣는다.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아프리카 언어로 친구들에게 뭐라 설명하는데 친구 녀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배가 잠깐 고픈 거야, 많이 고픈 거야?"
많이 고프다는 개념은 알겠는데. 잠깐 고프다는 것은 또 뭐야. 조금 고민된다.
밥 먹은 지 대략 서너 시간. 하릴없이 트럭위에 종일 앉아 있기는 하지만 배고플 때 되지 않았나?
조금 고픈 것 같다고 말하니 흑인아저씨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냥 참아~"
누군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기분이 나쁘다. 그냥 배가 고프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리고 상냥한 대답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그냥 참으라니.


니제르 전역에 대학은 단 하나 뿐이다. 그곳에서 교육받는다는 자칭 엘리트 놈이 내게 영어로 설명해준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배고프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지금 내 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할거야. 우리는 죽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면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아,라고.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 현지어에는 "춥다, 덥다"나 "배고프다"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다만 "영혼이 뜨겁다" 정도의 표현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음을 뜻한다고 한다. 또 내일이라는 단어대신 "사라진다."정도의 표현이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면 문학적이고 낭만적이라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프리카 현실만이 보이는 지금, 내게 있어서 이들의 언어는 비극적인 표현으로만 느껴진다.



니아메이의 주유소. 더위에 지쳐 늘어지다가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I'm hungry…….
사실 배고프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그냥 내 말버릇들 중의 하나다. 난 그냥 지루함을 참지 못해 말한 것 뿐인데.

일꾼들 역시 순간 긴장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일꾼 중 한명은 의외라는 목소리로 부자인 내가 배가 고프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대답하고 또 한명의 친구는 갑자기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I know that. It's very bad. (나도 알아 그거. 정말 끔찍하지.)

나는 또 말실수를 한 것 같다.
사실 사하라 사막에서도 하루 종일 불어로 "쇼"(더워)를 외치고 다닐 때 모두의 표정이 안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얘네들한테는 영혼이 뜨겁다로도 해석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만 불어가 짧으니 그 이유를 몰랐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르완다의 거지들은 어땠던가.
거리에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그들이 귀찮아서 I'm hungry라 대답했을 뿐인데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속닥거리더니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 콜라와 짜파티를 사주었었다.

설마 얘가 정말로 돈이 없겠어? 하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I'm hungry 라는 문장이 그들의 내면 무엇인가를 건드린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을 외국인에 대한 단순한 호의일 것이라 해석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었던 나도 나지만...지금 생각하면 내 무심함에 눈물이 날 것 같은 추억이기도 하다.



나는 돈 없이 하는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도의 빈민촌과 중국의 외국인 출입금지구역을 드나들면서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보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가난의 의미는 많이 다르다. 단순히 물가가 싸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물건을 만들 공장도 없고 곡식을 키울 농장도 없고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상점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가난이다.

전 세계의 폐품들이 모이는곳.. 운송비만으로도 물가는 살인적인데 아무도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만약 돈이 있다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복지시설을 짓고 장애아들을 마음놓고 키우는 것은 어떨까. 물론 내가 남을 잘 돌보는 성격이 아니니 장애아라도 스스로 생활하는 것은 가능해야 한다. 개개인에게 사랑을 주지 못할지라도 세상을 크게 보면서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이루고 싶다. 부족한 장애시설로 입양은커녕 고아원조차 가지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많다던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꿈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만약 내가 돈이 있다면...

아프리카에 자동차 공장을 지어주고 싶다.
문짝이 떨어지고 의자가 없는. 폐차보다 심각한 중고차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자동차로 최소한 EU에서 지원하는 생필품만이라도 운송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교통수단이 좀 더 원활하게 된다면 hungry의 현실도 더 나아질 테니까.

하지만 분명 망하겠지. 공장을 짓는다 한들 기술이 문제고, 새 차를 살만큼 돈이 있는 소비자도 없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국제 사회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면서 자동차 공장을 짓는다는 것도 웃기는 일일지 모르겠다. 설사 만든다고 한들 단 한대라도 팔수 있을까.



그래서 꿈은 꿈이다. 이래서 세상은 현실적 능력이 없는 꿈을 망상이라 했던가. <뉴스제주 제휴사/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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