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3의 기상

 

세상(世上)을 끌고 가는 것은 그 제도(制度)와 기술(技術)과 인성(人性)이다. 그러나 그 제도(制度)를 만드는 것도 인간의 일이므로 결국에는 인성(人性)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인성(人性)이 제도(制度)를 만들고 또 그 제도가 인성이 빗나감을 막아준다. 또한 기술이 좋은 인성과 만났을 때 문명은 발전할 것이요, 기술이 나쁜 인성과 만났을 경우에는 파멸(破滅)을 초래하는 결과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하겠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그 기본적 가르침을 인성人性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어 왔다. 시대의 고비 고비마다 인성(人性)과, 인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공동선(社會共同善)의 문제를 들고 나와 타작마당에 펼쳐 놓곤 하였다.

지역적으로는 의식개혁(意識改革)이나 정체성 확립 등을 주제로 하여 흥분하였고, 세계적 차원으로, 또는 국가적 차원으로는 인간개조(人間改造),인간개혁(人間改革), 인간혁명(人間革命)등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현자들은 동분서주(東奔西走) 하였다. 그들은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인류애(人類愛)에 입각한 지순한 사명감으로 인류구원(人類救願)을 위하여 온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강단에서, 생활현장에서, 책으로, 사자후(獅子吼)로 그 당위성들을 토로하고 있다.

종교(宗敎)는 종교대로, 철학(哲學)은 철학에 의해, 예술(藝術)은 예술로, 학문(學文)은 학문 나름대로 인간(人間)이, 인류(人類)의, 행동철학과 행동지침들을 열성적으로 내 놓고 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어찌 돌아가고 있는가, 현자들이 노력만큼, 종교나 철학들이, 그 인류애에 입각한 피나는 노력만큼 세계는 현상유지라도 되고 있는가.

점점 더 세상은 사나워지고 사기나 강 · 절도, 테러와 반테러, 전쟁들은 자기들만의 정의를 주장하며 더욱 더 절벽을 깎고 지구의 발밑을 파먹고 있다,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한다 하였다. 정의를 위하여 일어섰노라 하였다. 본질보다는 방법론이 팽창하여 자기들만의 방법론으로 지구를 쪼개고 있다.

또 한편, 한 쪽에서는 굶어서 죽고, 또 한 쪽에서는 너무 잘 먹어 살쪄서 죽는 괴상한 부조화가 한 하늘 아래 수두룩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의 백년지계(百年之計)라는 교육은 인성(人性)교육(敎育)에 대한 장기적(長期的) 비전하나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체 어린 동량(棟樑)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며 우왕좌왕 하고 있다.

더우기 한국의 정치는 사색(四色)당파(黨派)의 생리적(生理的) 후예(後裔)답게 이겨먹기 위한 정쟁(政爭)으로 필요질서(必要秩序)를 외면한 채 패거리 질서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민들의 자존심과 분통과 좌절을 끝까지 무시하는 철면피한 어리석음으로 국민들이 지켜보는 토론광장 마당에서 조차 웃통 벗은 이겨먹기 작전에 창피 자체를 모른다.

그 직책(職責)에 상응(相應)하는 지혜와 사명감(使命感) 자체가 없는 것이다. 영혼(靈魂)이 없다. 국민들이 주는 고운 밥만 받아먹으면 되는 것이고 혈세는 내 돈이 아니므로 어떻게 쓰든 떼어 먹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인 것 같다.

비록 정열은 있다하나 철학(哲學)이 가늘고 경륜(經輪)이 짧아 흥분만 앞선다. 정열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감성(感性)과 이성(理性)이 분리 현상만 초래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인간상(人間像)의 체질화를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족정기(民族精氣)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민족정기가 허약하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듣고 학습하기 때문이다.

교육받은 의식을 육체적 활동을 동반하여 무의식에 스며 들도록, 자율신경계(自律神經界)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암기식 학습만으로 머리 교육만 시켰기 때문이다.

열열한 강단에서 피가 끓어오르게 듣고 그 때에는 주먹을 불끈 쥐나 그것은 그 때 뿐이다.

반복강연에 의해 지식(知識)은 쌓일지 모르나 지혜(智慧)에 이르지는 못한다.

지식(知識)이라는 것은 주변의 연관되는 지식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활에도 연결시키지 못할 때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창고에 가득 쌓여 변질 가능한, 썩거나 녹아 없어져 버릴 철 지난 생물에 다름 아니다. 머리로만 교육받는 인성(人性)이라는 것은 체질화 되지 못한 상태에서 위급상황에 처할 경우 惡(악)의 정보(情報)가 침투(侵透)하면 그 정신 분리현상이 나타나 동물적 성질이 나타나거나, 극단적 행동으로까지도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배우지 않은 상태만큼도 못한 것이다.

악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뇌 속에는 악(惡)의 정보도, 선(善)의 정보(情報)도 다 들어 올 수가 있다.

선(善)의 정보가 중추신경은 물론 자율 신경계에까지 뻗어 확고한 체질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악마의 정보가 머리에 까지는 들어온다 해도 정신적 육체적 내공(內功)이 생겨 악마의 정보를 배척하게 되는 것이다.

고상한 인간상의 체질화, 육화(肉化)된 기상(氣像)이라는 말은 이러한 정신적 육체적 내공(內功)과 저력(底力)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이렇듯 인류(人類)를 구원(救援)하려는 말씀이나 도구들은 무척이나 많다. 종교(宗敎), 철학(哲學), 예술(藝術), 문학(文學), 과학(科學)에 이르기까지 그 많음과 그 방대함으로 본다면 인류는 수 백 번이나 구원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인간은 수 백 번이나 개조되어 이 세상은 환상이 세계가 펼쳐져야 할 것이다.

- 눈이 밝은 자는 천차만별(千差萬別) 속에 평등(平等)을 본다. - 장자

필자가 이 "탐라의 청풍(耽羅의 淸風)"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근본 목적은 첫째로 제주 섬을 발견하고, 둘째로는 제주섬에 자신감을 주는 논리의 개발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 다음 세 번째로는 이를 근거로 하여 21세기의 첨단문명 시대에 상응하는 고상한 인간상(人間像)의 체질화(體質化)에 있다. 이는 비단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한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이기도하다. 이 자체가 세계정신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에 의한 이상적 꿈의 연상 작용과 그에 따르는 육체적 동작에 의해, 오감과 육감이 合一되어 자율신경계에까지 도달한, 확고한 신념(信念)이 체질화(體質化)된 그러한 기상의 확립에 있다.

인간이 머리로만 기억된, 그 때 뿐이거나 위기나 혼란이 닥칠 때 흩어질 가능성이 있는 임시성 기상이 아니라 자율신경계에 까지 파고들어 육화(肉化)된, 강한 정신체, 그러한 잘 단련(鍛鍊)된 영혼(靈魂)을 말한다.

이러한 체질화의 동기를 만들어 주지 못함으로 인하여 세계의 현자들이, 종교가, 철학이, 예술이나 학문이 따로 따로 아날로그적 주장들이 合一된 기상전선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서, 그 좋은 말씀이나 웅변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사장(死藏)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상 확립의 그 전 단계로 새로운 인간상(人間像) 형성이 지향점(指向點)을 정하고 그 지향(志向)하는 이념(理念)들을 형상화(形象化)하여(꿈의 시각화) 눈으로 직접 보게 하면서 (1차적 동기 부여)

일상적, 현실적 " 모델 경험"을 통하여 (2차적 동기부여) 저절로 학습이 되고 체질화되게 하자는 것이다.

21세기의 첨단문명(尖端文明)시대는 특히 인성(人性) 자체가 강조되는 시대이다. 컴퓨터 등 첨단기기 사용이 대중화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첨단기기의 잘못된 사용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핵폭탄이나 모든 가공할 파괴 무기들도 모두 컴퓨터로 작동한다.

- 이 세계를 상상도 할 수 없는 파멸에서 구하고자 한다면 머나먼 신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아인슈타인

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함으로서 생겨나는 신 자유주의의 물결은 경쟁적 첨단의 문명과 합세하여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다. 문명 자체가 문명(文明)을 파괴(破壞)내지 인간성(人間性) 상실(喪失)이 위기(危機)에 까지 내몰릴 판이다. 이럴 때일수록 인간의 감성이 독주하는 이성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문명의 체질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 경쟁적 물질 문명 시대를, 정신(精神)문명(文明)이 시대로 전환(轉換)해야 한다. 지상계와 인간계(人間界)를 공히 아우르는 상생적 정신문명의 시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도 또한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폭넓은 조화(調和)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적(人類的) 보편성(普遍性)과 인간적 영성(靈性)이 결합된 새로운 인간상(人間像)의 체질화는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이 탄생하게 될 새로운 인간상을 필자는 감히 제3의 기상이라고 부제(副題)를 붙여 보는 것이다.

제1의 기상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원시 농경문화 시대의 기상을 말한다.

제2의 기상이란 감성(感性)의 주관을 벗어나 이성(理性)이 중심이 되어 사회를 끌고 나가는 산업사회, 기계문명이 시대적 기상을 말한다.

이성(理性)의 뿌리는 감성(感性)이다. 생명적 감성의 온도를 먹고 자라는 것이 바로 이성(理性)이다. 이 理性이 독주하여 감성에서 멀어진다면 이성자체의 생명이 없는 것이다. 경쟁적으로 독주하는 이성의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강한 모성(母性)으로 제동을 걸어 조화롭고 폭넓게 풍성한 인간상을 확립하자는 것이 바로 제3의 기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3의 기상이란 감성과 이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 체질화된 기상을 말한다. 풍부한 감성과 냉철한 이상이 융합된 기상을 말한다.

감성과 이성이 따로 따로 방을 쓰는 아날로그적 조합이 아니라 감성과 이성이 한 방을 쓰는 디지탈적 융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영상은 필름에, 문자는 종이에, 소리는 음반에 저장하는 것과 같은 아날로그적 조합이 아니라 영상이나 문자나 소리가 0과 1, 또는 on-off의 2진법에 의한 단일 통로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디지탈적 융합을 의미한다.

풍부한 감성과 냉철한 이성이 서로 한살이 되어 자동적으로 서로의 독주를 제어하고 서로를 강하게 지탱시켜 주는 그러한 체질화된 기상을 말한다.

고상한 기상(氣像)은 고상한 인성(人性)의 뼈대를 이루며 고상한 인성(人性)은 그 시대의 시대상과 맞물려 그 시대의 이상적(理想的) 인간상(人間像)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