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건너고 꽃을 구경하며


봄바람의 강 언덕길을 가다보니 어느덧 그대 집에 이르렀노라


 


명대 초 고계高啓의 「호은을 찾아서」라는 시이다. 인생은 만남의 여로라는 말이 있지만, 이 시에서의 물, 꽃, 강바람이 모두 만남들이며, 마지막 연의 ' 어느덧 '은 바로 마지막 만남인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독서주간이 다가왔다. 독서는 '만남' 가운데서도 가장 기쁜 만남이라 말한 한 선철의 교훈을 되새겨 본다.


책과의 만남 『부생육기浮生六記』를 처음 만난 것은 『석천 오종식 선생 추모문집』에 들어 있는 선우휘씨의 글 덕분이었다.


언젠가 취안이 몽롱한 선생이 '선우, 『부생육기』를 읽어봤어?' 하시기에 ' 거, 뭡니까? '했더니, '이 무식한 것 봐. 중국의 고전 소설 『부생육기』도 모르면서 무슨 문학을 한다고 해?' 하시더니 이튿날 암파문고의 일어판 『부생육기』를 갖다 주셨다는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일본의 친지에게 부탁하여 책을 입수했다 『부생육기』의 작자는 청조대의 심복 이란 사람이다. 한 무명 독서인 작가가 진운이라는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추억한 심경 소설을 비롯하여 취미생활, 여행기 등의 수필을 한데 묶은 작은 부피의 책이다.


부생은 '뜬 세상 꿈과 같다' 는 이백의 시구를 인용한 것일 게다. 자기의 반평생을 돌이켜보며, 즐겁고 슬펐던 일들을 있었던 그대로 허식 없이 적나라게 표현한 글이다.


그런 진실성 때문에 도리어 전통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특히 진운이라는 사랑스러운 여성에 대한 묘사는 독자의 뇌리에 싶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다.


대석학 임어당은 그의 「생활의 예술」이라는 글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여인상으로 추부와 진운을 꼽으면서 『부생육기』중 다음 글을 소개하고 있다.


' 어느 때는 정원사에게 부탁해서 울타리 밑에다 국화를 심으라고 했다. 9월이 되어 꽃이 피자 운과 함께 열흘 동안을 다시 그곳에 머물렀다. 모친도 역시 기뻐하시며 그곳에 찾아왔다. 다 함께 그곳에서 축국연을 열고 국화 옆에서 게를 먹으면서 하루를 즐겼다.


이런 일에 어리둥절해진 운은 감격 어린 말투로 '우리도 언젠가는 여기에다 꼭 집을 한 채 지어야지요. 땅을 한 열 평쯤 사서 집 주위에 먹을 채소와 수박을 심도록 해요. 당신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수를 놓아 그걸로 술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가면 다른 곳으로 가서 사는 것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합니다. 나도 전적으로 그 말에 마음이 쏠렸다. 집을 지을 만한 장소는 아직도 거기 있는데 내 마음알아 줄 사람은 벌써 고인이 되었다. 아아 ! 이것이 인생인가! '


이 구절은 작자가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망처 운에 대한 추억을 쓴 부분이다.


사대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 관직을 마다하고 오직 청빈과 아내와의 사랑을 위해 방랑했던 작자의 영적인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만남'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되지만, 일어판의 역자가 해설문에서 밝힌 한글판을 구해보자고 여러 해를 별러 오면서도 여태 뜻을 못 이루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 처럼 어떤 책이고 쉽게 구독할 수 있는 서점이 우리 제주에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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