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도의 일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그때만 해도 제주 시내의 부두 하역, 연탄배달, 이삿짐 운반 등은 조랑말 마차가 도맡았었다.


4월 중순이었던가, 화창한 봄날 점심시간이었다.


직장이었던 도청(지금은 시청 청사)과 광양 셋집과의 거리가 2백 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집으로 점심을 먹으로 가는 중이었다. 도청에서 나와 광양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다. 저만큼 길모퉁이에 여물주머니를 목에 맨 조랑말 하나가 보였다.


천천히 조랑말과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툭 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으나, 전광석화電光石火랄까, 녀석의 뒷발질에 오른쪽 무릎을 채인 것이다.


이런 낭패가....태연스레 여물을 먹으러 걷는 녀석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그곳을 떠났다.


점심을 먹고 직장에 돌아왔다. 망설이다가 조랑말 이야기를 꺼냈다.


"길한 일이지요. 경사가 난다고 하대요."


한 동료가 말했다.


"경사라니요? 무슨 팔자에 ‥‥."


"두고 보십시오. 옛날이 틀리는가."


그러고는 한 달쯤 지나서의 일이다. 제주시 사업인 국민주택 분할 추첨에 당첨되었다. 스무 채의 주택을 놓고 5대 1의 경쟁을 벌였는데 당첨된 것이다.


내 집을 갖게 된다. 누구보다도 노모가 기뻐하셨다. 서울에서만도 십여 차례 셋방을 옮겨다니는 서러움을 겪으셨으니까.


따지고 보면 지금 내 노후의 안정은 그 조랑말이 준 복일는지도 모른다. 그때 배당 받은 융자금 백만 원으로 50평 대지에 13평짜리 집을 짓고 26년동안 25평으로 늘렸으며, 5녀 2남의 여덟 식솔을 큰 탈 없이 이끌어왔으니 말이다.


내 집 마련과 조랑말에 얽힌 사연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러니까 집터를 마련 하고 날을 받아 토신제土神祭를 지내던 날이다.


전달 아침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밤중에도 계속 불어댔다. 내일 새벽 제사상에 밝혀야 할 촛불이 걱정이었다.


일을 망치는구나 하는 암담한 생각을 하다가 선잠을 잤다. 창문에 새벽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가까운 곳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일까. 밤새도록 불던 바람도 자고, 길조吉兆라는 말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아내에게 토신제 준비를 시켜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새벽의 말 울음이 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후 조랑말을 주제로 삼아 '협죽도夾竹挑'와 '용내풍경' 이라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오는 10월 말, '제주 경마장'이 정식으로 문을 연다고 한다. 조랑말만으로 경주를 벌이는 경마장이라는 것이다. 밭을 갈거나 짐을 운반할 때 쓰던 조랑말이 스포츠용으로 전신하게 된 것이다.


전도가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만, 힘껏 달리는 조랑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떤 벗에게 마권馬券몇 장을 사서 무릎 차였던 행운을 다시 얻어볼까 한다고 했더니, 그도 나와 같은 번호를 사겠다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난 여태까지 마권을 사보지 않았다. 43여 년 전의 일이니 시효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경마장을 출입해서 한 재산을 날렸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내가 무슨 팔자에 떼돈 벌까 하는 생각에 안 샀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