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심란하게 보낸 세모였다. 고향 선배인 최정희 선생을 문상하고 제주로 돌아온 이틀 후에 향후 C씨가, 그믐날 밤에는 B씨가 별세한 것이다.


헝클어지는 마음을 갈앉혀 볼 생각으로 궤 속의 서한 꾸러미를 정리했다. 빛바랜 편지들을 뒤적이다가 함께 묶인 편지들을 들여다보았다. 한 통은 최정희 선생, 다른 하나는 박목월朴木月선생의 것이었다.


 


「 (전략)비행기에서 담요를 펴놓고 화투를 한바탕 벌였어요. 목월 시인만 그냥 앉혀 놓고. 그냥이 아니라 담요 한 귀퉁일 꼭 잡고 있게 하면서. 그래야 다음다음에 붙여준다고 했지요. 이종환李種桓씨는 860원 이기고, 나는 660원을 지고, 곽종원郭種元 평론가는 200원지고,그리하여 합계 승자 860원이 되는 겁니다.


비행기는 아주 편하고 밤에 내려다보는 도시의 네온은 무더기 꽃밭 같더군요.


어둠 속에서의 이별은 좀더 서글픈 것 같습니다.(후략) 」


 


네 분이 제주에 오셔 서귀포 천지여관서 3박 4일을 지내면서 벌였던 '섰다'판이 비행기 안까지 연장되었다는 최선생의 편지이다.  우표의 소인消印은 1960년 5월로 찍혀 있었다.


서울의 많은 문인들이 제주를 다녀갔지만, 그 횟수로 말하면 최정희 선생이 으뜸일 것이다. 올 적마다 감회가 새로워진다며, 서귀포 앞 바다, 방목장, 일출봉, 해녀, 순박한 인심 등, 아무튼 복 받은 땅이라고 늘 감탄하셨다.


67년 겨울이었던가, 한번은 안덕 계곡을 구경할 때다. 벼랑에 동백꽃이 붉게 피었는데, 바람 속에 꽃잎이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야아. 눈이 땅에서 솟아나는 것 같구만 ‥‥."


최선생은 그렇게 탄성을 발하셨다.


계곡으로 꽃잎은 무더기로 쏟아지고, 구름장 사이로 햇빛이 흘러내렸다. 다시 어두워지며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박목월 선생의 편지 역시 천지여관에서 서울로 돌아가신 후 보내주신 것이다.


 


「 제주에 갔다 온 후로 최여사의 곽형을 두어 차례 만났습니다. 화제는 제주의 일. '섰다'의 서툰 솜씨로 받은 구박은 두고두고 한이 됩니다마는 목하目下수업에 전진 중입니다. 다시 제주에 가는 기회가 있으면 깨끗하게 기술을 발휘하여 전일의 한을 풀 예정입니다.


이번 여행 중에는 가지가지 추억도 많았지만, 웃으며 시작한 여행이 웃음으로 끝마치게 된 것은 앞으로도 있을 성 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유쾌하고도 미련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더구나 서귀포의 '물빛의 여인' 은, 유행가로 말하면 "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나는 떠났네." 라서, 담뿍 미련이 남습니다. 이런 경우 마치 나 자신이 안내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한라산 중턱의 망아지 꼴이라고 할까요.가가呵呵(후략) 」


 


편지의 '물빛의 여인'은 여관 근처에 있었던 다방 마담을 가리키는 말이다.


화투판에 붙여주질 않았으니까 다방에 나가 그 옥색 치마저고리의 마담과 어울리곤 했었다.


밖에 눈이 흩날리고 있다.


땅에서 솟아나는 눈 ‥‥. 제주의 겨울 소나기.


솟아오른 듯 허공을 맴도는 눈송이들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그때 다녀간 네 분 중 곽종원 선생마저 몇 해전 85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이젠 아무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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