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프로야구 왕좌에 등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삼성 라이온스를 따라다녔던 '만년 우승 후보'라는 별칭은 이제 기억 속에서 잊혀진 듯하다. 삼성은 02년 9회 말 이승엽의 스리런 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에서 감격적인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05년에는 4연승으로 두산을 제압하고 가볍게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야구 팀 가운데 유일하게 '창'과 '방패'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삼성이다. 물론 '방패'인 투수진이 '창'인 타선보다 무게가 실리기는 하지만 삼성의 '창'은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

삼성 우승의 원동력을 알아보자.

▲ 선동열 감독의 리더십

지난 해부터 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선동열 감독은 '지키는 야구'를 강조하며 삼성의 막강 '방패'를 만들었다. 선 감독은 삼성 투수코치 시절 배영수를 에이스 투수로 키웠고 권오준, 권혁이라는 뛰어난 투수를 길러냈다. 감독으로 취임해서는 오승환이라는 특급 마무리를 키워냈다.

선 감독의 용병술은 우수했다. 05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정규 시즌 내내 후보 선수였던 김재걸과 김대익을 기용한 선 감독은 그들의 승부를 결정짓는 안타와 홈런으로 삼성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또 김재걸은 우승에 고비가 된 올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도 5회 교체출장해 연장 10회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왕년의 한국 최고의 투수 출신인 선 감독은 결코 모험을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좀처럼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해 고심을 하다 리드를 잡게 되면 점수를 잃지 않기 위해 작전을 짜는 스타일이다. '감(感)' 보다는 '데이터'를 우선시한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선 감독에 대해 "데이터 야구에 탁월하다. 그것으로 불과 2년 만에 최정상급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 화려하지 않으나 꾸준함 돋보인 선발진

삼성의 선발진에 화려하고 확실히 믿음이 가는 거물급 에이스는 없다. 그러나 올 시즌 선발진은 제 몫을 충분히 다해냈다. 삼성 선발진 5명은 투수진이 기록한 1092이닝 중 706이닝(64.7%)을 소화해 냈으며 8승 이상을 거뒀다. 또한 팀 방어율도 3.35로 8개 구단 중 1위다.

전문가들은 '괴물신인' 류현진(18승), '오뚝이' 문동환(16승)의 한화 선발진 보다 하리칼라(12승), 브라운(11승), 배영수(8승)의 삼성 선발진에 점수를 더 줬다.

게다가 올 시즌 삼성전에 5승무패를 기록한 류현진은 정규시즌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데다 신인이라 포스트시즌에서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문동환은 중간 계투로 한화의 허리를 맡으며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졌다.

반면 삼성은 올해 승수를 쌓으며 제 몫을 다했던 하리칼라와 브라운이 무너지더라도 또 다른 선발 전병호와 임동규가 롱릴리프로 뒤를 받쳤다. 삼성 선발진은 한화 선발진처럼 화려함은 없으나 꾸준함이 있다.

거기에다 삼성에는 '미친' 선수가 나왔다. 바로 배영수다.

큰 무대 경험이 많은 배영수는 1차전에서 6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두며 올해 포스트시즌 최초로 선발 투수 퀄리티피칭(선발 투수가 6이닝 3실점 이내로 막는 것)을 기록했다. 3차전에서도 12회 1사서 등판, ⅔이닝 무실점으로 한국시리즈 첫 세이브를 올렸고, 4차전 8회말에 등판해 2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한화 타선을 틀어막으며 1승을 추가했다. 올 MVP 영순위다.

▲ 한층 강화된 불펜진

정규시즌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삼성의 'KO 펀치'는 한화의 강타선에 KO되고 말았다. 3차전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권오준이 8회초 김태균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후 이어 나온 마무리 오승환도 심광호에게 투런 홈런을 내주며 3-3, 동점을 허용했다. 12회초 터진 박진만의 결승타로 4-3으로 간신히 이겼지만 선 감독은 여유만만했다.

임창용을 비롯해 권혁, 임동규, 오상민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랫동안 부상에 시달려온 임창용과 권혁이 되살아난 것이 삼성에게 희망적이었다. 권혁은 11회말 1사 2루서 등판, ⅔이닝 동안 무실점을 했고, 임창용은 12회말 등판해 김태균을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다.

선 감독은 임창용에 대해 "무척 잘 던졌다. 앞으로도 필요할 때 등판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가세로 삼성 불펜진은 한층 더 강화됐다. 김인식 한화 감독도 "우리 투수들은 수준 차이가 나는 반면 삼성 불펜진은 누가 올라와도 강하다"며 혀를 찼다.

▲ 근성으로 버틴 타자들

올 시즌 프로야구의 전반적인 현상이었던 투고타저의 흐름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계속됐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4경기 득점권 상황에서 타율 0.200(45타수9안타)을 기록하며 13득점했다. 한화도 4경기 동안 득점권 타율이 0.207(29타수 6안타)에 그쳤다. 만루상황에서도 1점도 뽑지 못하고 공수교대를 한 적도 10차례나 됐다. 단지 삼성이 2차전 4회말 만루서 삼성 박한이의 희생플라이와 4차전 7회초 만루서 조동찬의 내야땅볼로 점수를 냈을 뿐이다. 반면 한화는 5번의 만루상황에서 1점도 뽑지 못했다.

삼성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박진만과 김재걸의 결승타로 우승의 분기점인 3, 4차전을 승리했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에서도 이들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팀에 승리를 안겼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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