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권혁진 기자 = "언론에서 러시앤캐시에 대한 관심을 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배구 러시앤캐시 김호철 감독이 지난 27일 대항항공전에서 0-3으로 패한 뒤 남긴 말이다. 예상 밖의 농담에 김 감독과 취재진 모두 호탕하게 웃었다.

김 감독은 시즌 전부터 "러시앤캐시 기사를 많이 써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지금도 그렇다. "플레이오프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좋은 경기를 통해 언론 노출 빈도를 높이면 인수기업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김 감독의 심경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멀게만 느껴졌던 플레이오프행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뒤부터다.

김 감독은 "관심을 꺼달라"는 농담의 배경으로 "(잦은 매스컴 노출로)선수들이 오히려 부담을 갖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플레이오프행에 욕심을 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9경기를 치른 28일 현재 러시앤캐시는 8승11패(승점 23)로 6개 팀 중 5위를 달리고 있다. 플레이오프행 마지노선인 3위를 유지 중인 LIG손해보험(10승8패·승점 30)과는 7점차. 멀어 보이긴 해도 최근 11경기 8승3패의 상승세를 감안하면 뒤집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대한항공전 완패 직후 선수들을 라커룸으로 불러 모았다. 모처럼의 연패인만큼 미팅은 꽤나 길어졌다. 그는 "이기려는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못 이긴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모두 플레이오프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미련을 버려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선수들에게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머릿속으로 플레이오프행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 얻어낸 결론은 "버릴 팀은 확실히 버린다"였다.

러시앤캐시는 올 시즌 다른 팀들을 상대로 1승 이상씩을 챙겼다. 한 번 고기 맛을 보면 두 번 먹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KEPCO는 라이벌이다. 우리가 PO에 가려면 LIG나 대한항공은 이겨야 한다. 또 현대캐피탈전에는 수당이 많이 걸려있어 따로 말을 안 해도 잘 할 것이다. 삼성화재는 오히려 선수들이 경기하기 편해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다 이겨야 한다"고 웃었다.

이어 "그런데 이 생각은 좀 잘못 된 것 같다. 이겨야 할 팀은 확실히 이기고 해볼 팀한테는 확실히 달라붙겠다. 그리고 버릴 팀은 확실히 버리겠다. 승부를 걸겠다"고 설명했다.

이길 가능성이 적은 팀을 상대로 무리하게 승리를 노리기보다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반드시 잡아야 하는 팀들을 넘겠다는 계산이다.

러시앤캐시는 드림식스 시절부터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 문턱을 밟지 못했다. 초반에 잘할 때는 마무리가 부족했고 포스트시즌 싸움이 끝난 뒤 상승세를 탄 것도 여러 번이다.

올해부터 이들의 수장이 된 김 감독은 현대캐피탈을 이끌고 매년 플레이오프를 경험했다. 경험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지금까지도 삼성화재의 아성을 무너뜨린 이는 김 감독의 현대캐피탈이 유일하다.

선수들의 절실함과 감독의 노련미가 조화를 이룬 러시앤캐시. 이들의 플레이오프행이 V-리그 막판 최대 볼거리로 떠올랐다. <뉴시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