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성향의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지, 사람들의 뇌구조의 한계는 똑같을테니까.

How about your Africa? (아프리카에 대한 감상은 어떻습니까?)

늦은 오후.. 스칸디나비아 버스회사 직원인 오마르는 일이 끝난 후 나를 만나러 호텔로 놀러왔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내 마음이 그리 편한것 만은 아니었다. 이럴 땐 그를 친구라고 해야할까 가이드라고 해야할까..


나는 어제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하루종일을 달려 킬로만자로의 마을 모시에 왔다. 버스에서 사귄 친구들은 혼자 여행한다는 말에 아무래도 내가 영 걱정이 되었나보다. 그들은 버스가 모시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버스회사로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내 친구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확실히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내가 위험하지 않고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버스회사 사장에게 부탁하였고 사장은 기꺼이 회사 직원중 한 사람을 불러 바쁘지 않는 업무시간에는 나를 도와주라 명했기 때문이다. 오마르는 관광 가이드가 아닌 스칸디나비아 버스회사의 직원.. 하지만 모든 관광지의 룰을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나는 버스회사에서 가이드를 산 꼴이 되어


다음날 회사에서 퇴근한 오마르는 하루종일 마을을 돌아 다녔을 내게 아프리카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아 그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하다못해 민간인들과 친구가 되더라도 팁을 선물로 줘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광지들의 룰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 Very very nice"를 연발하고 회사로 돌려 보내 버

그는 나보고 진정한 아프리카라는 것이 무었이냐고 되묻는다. 다시 망설여진다. 적어도 한국에서 TV에서만 보았던 아프리카의 지독한 현실들은 가장 극단적인 상황일 것이 뻔하고.. 일반인들의 가난이나 더러움을 쉽게 말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블라와요에서 머물렀던 친구네 집도 상당히 가난하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들었던 아프리카에 관한 국제사회 구호요청을 설명하고 설사 그곳이 특수한 지역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곳은 아프리카가 아닌 백인 별장지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관광을 온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고싶어서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왠지 기뻐보였다. 이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프리카 현실을 볼 수 있을것이라며 부모가 없는 아이들과 돈이 없어 굶는 사람들의


우리는 한쪽 문짝이 떨어져 나간 소형 봉고차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건만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버스는 이리저리 느릿느릿 기어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인들이 없는 순수한 아프리카의 마을..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단순한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장은 나를 보더니 고아원 이곳 저곳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를 설명하더니 상태가 안좋은 목걸이를 몇 개 꺼내 세 개에 만원이라고 한다. 터무니 없는 가격인줄은 알지만 이것은 장사가 아니라 기부라고 설명하고 싫으면 안사도 좋다고 했다.

나는 결국 목걸이를 두개 고르고 이만원을 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나는 오마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화가나는 것을 내내 참을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여달라고 했지 누가 고아원을 보여달라고 했나..? 오마르가 내게 있어 친구인지 가이드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놈이 나를 데리고 아프리카에 대해 쇼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였다. 이런식이라면 마지막날 분명 나



오마르에 대한 후회는 그 다음날 더욱 커져갔다.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와 무작정 걸었던 그날 나는 진짜 흑인들의 마을을 둘러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집마다 현관앞에서 동네 주민들은 채소를 다듬거나 잡담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들 역시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본다. 신나게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프다. 어느 젊은 아줌마가 나를 불러 커피를 대접해주고 이것저것

나는 길거리에서 파는 50원짜리 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조금 영리해 보이는 아이가 내 사진기에 흥미를 보이더니 결국 이곳저곳 찍어대기 시작한다. 장사하는 아줌마는 아이에게 엄격히 주의를 주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앞으로는 오마르를 만나지 말아야지.. 그 순간 만큼은 나는 그에게 단 한푼의 팁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와 헤어진지 몇 달이 지나서였을까.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가끔 내 뇌리속에 오마르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는 분명 가이드가 아닌 내 친구였다. 결코 나를 무시하지도 않았고 쇼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왜 나를 고아원에 데려갔던 것일까..?

그 해답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아프리카에서가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서이다. 친척집을 가는 길에 우연히 가까이서 보았던 큰 규모의 판자촌... 나는 한국에서 판자촌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노숙자들이 모이는 곳을 제외한다면 가장 가난한 곳이 TV에서 볼 수 있는 달동네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았던 서울 근교 판자촌은 불어가는 바람에게조차 상당한 악취를 실어주고 있

사람의 생각수준이란 것은 언제나 그렇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외국의 빈민촌을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면서도 한국은 판자촌이 없을까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생각의 수준.. 누군가가 내게 한국의 빈민촌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면 나는 당연한 듯이 달동네를 떠올렸겠지.


그리고 오마르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동아프리카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스칸디나비아 대형버스회사.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오마르가 한시간 이상을 걸어 마을까지 갈 일은 자주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마을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를 만났던 순간에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가난이라는 키워드만으로 고아원을 생각해 냈고 나를 위한 장소로 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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