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1. 액션스타 청룽(성룡·59)이 ‘내 생의 마지막 초대형 영화’라며 제작, 감독, 각본, 주연 등 15개 역할을 망라하며 내놓은 ‘차이니즈 조디악’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교조적이어도 될까’였다. 중국의 입맛에 딱 맞춘 메시지를 너무 강조하는 것이 영 거슬렸다.

1997년 영국령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며 홍콩인들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홍콩 누아르도 이 시기 힘을 잃어갔다. 신변의 불안을 느낀 많은 영화인들이 캐나다 등지로 이민을 택하거나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홍콩을 떠났다. 청룽은 이 급변기에 친중국정부 성향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국정부에 큰 불만을 품고 있는 홍콩팬들의 외면을 받고, 여러 홍콩영화인들은 그의 언행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소문도 돈다.

2009년 4월에는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포럼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자유가 지나치면 혼란이 올 수 있다. 홍콩, 대만처럼 될 수 있다” “원래 중국인은 관리(통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해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말에는 이성문제와 친중국성향 아부발언을 이유로 네티즌이 선정 ‘저질인품’ 1위에 올랐다는 홍콩 핑궈일보의 보도도 있었다.

어찌됐든 청룽은 온갖 검열로 유명한 중국정부의 지지를 얻어내며 공식 13억5000만, 실제 16억명이 넘는다는 세계 인구 1위의 중국시장을 잡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100번째 영화로 철저히 중국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신해혁명’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중국의 국정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일원이 됐다.

내한 인터뷰에서 ‘차이니즈 조디악’에 대해 “해외반출 유물은 중국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세계를 아우르는 얘기를 담았다. 일본이 한국에 고서를 반환하고, 유럽에 있는 문화재들을 캄보디아, 인도, 이집트 등에 돌려주는 장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얘기한 것들은 곁다리다. 마무리 부분에 뉴스보도로 잠시 전해질 뿐이다. 영화는 1860년 영불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해 청조 황실정원 원명원을 약탈·방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소실된 12지신 머리 모양의 청동상을 찾아 모험을 펼치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청룽 영화의 특징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할 사이도 없이 빠르게 신이 전환되는 속도감,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이 합이 척척 맞는 스피디한 액션신이다. 그런데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골동품 감정을 전공하는 유학생 코코(야오 싱통)가 프랑스 귀족 카트린(로라 웨이스베커)에게 “너희 조상이 약탈, 노략질, 겁탈, 살인을 했다”고 따지는 부분은 연설이라도 하듯 늘어진다. 그러면서 “너희도 도둑질한건데 뭐 어떠냐”며 족자를 훔쳐오려 하는 부분은 마치 중국의 속내라도 대변하는 듯하다.


물론 청룽의 미국 비난 발언, 서구열강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민족주의적 애국심은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우리의 정서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다. 청룽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류에 맞서 중국배우들을 세워줘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도 한국의 열렬팬들은 “우리도 한국영화 스크린쿼터를 하지 않느냐”며 그를 이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티베트 학살 등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현 정책들을 볼 때 지난 세기의 과거사를 가지고 서구 만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는 아전인수가 과연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몸 액션으로 쌓아온 청룽의 명성은 괜한 것이 아니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도 노 와이어, 노 대역, 노 컴퓨터그래픽의 스턴트 액션을 선보이는 그가 경이롭고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어린이들도 볼 수 있도록 피 튀기는 잔인한 장면이 없는 것도 미덕이다. 짧은 팔다리를 재게 움직이며 주변지형과 사물들을 이용해 펼치는 그의 무술 능력과 활약이 하도 뛰어나 솔직히 다른 출연배우들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퀴가 달린 금속수트를 입고 누워 달리는 버기롤링은 최고시속이 40㎞가 넘는다는데, 이를 착용하고 보여주는 액션, 낙하산도 없이 활화산으로 떨어져 분화구 도처에 깔린 암석 위를 맨몸으로 구르는 장면 등에서는 절로 감탄이 나온다. 뼈가 부러지는 부상은 기본일 정도로 매번 목숨을 걸고 극한 액션을 시도하는 청룽의 도전정신이 세계 팬들을 열광케하는 요소임을 새삼 확인시킨다. 게다가 활화산을 구르고 난후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청룽의 눈은 실핏줄이 터져 새빨간데, 분장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 아닐까하는 안타까움마저 든다.

영화 속 거주지에 나오는 철봉 정글짐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몸을 단련하는 신은 그가 평소에도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실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영화가 끝난 후 공개된 5분에 걸친 NG장면에서는 액션을 찍으며 중간중간 아파하고 실수로 물에 빠지고 하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얼마나 고생을 하며 한 신 한 신을 찍는지 눈물겨울 정도다. 특히 ‘차이니즈 조디악’은 영화사와의 예산 조율에 실패하면서 스스로 자체 자본금을 들여 제작하며 완전히 청룽 스스로를 위한 찬가가 됐다. (1조5000억원의 재산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그가 전재산의 15분의 1정도인 1000억원을 들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흐르는 가운데 청룽의 목소리로 “멋 훗날 내 자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거다. 이게 나라고, 청룽이라고. 나 재키 찬(청룽의 영어식 이름)은 내가 자랑스럽다…”라는 메시지까지 흐른다. 사실 자화자찬식 이러한 메시지는 쑥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전심전력을 다해 펼친 액션연기를 보고 난 직후라 그것마저 감동스럽다는 것이 ‘반전’이다. 예정보다 하루 앞당긴 27일 국내 개봉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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