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97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당시 25세의 젊은 로커 윤도현(41)은 윤복희(67), 유인촌(63), 천호진(53) 등 대선배들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무대에 올랐다. "너무 떨었던 기억이 나요. 제게 과분한 무대라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16년이 지나 뮤지컬배우로 입지를 굳힌 지금,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었던 상태"에서 기꺼이 이 작품 출연을 다시 결정했다.

로커답게 록뮤지컬인 이 작품의 음악이 좋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번 무대가 "오리지널을 그대로 옮겨낸다는 부분"과 "유다기 악역이기는 하지만 연민을 느끼게 해주는 캐릭터라 배우로서 매력이 있다"는 점도 그의 흥미를 다시 자극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에비타' 등을 작업한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65)와 작가 팀 라이스(79) 콤비의 대표작이다. 성경 속 예수의 마지막 7일을 클래식과 록을 결합한 록 오페라 방식으로 담아냈다. 특히,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예수의 모습을 배신의 상징으로 통하는 '유다'를 통해 그려내 주목 받았다.

1971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1972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이 뮤지컬은 그동안 42개국에서 1억5000만명이 관람했다. 40주년 기념으로 지난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수퍼스타'는 토니 어워즈에 노미네이트됐으며 같은해 영국 아레나 투어로 7만4000명의 관객을 끌어모아 오프닝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뮤지컬 자체는 종교적인 색채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16년이 지나는 가운데 크리스천이 된 윤도현은 "캐릭터 해석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도 아우러지면서 예전과 다른 색깔의 유다가 표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디 모던록밴드 '몽니'의 리더 김신의(36), 가창력으로 내로라하는 뮤지컬배우 한지상(31)이 윤도현과 함께 유다 역에 트리플캐스팅됐다. "두 분 다 노래를 너무 잘해서 노래 선생님으로 모시려고 해요. 하하하. 차이점이 있다면…, 윤도현이라는 사람 그 자체가 구별점이겠죠."

유다를 맡았던 만큼 이번에는 지저스 역도 욕심이 날 법하다. 특히, 윤도현이 존경하는 로커로 1970년대 '레드 제플린'과 함께 하드록계를 양분한 '딥 퍼플'의 보컬 이언 길런(68)이 지저스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지저스는 내가 할 캐릭터가 아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유다는 고음이 많지만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내지르면 돼요. 지저스 역시 고음이 많지만 절제를 하면서 불러야 해요. 그런 점이 참 힘들거든요. 지저스 역을 맡은 분들을 보면 존경하게 돼요."

뮤지컬 '헤드윅' '광화문연가' 등에 이어 이지나(49) 연출과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저하고 잘 맞아요. 저를 참 편안하게 해주시거든요. 제 성격을 금방 파악해 조절을 잘 해주세요. 연습할 때 쑥스러워하는 부분을 다 이해해주시고, 세밀한 부분을 다 가르쳐주시죠."

1994년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데뷔한 윤도현은 1995년 극단 학전 '개똥이'로 뮤지컬에 처음 출연했다. 당시 뮤지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김민기(62)가 연출하는 록뮤지컬이라는 이유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래서 오히려 무대가 편했다.

"당시 무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가 개똥벌레 역을 맡았는데 '귀뚜라미' 역의 배우 무릎을 베고 자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 잠깐 곤히 잠이 들어버린 거예요. 그새 코까지 골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이 뮤지컬은 그에게 아내도 선물했다. 귀뚜라미 역을 맡았던 배우가 그의 동반자다.

아내가 출연하고 역시 김민기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수차례 보기도 했다. '지하철 1호선'의 산실이었던 학전 그린 소극장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이유다. "학전그린 소극장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많은 도움을 준 곳이거든요. 특히, 김민기 대표님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YB 무대와 뮤지컬의 차이점을 자신의 집과 별장에 비유했다. "YB 공연이 우리 집에 친구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여는 것이라면, 뮤지컬 무대는 별장 같은 곳에 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파티를 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뮤지컬이 어려운 면이 있지만 설렘이 더 크고 짜릿한 부분이 있죠."

윤도현은 SBS TV '일요일이 좋다-K팝 스타'와 '한밤의 TV연예', 엠넷 '윤도현의 머스트' MC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YB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MC 김제동(39) 등이 소속된 다음기획의 새 대표도 맡아 다양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출연한 이유는 뮤지컬이 너무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8년 '하드록 카페'에 출연한 후 2009년 '헤드윅'까지 9년 간 뮤지컬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하드록 카페'가 장기 공연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많이 지쳤어요. 뮤지컬은 제가 가야하는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때 했어요. 제가 지구력이 약해서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음악과 스케이트보드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헤드윅'은 제가 출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후 뮤지컬의 매력을 진짜 알게 됐죠. 이제 다행히 뮤지컬배우라고도 말할 수 있게 됐죠."

뮤지컬배우로서 윤도현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한 가사 전달이다. "스무살 때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포크 모임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리더 형이 제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김광석 선배님의 '이등병의 편지'을 만든 김현성 형이었어요. 형이 노래를 할 때 말을 흘리지 말라고 했죠. 그러면서 동요 연습도 시키고. 그런 점들이 지금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이 돼요."

스스로 뮤지컬배우라고 여기게 됐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연예인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데 대해 티켓을 팔려고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죠. 제 지명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이 중요한 것은 제작사잖아요. 저는 그보다 무대 위에서 완전한 유다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그렇게 진정한 뮤지컬배우가 돼갔으면 해요."

이번 무대에서 지저스는 뮤지컬배우 마이클 리(39)와 뮤지컬스타 박은태(32)가 나눠맡는다. 천한 여자로 지저스에게 존경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마리아' 역에는 뮤지컬스타 정선아(29), 엠넷 '보이스 코리아' 출신 장은아가 더블캐스팅됐다. 보컬그룹 '2AM'의 조권(24)이 냉소적인 유대 왕 '헤롯'을 맡아 뮤지컬에 데뷔한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정재일(31)이 음악 슈퍼바이저로 나선다.

4월26일부터 6월9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볼 수 있다. 설앤컴퍼니와 함께 롯데엔터테인먼트, CJ E&M공연사업부문, 웨버의 제작사 RUG 등이 공동제작한다. 4만~13만원. 1577-3363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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