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부산 소재 대선발효가 제주주정공장을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사장이 일본 출장 중 돌연 사망으로 회사 운영이 어렵게 되고 모녀간 갈등마저 생겨 장기간 가동 중단 상태였다가 제주출신 재일교포가 인수하게 되었다.

재일교포의 동생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나와 동창생인 관계로 인연이 있어 중소기업은행과 거래를 하게 되었고 그 누님 딸을 은행에 특채해 주기도 했다.

제주주정공장에서 2천만원의(당시 금액)대출신청이 들어와 담보물 감정을 해보니 1,950만원 정도 대출이 가능해 실무전에서는 일부 신용대출로 2천만원을 대출해 주려고 하는데도 지점장이 거부해 대출업무가 진척되지 못하고 대부 담당 대리는 지점장의 융통성 없는 처사에 불평만 하고 있었다.

나는 예금 담당 대리로는 옆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 보다가 2천만원 대출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음을 발전했다.

이 대출에 제공된 담보물이 사장 누님 소유 부동산이고 우리 직원인 K양은 그의 딸로서 자기가 월급 받는 것을 어머니 이름으로 정기 적금 가입하여 꼬박꼬박 납입하고 있어 이미 납입액이 100만원을 넘어섰으니 이 적금을 담보제공하면 부동산 평가액과 적급을 합한 금액이 2,000만원 대출가능액 이상이 되는 것이다.

부동산 명의자와 적금 명의자도 일치하고 어렵게 지점장에게 가서 사정할 필요가 없는 것을 공연히 지정한 셈이다. 나는 K양을 불러 “네가 어머니 명의로 가입한 적금을 느네 삼촌네 대출 받는데 담보 제공해 줘버려라. 옹고집스러운 지점장이 담보 부족이라고 대출 거절 햄시녜.”

하고 말했다. K양은 내 말대로 적금을 담보 제공해서 제주주정공장에 2천만원의 대출을 가능토록 해 준 일이 있다.

그 후 나는 차장으로 승진했고 몇 년 없어 제주주정공장은 부도나 제주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우연히 출납에 들렀던 나는 K양의 적금이 해지되어 인출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적금해지 전표에 결재한 책임자를 불러 “이거 잘 보고 결재했어? 담보 제공으로 질권설정된 적금을 현금 인출시켰다가 자네 변상할 생각인가?” 하고 질책하니 그때야 적금원장을 다시 살펴보고 『질권설정』이라는 고무도장을 발견할 결재자는 머리를 긁으며 “죄송합니다. 원상복하겠습니다.”

며 적금해지를 취소해 버렸다. 나는 K양을 불러 “네가 월급 받아 불입하는 적금인 것도 잘 알고 있고, 아직 적금 만기도 안 되었으니 앞으로 좋은 방법을 찾아 보자. 그리고 질권설정되어 있는 적금을 함부로 중도 해지하면 되나? 그런 의사가 있으면 나와 미리 상의라도 해야지.” 하고 타일렀다. 그러나 K양은 “이름만 어머니 이름이지 내가 월급 받아 가입하고 납입하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내 것이니 해지해 주십시오.”

하고 완강히 나왔다.

“시간을 갖고 해결책을 찾아보자. 이 적금까지 잃어먹자는 않을 거야.”

하며 K양을 설득해 보았다. K양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상사인 내가 말하니 마지못해 담보 제공한 것이라는 뜻으로 거칠게 항의했다.

지못해 담보 제공한 것이라는 뜻으로 거칠게 항의했다.

“너의 삼촌네 잘 되게 하려고 그랬지. 내가 너를 괴롭히려고 한 것 아니지 않냐? 그러니 좀 기다려 보자꾸나.”

하고 적금 중도 해지를 거절해 버렸다. 이에 화가 난 K양은 말도 없이 조퇴해 집에 가버렸고 은근히 기분 나빠진 나는 대부계 직원에게 “담보제공 증서는 잘 있난 서류 챙겨봐!”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부계 직원이 당황하여 달려 오더니 “담보제공 증서가 없어졌습니다. 어제 K양이 대출 서류를 보자고 해서 빌려준 일이 있는데.....”

하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담보제공 증서가 없어졌으니 적금 중도 해지를 거절할 권리가 없는 노릇이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운전기사가 “차장님, K양 집에 가보고 오겠습니다.”

“K양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있는 K양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방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을 들여다 보니 이거 있기에 슬그머니 집어들고 왔습니다.”

하는 대답이었다. 다음날 K양 형부가 은행창구에 나타나 적금을 중도 해약해 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얘기하자는 나의 말에 “필요없어! 빨리 해약해 줘!” 하며 덤볐고 “당신 예금도 아닌데 왜 이리 소란을 떠느냐?”

하고 나도 언성이 높아졌다. 한동안 언쟁을 해도 적금해지에 응하지 않자 “본점에 가서 네 놈 모가지를 날려 버릴 테니 각오해!” 하며 그는 돌아갔다. 며칠 후 본점 감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민원인이 찾아와 적금 해약 안 해 준다고 말하는데 어찌된 일이야?”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의 설명을 듣던 감사님은 “담보제공 사실이 없다는데? 현지로 내려 보낼 터이니 시끄럽지 않게 잘 처리해 드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본점에 들러 감사를 만나 보고 좋은 얘기를 듣고 온 형부는 의기양양해 은행에 나타나 소리소리 질렀다. 나는 그에게 “나에게 나를 찾아와 사정할 일이 생길 꺼야. 너의 장모님 집이 담보제공 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지? 그 집 공매 붙이면 5천만원은 될 것이므로 우리 대출금 회수에는 아무 지장 없어. 적금 해약해 주지. 결국은 그 돈이 그 돈 아닌가. 잘 생각해 두게.”

하며 적금을 중도 해약해 주고 말았다. 일이 이쯤 되었는데 담보물 처분을 유보해둘 필요가 없어졌다. 법원으로 넘겨진 담보물은 위치가 좋은 관계로 제1차 경매에서 제3자에게 낙찰돼 버렸다.

시가 5천만원 이상 될 집을 3천만원 정도로 낙찰해 버려 우리 대출금 회수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집 임자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예측한 대로 그들은 나를 찾아와 해결 방도를 말해 달라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다신 안 볼 사람같이 막말을 하더니....,그것도 자기 식구를 채용해 준 상사를.....,될 수 있으면 도와주려고 애쓰는 나를 원수 취급하더니......., 이게 사람의 도리인가......, 온갖 생각이 오갔지만 그들 처지가 하도 딱해서

“방법은 있수다. 한 달 이내에 우리 대출금을 갚으면 우리가 공매 취하합니다.

그러면 낙찰자인 제 3자는 권리가 없어지는 겁니다. 이 방법밖에 없수다. 한 달 지나 버리면 낙찰자의 소유가 되어버려 매우 힘들게 됩니다.

하고 알려 주었다. 며칠 후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찾아와 대출금 원리금을 깨끗이 상환하고

“그동안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는 사과를 했다. 나도 “도와드리려고 하던 것이 이렇게 되어 미안합니다.”

하는 말로 회의했다. 처음 대출금 나갈 때 내 소관도 아니었으니 모른 체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공연히 끼어들었다가 나만 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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