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모시마을.. 마을을 구경하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아프리카 여느 관광지 마을처럼 이놈 저놈 쫓아오면 호객행위부터 구애행위까지 다양하게 귀찮게 군다. 외국인에게 왜 이리 스트레스를 주는것인지.. 도대체 이놈들은 관광지로 잘 살아보겠다는 기본적인 생각도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내가 참아야지.


그런데 길을 걷다보니 어디선가 기특한 양아치 놈 하나가 나타났다. 보디가드처럼 내 주위에 달라붙는 사람들을 이리러리 막아내더니 현지인 누군가와 말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달라붙지 않을것이라 내게 속삭였다. 호의에 감사하지만 그냥 마을 구경을 나온것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내 대답은 못들은 척 자기 소개를 한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돌아왔다는데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사업이 잘되어서 지금은 탄자니아에서 알아주는 굉장한 부자라고 한다. 며칠간의 휴가를 얻었으니 나와 함께 잔지바르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놈도 똑같은 놈이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이정도 양아치를 달고 다니는 것이 호객꾼들 달라붙는것보다

그는 자꾸만 내게 잔지바르 여행을 권한다. 비행기 값도 숙박료도.. 모두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보나마나 뻔 한 얘기.. 이래놓고 막상 계산할때가 된다면 지갑을 놓고왔다는 이야기 둥으로 내 돈이나 뜯어내려는 수작이겠지. 하긴.. 그 이전에 이놈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기본적으로 이런 뻥을 믿을만한 바보 관광객이 존재하려나 싶기도 하다.

내가 상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 마을을 구경하는 동안 그는 나름대로의 진지한 인생 철학을 늘어놓더니 언제 잔지바르로 함께 떠날 것인지를 묻는다. 내가 짧게 "No"라고 대답하니 그의 표정에서 당혹감과 분노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낮이었건만... 문득 알 수 없는 위협감이 느껴졌다. 태연한 척 내가 돌아갈 호텔 방향을 묻자 그는 내가 호텔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심술궂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뒤돌아 섰다. 시계를 보니 호텔을 떠난온 것이 대략 2시간.. 이곳저곳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지만 낯선 도시에서 좀 멀리 구경나왔음은 분명한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니만 그가 자꾸 나타나 자기가 길을 안다고 다른 사람들을 물리친다. 길에서 택시를 잡으려는 순간 그는 잽싸게 택시를 앞좌석에 앉아 내가 머무는 호텔로 가자고 운전기사에게 명령한다. 택시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덧 내 뒤를 따라오면서 같이 잔지바르에 가겠다고 약속하면 호텔가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수작을 부렸지만 이미 그의

저 멀리 상가건물들이 보이고 경찰이 보인다. 빙고~! 내가 경찰에게 달려가자 그는 더 쫒아올 생각은 못하고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경찰은 호텔 주소를 보더니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준다. 생각보다는 멀리 오지 않은 모양이다.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찾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경찰은 종이에다 지도까지 그려주더니 호텔까지 모셔다 줄테니 저녁을 사달라고 제의한다. "No"라고

길을 걸으니 아까 양아치가 이번엔 나란히 걸으며 아까보다 강도 깊은 욕을 하기 시작한다.
학교 방학때마다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경험했다 생각했지만 내 평생 이런 욕들을 노골적으로 들어본적이 없었다. 협박에 성희롱적인 발언까지 곁들여서.. 안듣는 척 입을 꼭다물고 길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지만 분통이 터지는 것을 어쩔수 없는일.. 호텔 로비에 앉아 친구 오마르를 기다렸지만 생각할수록 화가나고 억울해서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내가 이 호텔 여행사에서 킬리만자로 등산과 세렝게티 사파리에 건 계약금은 미화 1000$ (우리돈 100만원)... 아프리카 현지인들은 평생 모아도 못 모은다는 이돈으로 나는 이호텔의 VIP손님이었던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호텔 사장을 모셔왔고 호텔 사장은 레스토랑에서 나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 콜라를 대접하고 나를 달랜 후 급한 볼일이 있다며 여행사 사장을 불렀다.

여행사 사장 어거스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상대를 해주더니 내게 모처럼의 학교 방학을 망치치 말라고 달래준다. 그리고 내가 어느정도 울음을 그치자 친절하게 보건증(에이즈 없음 증명서)를 보여주면서 자기는 깨끗하다고 말했다. 동거녀와 3달된 아들이 있지만 자기 사업이 있어 백인여자(외국인)과 결혼할 자격이 충분하니 지금 동거녀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훗날 스칸디나비]

어거스가 돌아간 후 친구 오마르가 왔으나 아쉽게도 회사일이 바쁜듯이 보였다. 그를 보내고 호텔 식당에서 혼자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호텔 웨이터는 내 기분이 풀렸는지 묻는다. 어거스가 보건증를 보여주더라고 가볍게 대답했더니 웨이터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도 있다고 꺼내서 보여준다. 모시의 뉴 캐스트 호텔에서 이틀을 묵으면서.. 어거스와 함께 사업한다는 동업자놈까지 보건증을 3장 확인 할


킬로만자로 등산후 4일간의 세렝게티 사파리..
저녁시간.. 우리는 모닥불에 앉아 자신들이 경험한 아프리카 이야기를 했다.
에이즈 보건증 이야기를 했더니 역시 여행객들에게는 이런것들이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보다.
그리고 아프리카만 2년째 여행하고 있다는 중국인 사진작가는 그것도 십중팔구 위조일것이니 믿지말라고(?) 충고해준다.
그리고 다음번에 보건증 보여주는 사람있으면 꼭 물어보랜다. "How much is the fake?" (보건증 위조하면서 얼마 줬어?)
UN직원이라는 누군가는 여행용 가방 하나 가득 들어가는 콘돔 3만개의 무게가 5kg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한달 후.. 사하라 사막을 달리며 트럭의 친구에게 물었다 “말라리아 걸려 본 적 있어?” 2번 있다고 한다. 또 물어봤다. “에이즈 걸려 본 적 있어?”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하긴 에이즈에 한에서는 과거형의 질문도 좀 이상하지 아마..?
저녁식사를 하는데 누군가가 두통약을 묻는다. 일사병인 것 같은데 익숙하니까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약주머니를 뒤적이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말라리아 걸려 본 적 있어요? 영어가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라리아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는지 제각기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대략 눈치를 보니 다들 두서너번 씩은 걸려봤다는 소리들이다. 그래서 또 물어봤다. 에이즈 있어요? 몇몇은 조용해지고 몇몇은 못들은 척 말라리아 얘기를 계속한다. 함께 저녁을 먹었던 십 여명의 남자들 중 단 한명만이 에이즈가 없다고 내게 의사표시를 했다.


이쯤되면 어거스가 보건증을 자랑할만 하다. 그가 어떤 의도로 내게 보건증을 보여줬던지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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