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1956년 내가 서울대학교에 입학가고 보니 오현고등학교 선배로서 김병찬(의대), 김재령(공대 건축과), 김종선(치대), 양창효(상대), 오윤겸[만수](사대), 임홍선(사대), 현승북(미대)등 오현 1회 졸업생만도 7명이 있었다.

2회 선배로서는 고명윤(법대), 고승중(미대), 김영호(약대), 김정빈(약대), 김태영((문리대), 문성옥(치대), 박병돈(의대), 박철희(문리대), 정태천(법대), 조문부(법대)등 10명이나 되었다.

3회인 내가 한 번 낙방했기 때문에 3회 졸업생으로 이미 합격한 동문으로는 김종태(공대), 김창현(공대 건축과), 문기선(미대), 박병준(사대), 백창석(공대), 송동린(공대), 양후열(치대), 정순봉(공대)등이 8명이 이었다.

내가 입학한 1856년도에는 나를 비롯하여 4회 졸업생으로서 강태일[헌석](법대), 고문승(문리대 - 나중에 법대로전환), 고시천(문리대), 김정화(약대), 김한주(약대), 김홍화(약대), 김한주(약대), 김홍식(공대), 백남희(상대), 송상순(사대), 이겅선(공대), 이동우(문리대), 이봉용(공대 전기과), 현용길((공대), 현학범(농대)등 무려 14명이나 합격했으니 오현출신이 도합 40여 명에 이르렀다.

1856년도 합격생들이 자주 모이게 되고 내가 고교 1년 선배이기 때문에 『형님』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고문승 동문의 제의에 의하여 오현고 출신 서울대생의 모임을 추진하게 되었다.

선배들을 찾아 뵙고 오현고 출신 서울대생의 모임을 만들자는 후배들의 의견이 있다는 설명을 드렸더니 모두가 찬성하여 어느 날 덕수궁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모임의 명칭을 무엇으로 정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오현단에 있는 큰 폭낭(팽나무)밑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光風臺』라고 새겨져 있으므로 우리 회 명칭도 『光風會』로 정하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회칙을 정하고 임원선출에 들어가 초대 회장에 김병찬 씨를 선출했고 나도 부장자리를 맡았다. 따라서 앞으로 오현출신 가운데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사람은 광풍회 회원으로 자동 입회하도록 하였다.

세월이 흘러 내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 후배들이 ‘광풍회 정기총회가 있으니 참석대 달라’ 해서 가 보았더니 그 해 졸업생만도 50명이 서울대에 합격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교인 오현고의 전성기가 아마도 이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에는 합격생이 10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마다 광풍회 신입생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므로써 모교인 오현고의 발전도 기원하는 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