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김태은 문화전문기자 = 김기덕(53) 감독의 영화는 일단 불편하다. 보는 이에게까지 괴로움을 전이시키는 탓이다. 고통과 고뇌를 찾아 느끼고자하는 피학성향이 아니라면 참고 보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그래도 그 작품들의 존재 이유라면,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아픔을 통해 잠시나마 인간 본연의 감정이 정화되도록 하는, 깊은 상처를 지닌 혹자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탄 전작 ‘피에타’는 이전 작품들보다 절제된 표현, 부모의 헌신적 사랑이라는 깊은 주제의식으로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그러나 5일 개봉하는 신작 ‘뫼비우스’는 일종의 ‘퇴행’이다. 스스로를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며 밑바닥 생활을 하며 학대와 멸시를 견뎌온 그는 ‘승화’라는 기제를 삶으로 실현해 보인 예술가다. 그리고 ‘피에타’는 희생과 속죄라는 인간적 성숙의 최고점을 보여준 절정이었다.

그런데 ‘뫼비우스’로 오면서 정신분석 사례로 쓰일 만한 헝클어진 무의식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아버지처럼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무의식적 성적 애착, 거세 공포,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꿈꾸는 아동기의 복합적 심리를 뜻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그대로 전시한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인간 원형심리 탐구이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성기를 소재로 삼은 것은 역겹다기보다 유치하다.


이번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아직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유아들의 육탄전이나 악다구니, 투닥거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극적 전개이나 몇몇 신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는데, 블랙코미디적 상황도 상황이지만 몸만 자랐을뿐 미성숙한 인물들의 치졸한 행동이 원인이기도 하다.

‘피에타’에도 등장하는 폭력적이면서 엽기적인 행위, 근친상간적 설정도 여전하다. 참회와 부모의 희생적 사랑이라는 테마의 연장선상으로 보이는 지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역행한 그의 정신세계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자기고양 직후에 찾아오는 후유증 같은 것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사실상 국내 상영불가인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가 총 3분여 분량을 잘라내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내려오는 논란 중에 줄거리는 알려질만큼 알려졌다. 남편의 외도에 증오심에 차 있던 아내는 복수로 아들의 성기를 자른 후 집을 나가고, 남편은 원인이 된 자신의 성기를 절단해 보관했다가 아들에게 이식시킨다. 아들은 아버지의 연인에게 성적 호기심과 연민을 느끼지만 결국 돌아온 어머니와 근친상간적 상황으로 치달으며 파국을 불러온다는 내용이다.


남편 역은 김 감독의 원조 페르소나라 불리는 조재현(48), 아내 역과 남편의 애인 역은 케이블채널 드라마 ‘TV방자전’(2011)에서 춘향 역을 맡은 이은우(33)가 1인2역으로 소화했다. 아들 역은 ‘범죄소년’(2012)으로 도쿄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최연소로 받은 서영주(15)가 연기했다. 이은우는 온몸을 던진 열연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2명의 캐릭터는 서로 다른 인물처럼 보이면서도 욕망이라는 틀 안에서 같은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김 감독의 의도에 맞아떨어진 캐스팅이다. 개인으로서의 고유성은 중요하지 않다. 성적 욕구를 분출하는 본능적 욕정의 대상일 뿐이다.

이 영화는 온통 ‘리비도’(성본능·성충동) 만의 향연이다. 등장인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성, 도덕, 윤리 (초자아)는커녕 자아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남근기에 고착된 듯 원초적 욕구(이드)로만 가득하다. 극중 ‘스킨 마스터베이션’과 칼을 어깨에 꽂아 쥐고 흔드는 간접 자위행위로 표현되는 ‘온몸이 성기’라는 김 감독의 창안은 이 근원적 욕망 만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극중 남성들은 남성기만이 자아의 전부인양, 성욕만이 삶의 이유인양 이에 집착한다.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난폭함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여성을 대상화로 한 엿보기, 성폭력, 윤간, 피해여성의 전치심리 등 가학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묘사는 ‘나쁜 남자’(2001) 등과 같은 초기작의 윤회다.

“가족, 욕망, 성기는 애초에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아버지고, 어머니가 나고, 어머니가 아버지다. 애초 인간은 욕망으로 태어나고 욕망으로 나를 복제한다. 그렇게 우린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결국 내가 나를 질투하고 증오하며 사랑한다”는 것이 김 감독의 작의다. 적나라한 변태적 표출보다는 거장다운 한층 심오한 심리극으로 탄생할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 감독은 그 유치함이 인간의 자화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론적으로는 성숙하고 독립된 인격체들이 모인 이상적 가정을 이뤄야 마땅하지만 실제 가정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 중에는 1차원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일어나는 갖가지 비극들이 많다. 뉴스에 나오지는 않지만 애증과 투사와 광기와 폭력이 한 덩어리로 뒤엉키며 망가진 가정과 개인의 일을 기록한 전문가용 사례집이 존재하고, 그나마도 드러나지 않고 가슴 속에 묻고 사는 상상 이상의 ‘가족의 비밀’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열흘 만에 촬영을 마친 저예산 영화인데다가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고 찍었기에 만듦새가 거칠다. 하지만 러닝타임 90분을 꽉 채운 역동적 드라마에서는 에너지가 넘친다. 등장인물들의 반복적 행동, 수미상관 구조, 돌고도는 카르마(업)를 떠올리게 하는 승려의 출연을 통해 ‘뫼비우스의 띠’라는 상징적 의미를 교묘하게 각인시키는 것도 19편의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의 능수능란함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영등위와의 갈등이 심화되자 김기덕필름 측은 지난 7월26일 영화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이 영화에 대한 찬반시사를 열었다. 영화 관련 내용을 누출하지 않겠다는 서명도 받았다. 절박한 심정에서 벌인 일이었을 것이다. 107명의 투표참가자 중 87%에 해당하는 93명이 국내 상영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고, 김기덕필름 관계자들은 희색이 만면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에 찬성표를 던진 이들까지 이 영화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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