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아침, 휘파람새 울음에 잠을 깼다.
호호‥‥개객, 호호‥‥개객, 창밖 가까운 곳에서 울어댔다.
살아있는 즐거움이랄까,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휘파람새 소리가 반가웠다.
창문을 열었다. 완연한 봄빛의 햇살.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 호호‥‥개객
울음소리가 멀어져가더니 다시는 들려오지 않는다.
작년의 첫 울음소리는 언제였을까 궁금하여 일기장을 뒤적여 봤다. 2월 25일 (음력 2월 1일) 날짜 난에 '가랑비 속에 휘파람새 울음소리/ 올해에 유난히 자주 찾아오는 ‥‥' 이라고 적혀 있다.
유난히 자주 찾아온다는 덧붙임인 것을 보면 첫 울음소리는 그 일주일 전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재작년에는 언제였을까 하고 다시 뒤적여보니, 휘파람새에 대한 기록은 2월 28일(음력 1월 23일) 자에 들어 있었다.
올해의 3.1 절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그러니까 우리 집의 휘파람새는 대보름 날을 전후로 일주일 어간에 와서 우는 모양이다.
세세연년歲歲年年. 해마다 철을 어기지 않고 찾아와 우는 제주휘파람새 때문에 몇 가지 상념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 읽었던 공작해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작새는 꾀꼬리 울음소리가 부러웠다. 시기가 날만큼. 그래서 조물주에게 하소연했다. 어째서 저에게는 꾀꼬리 같은 고운 목소리를 주지 않으셨냐고. 이 아름다운 장속에다 고운 목소리를 가졌더라면 그 완벽함이 얼마나 희한했을 것이냐고.
그 말에 조물주는 정말 불만이냐고 물으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꾸짖으셨다.
"너는 그 화려한 모양새를 족한 줄 알아라. 하늘은 두 가지를 주지 않는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을 모르는가."
휘파람새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들어있는 독백이다.
'투르게네프의 글이었던가, 저 유난히 또렷한 두 개의 음절. 호호와 개객. 이슬에 젖은 초목草木은 몸을 떨며 기쁨으로 호응한다. 그러나 다음 음절의 경고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육중하니 가슴에 밀려드는 저 개객! 일어나라 눈을 뜨라고.'
호호 ‥‥개객. 창밖에 다시 휘파람새가 운다. 숨어서 우는 저 습성. 도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사전을 뒤적여 본다.
솔새와 비슷하다. 몸의 위쪽은 감람 갈색, 아래쪽은 오백색汚白色, 미반은 회백색임. 부리는 가늘고 뾰족함. 표조漂鳥로서 여름에는 관목림이나 초원에서 서식하고 겨울에는 평지에 내려오며 암적갈색의 알을 대여섯 개 낳음.3~8월에는 고운 소리로 우며 다른 새의 흉내를 냄. 아시아, 유럽에만 분포함. 익조이며 일명 '꾀꼬리'.
'제주휘파람새'라는 이름은 휘파람새 중에서도 목소리가 제일 맑고 곱다는, 다시 말해 으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일 게다.꿩도 제주장끼가 특별히 아름다우니 말이다.
이 아름다움들은 무엇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억겁으로 식은 쇠빛 바다? 미모의 한라산? 원생의 수림? 이들이 모두 어울린 복된 터전 때문일까.
호호 ‥‥ 개객. 귀를 기울이다가 부지중에 웃음을 머금어 본다. 투르게네프가 말한 두 개의 음절. '호호‥‥개객'이 '호사다마
好事多魔'로 들렸기 때문이다.
호‥‥사‥‥다마! '수서사건' 도 그렇고 '뇌물 외유'도 그렇지 않으냐고 3.1절 아침에 제주휘파람새는 울고 있는 것이다.
근 10년 가까이 휘파람새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왜 휘파람새가 찾아오지 않는 걸까. 제주시 다른 집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