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구랍, 조화弔花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최정희 선생의 장례 때의 일이다. 상가는 20평 남짓한 좁은 아파트, 밀려드는 조화 때문에 애를 먹었다. 대통령, 문화부장관, 예술원 회장의 조화만 영전에 놓고 나머지는 복도로 내놓는 결례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조화 중에 싱싱한 흰 국화 백 송이쯤으로 꾸민 대통령의 조화가 가장 장중해 보였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조화를 단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간소화 되던 관혼상제가 다시 허례허식으로 접어드는 기미여서 '새 마음'인가 '새 마을'인가 하는 단체에서 계도를 나섰다는 말이 들린다.
단속과 계도의 되풀이, 우리 민족의 허례허식은 질겨도 보통 질긴 풀뿌리가 아니다. 밟아서 죽여 놨는가 싶으면 또 되살아나곤한다.
속된 말로 세상엔 죽어도 안 되는 일이 있는것 같다. 단속이나 계도를 맡고 있는 관官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기가 찰 일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수월찮게 많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5.16 군사 정권에 의해 벌어졌던 이른바 의식 개혁 운동만 해도 그렇다. 허례허식을 몰아내자. 미신을 타파하자 등의 구악舊惡 추방을 위한 실천 요강을 내왔었다. 그 중에 '단일과세單一過歲'도 들어 있었다.
단일과세 운동은 5공 때까지 계속되었었다.
그런게 결과는 어떠했는가. 제주도만 해도 동쪽은 음력설, 서쪽은 양력설을 세는 '동음서양東陰西陽' 이 판세가 요지부동이었다가 작년에 이르러서야 음력설로 귀착되었다.
설뿐이 아니다. 70년대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정부는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경찰을 통해 단속했다. 스커트는 무릎의 어느 선까지, 머리칼 몇 cm 까지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가위를 들고나선 경찰관과 장발족 사이에 자주 실랑이가 벌어졌다. 일과성에 불과한 유행을 관이 단속하겠다는 발상이 애초 잘못이었다.
또 무속巫俗도 수난 당한 적이 있었다. 미신을 타파한다고 각 마을의 당堂을 부수고, 무구巫具 따위를 수색하여 불살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풍어豊漁나 사자死者의 극락행을 비는 굿은 지금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
조화가 나쁠 게 뭔가. 허례허식을 놔둔들 어떤가. 막아서 막아지지 않으면 긍정적 입장에서 재검토해봐여 할 것이다. 그러니까, 조화를 허용하되, 대통령부터 수백 송이의 화환을 보내기보다 자그마한 꽃바구니를 보내고, 사회적 지도자들부터 가족끼리 결혼 피로연을 갖는 게 좋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중국은 살벌했던 '문화혁명'을 가지고도 대가족 제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한다. 또 김부자 생일날이 최대의 명절인 북한에서도 설날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모든 일은 순리에 따라 조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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