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상(李衡祥:1653~1733):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 본관은 전주(全州), 효녕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 1680년(숙종 6)에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성균관 전적⋅성주목사⋅경주부윤 등을 거쳐, 1702년(숙종 28) 6월 제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신당(神堂) 129개소를 소각하고 무당 185명을 귀농시킨 일은 이곳에서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다. 1703년(숙종 29) 6월 대정현에 유배 온 오시복(吳始復) 판서의 편의를 보아주

1702년(숙종 28) 3월 25일. 때는 늦은 봄이라 바람은 빠르고 조수는 급하니 배는 심히 빠르게 가는데 뱃사람이 말하기를 “총알도 반드시 뒤로 떨어진다.”하기에 이를 시험하여 보니 과연 그리하였다. 사시말(巳時: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돛을 달아 술시초(戌時:오후7시)에 닻을 내리니 곧 이른바 제주이다. 집집마다 귤유(橘柚)이고 곳곳마다 화류(驊騮:좋은말)이다. 기이한 암초가 즐겁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다만 돌 색깔이 추악하다. 토질은 부조(浮燥)하고 구릉은 뚝도 되고 평지도 되고 있으니 가증할 따름이다. 제주 목사로 도임하여 상관(上官)으로서 날이 많지 않으므로 급작스레 지팡이와 신을 준비하였다.

4월 15일. 새벽 참에 40리를 가니 해가 뜰 무렵 산 밑에 도착하였다. 일대가 비단을 펼친 듯 눈에 들어오니 눈이 부시다. 휘장 같기도 하고 치마 같기도 하다. 모두 벌리어 펼쳐진 것이다. 영산홍(暎山紅)으로 붉은 꽃이 곱게 만발하였다. 사이에 소나무와 대숲과 향기로운 풀이 연한 녹색을 이루니, 이 때문에 처음부터 흥취가 났다. 보교를 버리고 말을 타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에는 푸른 풀
때때로 혹 인적이 미치지 못한 언덕에 눈이 갔는데(양쪽 바위가 절벽이어서 휘어잡고 올라도 미치지 못한다.) 반송(盤松: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과 세사(細沙:가느다란 잔디)가 산뜻하고 깨끗하여 그윽하고 고요하다. 마치 신선(神仙)이 모자를 쓰고 도복을 입고서 은근히 한가롭게 노는 듯하다. 참으로 진⋅한(秦漢) 두 천자(天子:진시황과 한무제)로 하여금 이를 보게 하였더라면, 거의 애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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