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커타의 칼리 신전 앞..


아침부터 염소 몇 마리를 잡아 칼리 여신께 공양한다 하더니 알고 보니 어차피 사람들이 먹는거라 한다.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산사람을 잡아 공양했다는 칼리 신전.. 산사람 잡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염소 몇 마리 잡아 가죽을 벗기는 것이 그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특별한 광경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양 몇 마리 잡는 것을 보고 나니 어느덧 점심때다. 신전을 나오니 뒷문 쪽에는 걸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신전에서는 점심때 공짜로 밥을 공양해준다고 한다. 식비나 줄여볼까.. 나도 이들 틈새에 끼여 앉아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몇몇 사람들이 서툰 영어와 힌두어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 거리의 인도사람을 평가하자면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다. 더럽고 가난한 건 둘째치고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 그러나 대부분의 인도 여행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이들은 항상 영혼의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고 인생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싶어했다.

우스운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미친놈 취급을 해버릴 사람들인데 인도에서는 싫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의 영혼이 아니면 삶의 지혜.. 그리고 인도의 현실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내 반응을 조금 지켜보다가 내 영어가 서툴다는 것을 느끼면 정말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 단계를 낮추어 다시 인생을 논하기 시작한다.

히피 기질의 사람들이 인도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서나 인생을 논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묻지 않고 다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문제를 묻곤 했다.

만약 인도를 다녀온 어느 대학생 배낭여행자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들은 팁을 노리는 단순한 가이드라고 말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은 류시화의 인도는 없었다고 인도를 말한다. (그리고 나역시 류시화 풍의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류시화가 거짓말을 한다는 인도를 다녀왔다는 배낭여행자들에게 묻고 싶다. 한번이라도 거리에서 냄새나는 밥을 얻어 먹은 적이 있었는지..? 악취를 참아가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사람들과 오랫동안 인생에 대하여 대화를 해본적은 있었는지..? 현지어는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배탈나는 것과 상관없이 거리의 물을 마시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서 현지인의 집에 단 며칠이라도 머물러 본 적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인도여행을 다니며 깨달은 것은 배낭 여행자와 인도순례자이다. 많은 배낭여행자들은 인도를 느끼기 위해 인도에 왔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인도 관광객들을 위한 값싼 호텔에서 묵고 외국인들끼리 몰려다니며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문화상품을 영위한다. 불교인들 역시 불교성지를 방문하겠지만 가이드북에 나온 곳이라면 관광지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몇몇 배낭여행자들은 사기꾼이 아닌 인도 현지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들을 보인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친구들이 대도시나 관광지에서 살고 있는 어느 정도는 교육을 받은 문명인들이다.

적어도 나는 류시화의 인도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다른 말로 표현해서 누구든지 돈 없고 멍청한 배낭여행자라면 아직은 그런 곳이 인도라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현지 문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으려면 현지어를 잘하거나 영어를 아주 못해야 한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가이드들의 영어를 듣다보면 우리는 가이드북에 나온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 상술의 기본이고 알게 되면 명품을 고르는 것이 소비자들의 기본심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관광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전 앞에서 걸인들과 함




커다란 머그컵에 밥을 받아 먹고있는 나에게 자칭 인생의 친구는 인도와의 인연을 얘기했었다. 내가 뭔가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해 인도에 왔을거라는 얘기인데.. 음.. 그리고 나는 며칠 전에 헤어진 나를 사랑했다는 이스라엘 남자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고 말했지만.. 아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냥 흔들렸던 것 뿐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방황으로 여행을 시작한지 겨우 한달 남짓 넘었을 때였다. 그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인도 여행자였고.. 짧은 시간 같은 여행길을 올랐던 것 뿐이었다.

시작은 단순히 여행의 동반자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나는 방황하고 있었고 알 수 없는 절망감에 외로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던 그는 확실히 재미있는 존재였었다. 그리고 그가 사랑고백을 했을 때 내 머리는 여행의 동반자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일지도 모른다고 내게 속삭였었다.

친구는 진지하게 내 서툰 영어를 듣고 있었다. 바구니를 뒤집어쓰고 자른듯한 우스꽝스러운 머리와 옷에서 오래된 악취들이 풍겼었지만.. 낮선 여행자의 해답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친구에게서 알 수 없는 인도의 향수가 느껴졌다.

그는 인도인들의 사랑이야기를 했다. 남편과 아내는 사회 관습에 따라 묶여지는데 그의 계층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딸을 밥 몇 그릇에 시집보낸다고 했다.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팔아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도 사회와 남편은 그 아이를 남편의 아이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것은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라 말하고 자신의 아내도 그러

사랑과 질투, 친자의 진실을 떠나 가난한 이들의 사랑 법은 서로의 영혼을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그는 나에게 이스라엘 남자의 영혼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외로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물었었었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나를 방황하게 만든 영혼이 한국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왜 인도에서 해답을 얻는지 묻는다. 나는 해답이 아니라 좀더 큰 영혼으로 성장하여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은 것이라 대답했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화를 했었고.. 나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그가 보이는 인생에 대한 철학에서 알 수 없는 질투와 평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억이 여기까지인 것은 여기까지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을 설명하던 그가 말을 멈추고 물을 마시겠냐고 물어 봤던 것으로 봐서는 말이다.




그가 물을 뜨러 간 사이 또 다른 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내 가방안에 필요 없는 물건이 있는지를 물었고 인도 음식과 물을 마시는데 외국인인 내 위에서 프러불럼(문제)이 생기지는 않느냐고 물었었다. 프러블럼이 생기는 건 노 프러블럼(문제 없는데)인데 토이렛(화장실)이 없는 것이 외국인인 나에게 진짜 프러블럼이라고 가볍게 응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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