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7일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변에서 절부암(節婦岩) 추념음악제가 경건하고 성황리에 거행된바 있다.

절부암은 조선조 수구개화파의 대립에 일본침략의 마수로 나라가 어수선한 시대였다. 이때 용수리에 꽃다운 두젊은 부부 남여의 슬픈죽엄 실화 한토막 절부암음악제 전을기화로 재삼 이들을 소개 그뜻을 기리고 한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변에 의녀 고랑의 절개를 기리기 위한 절부암 마애명(磨厓銘)이 있다. 절부암 비이다. 풍랑으로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을 애타게 부르다 치친 아낙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목매어 죽은 불쌍하고 갸륵한 의녀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마애명 절부암이다. 동리에서는 해마다 제례를 봉행하고 제전(祭田)도 마련 현존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변사하자 크게 슬퍼한 나머지 바닷가 부근 나무에 목매어 죽은 아낙의 갸륵하고 슬픈 사연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포구 남쪽에 절부암이라고 하는 고목이 무성한 속에 큰 바위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1863) 지사포(용수리)에 고(高)씨 성을 가진 16세 처녀와 강사철(康士喆)아라는 총각이 살았다. 두 사람은 가까이 살면서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총각은 집이 가난했다. 그는 고산 앞바다에 있는 차귀섬에서 대나무를 베어와 대바구니를 엮어 그날 그날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이 결혼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2, 3일 후에 남편은 차귀도에 갔는데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고랑 아내는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가 남편의 시체나마 떠오르기를 하늘에 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석달을 기다린 끝에 아내는 동네 앞 바닷가에 있는 절벽에 있는 팽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남편의 시체가 그 밑에 떠올라 왔다.

이 광경에 동네 사람들은 이상한 일이라고 수근거렸다. 그것이 소문이 되더니 원의 귀에까지 이르렀다. 그 때 판관 신제우가 소문을 듣고 만약에 자기가 과거에 급제한다면 열녀비를 세워 주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신제우는 과거에 낙방하고 말았다. 낙향하려고 남대문(한양)을 지나다가 점이나 쳐볼까 싶어 괘를 받아 보니 한 여인이 늘 뒤를 따라다니고 있어서 잘 모셔 주면 급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도 어떤 여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루는 동네 사람들과 객담을 하다가 고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신제우는 그 당시 자기가 공언한 생각이 나서 자기를 따라 다니는 여인이 고씨가 아닌가 싶어

신제우는 과거에 응시 이번에는 급제하였다. 그에게는 제주목 대정현감의 요직이 제수되었다.
부임하는 즉시 신제우는 조정에 상소하여 고씨의 열녀비를 세우고, 두 부부의 시체를 당산봉(한경면 고산봉) 서쪽 비탈에 합장하여 3월 15일 큰 제사를 지냈다. 그 뿐만 아니라 신현감은 고산과 용수 양마을 사람들에게 돈 100냥을 내주며 해마다 3월 15일이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으며, 고씨가 목매어 죽은 절벽을 절부암이라 명명하였다.

열녀 고씨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농촌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고랑은 부지런하고 착한 소녀였다.조실부모로 기구한 운명에 처한 고랑은 동면 해안마을 용수리로 이사하게 되었다. 강사철은 서귀포시 중문동 역시 농촌 하원리에서 동하효리 또 간전(墾田)할 곳을 찾아 한경면 저지리를 거쳐 동용수리로 부친따라 이주하고 있었다. 두 남녀는 용수리 마을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서로 좋아

일찍이 조실부모로 기구한 딱한 사정을 아는 강사철은 고랑을 위로하며 더욱더 가깝게 지내어 오다가 고랑이 16세때 드디어 혼인하기에 이르렀다. 부지런한 금술좋은 두 남녀는 어였한 부부며 주로 고기잡이와 대바구니 혹은 짚신을 엮어 팔아 살면서 후회없는 단란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차 마침 내바구니 엮는데 필요한 재료인 대나무를 구해 오려고 부근 고산 앞바다 차귀도에 가서 대나무를 베어 배

절부암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용수리의 옛이름 지삿개, 벗개)로 해안가에 위치한 해안마을이며 절부암 마애명은 판관 신재우(愼裁佑)가 고랑이 절행을 기리기 위한 계액이다.

신재우는 제주시 조천리 출신이며 현관이였다.
한편 한경면 저지리 명리동(明利洞)을 열녀가 태어난 동네라하여 열녀동이라 불러 오기도 한다.
어린미성 그나마 금술 좋은 부부 꽃다운 세상을 못살고 불귀의 객이된 강사철 고랑의 부디 명복을 기원해 맞이 않은다.
뜻깊은 한경면 용수리 절부암 추념 음악제 연연 성공적으로 거행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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