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누는 작은 습관, 새로운 나눔 문화를 만드는 ‘미리내 가게’

▲ “귀여운 미리내 마스코트 간판이 반겨주는 곳은 모두 미리내 가게이므로 주저 말고 들어가면 된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고 두잔 값을 지불한다? 그런데 그 커피를 ‘맡긴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는 커피 주문 후 주문한 내역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카페를 찾아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배려’로부터 시작됐다.

그 ‘배려’가 미국, 러시아, 캐나다, 호주, 유럽 등 전 세계를 아울러 대한민국, 그리고 제주에 도달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맡겨둔 커피’, ‘미리낸 커피’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의 조합이 그 이름마저 아름다운 ‘미리내 가게’로 변화해 새로운 기부문화를 양상하고 있는 것.

#‘미리내 가게’ 그 시작

‘미리내 가게’는 동서울대학교 김준호 교수가 국내에 첫 도입하며 시작됐다.

김 교수는 초기 ‘기부톡’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나눔 문화 확산을 기대했으나, 생각보다 낮은 참여율로 한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여러 단체와 기업을 접하며 도움을 얻었으나 ‘좋은 마음’에 행했던 나눔이 퇴색되며 색안경을 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때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김 교수는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를 접하게 됐고, 이에 한국 문화를 접목 ‘한국식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인 ‘미리내가게’를 탄생시켰다.

미리내가게는 올해 5월6일 경남 산청에 소재한 ‘후후 커피숍’에서 첫 발을 내딛고 스리랑카, 일본 등 해외까지 뻗어나가며 100개소 지정을 앞두고 있다.

제주는 총 4개 지점이 미리내 가게로 등록돼 있으며, 다양한 곳에서 참여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미리내? 말 그대로 정말 ‘미리’ 낸다!

미리내의 자세한 이용법을 살펴보면, 먼저 미리내고, 미리낸 금액 만큼 쿠폰을 ‘미리내 쿠폰 박스’에 넣으면 된다.

그럼 가게주는 쿠폰 수를 헤아려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알림판에 기재한 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미리내 쿠폰의 쓰임새는 가게주의 운영방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귀여운 미리내 마스코트 간판이 반겨주는 곳은 모두 미리내 가게이므로 주저 말고 들어가면 된다.

김 교수는 “미리내고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것은 곧 신뢰가 생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신뢰 형성을 위해서는 나눔이란 ‘문화’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미리내가게는 나눔을 받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누구나 나눔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나눔의 액수와 물품은 중요하지 않다. 나누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

이처럼 미리내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게 큰 장점이다. 따로 정해져있지 않는 기부 액수와 물품은 나누는 사람의 부담을 줄인다.

김 교수의 첫 의도도 그러하듯 부담을 없앤 기부를 통해 일종의 ‘기부문화’, ‘나눔문화’를 먼저 형성, 접근 자체가 쉬워지도록 해 누구나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

현재 미리내 가게에 실제 기부되는 금액은 100원에서부터 몇 만원까지 다양하다.

기부금으로만 나눔을 진행하는 것 또한 아니다.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유 공간을 나눌 수도 있다.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한을 받지 않는다.

▲ (좌)제주 제1호점으로 미리내 가게에 등록된 ‘찬찬찬’ 반찬가게 사장님들과 (우) 제2호점 미리내 가게 친환경식품매장 ‘자연이다’ 사장님들
# 산 건너, 바다 건너 바람타고 제주에 왔단다

저소득 주민들에게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해 자립, 자활, 창업을 지원하는 서귀포일터나눔지역자활센터가 ‘미리내 가게’ 프로그램을 제주에 첫 도입했다.

일터나눔자활센터가 마련한 시장 진입형 사업인 ‘찬찬찬 반찬가게’가 제1호점으로 11월1일 미리내가게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총 3명(김미순, 양성희, 김소정)의 사장님이 운영하는 이 가게는 조그마한 밑반찬 가게로 주 단위로 식단을 편성 매번 다른 맛깔난 반찬을 고객에 판매하고 있다.

김소정 사장님은 “일할 수 있는 기쁨을 얻고, 나눌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것은 참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세 분의 사장님 모두 망설임 없이 미리내 가게 프로그램 도입을 찬성했다고 전했다.

또한 “어렵던 어렵지 않던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나눔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만큼 직접 음식을 해먹을 수 없는 취약계층 아동들이 더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찬찬찬은 반찬을 사고 돈을 미리내는 방법과 밑반찬을 구입한 후 적립되는 3~5%의 적립금이 현금처럼 사용돼 포인트(회원에 한에 적립)를 기부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도입 초창기로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향후 미리내 가게에 미리낸 금액이 쓰이지 않을 경우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반찬을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으로 바통을 이어 친환경 식품매장인 ‘자연이다’가 제2호점으로 등록됐다.

‘자연이다’는 친환경, 유기농 식품과 사회적 기업의 물품을 통틀어 판매하는 매장으로 총 8명(정미선, 김혜영, 송창미, 이미경, 김신형 등)이 운영한다.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판매하는 곳인 만큼 일반 고객보다 소득이 높은 계층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찬찬찬과는 다르게 이용객이 미리낸 금액이 일정 금액으로 모일 경우 지역아동센터 등의 복지시설에 나눔기부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이미경 씨는 “일할 수 있는 기쁨을 주셨는데 나눌 수 있는 기쁨도 주심에 감사하다”며 미리내 가게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김혜영 씨 또한 “내가 미리 낸 나눔이 다시 나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나눔의 즐거움을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았다.

재기의 도움을 얻어 ‘나눔’을 먼저 받았기에 내가 나누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현재 자연이다의 미리내 이용 방법은 돈을 미리내는 방법에만 준하고 있으며, 포인트 적립이 도입 예정이다.

또한 자활기업인 ‘푸짐한 밥상’이 제3호점으로의 시작을 준비 중에 있어 제주의 ‘미리내 가게’가 전국에 빠르게 확산된 만큼 제주에서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 이제 함께 미리내볼까?

선뜻 내어놓을 수 있는 작지만 큰 용기가, 또 내 주위의 누군가가 받게 될 나눔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 ‘미리내 가게’

실제 정부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선발, 국가적인 도움을 주고 있지만 실상을 둘러보면 기준에 맞지 않아 선정 탈락이 된 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다.

또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실로 가까운 곳에 작은 나눔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없이 클 나눔이 순환적 역할을 하며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미리내가게는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라면 어디든 등록가능하다.

하지만 사장인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하며, 종업원을 두고 사장님이 영업소에 나오지 않는 경우는 신청할 수 없다.

미리내가게 신청은 이메일(mirinae.soso@gmail.com)을 통해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 되며, 미리내 대표 김준호 교수를 비롯한 미리내운동본부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 선정 후 등록된다.

시작 6개월만에 100개소에 달하는 바람이 불었다. 이렇듯 작지만 큰마음들이 모여 얼마나 아름다운 바람이 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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