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권혁진 기자· 사진 강진형 기자 = 지난해 12월29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는 구자준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를 비롯한 배구 관계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주 방문 목적은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경기 관람이 아닌 김건태(59) KOVO 전임 심판의 은퇴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코트의 포청천'으로 불리며 30년 간 휘슬을 불어온 김 심판은 이 경기를 끝으로 심판석에서 내려왔다.

그는 1987년 국내 A급 심판이 된 이후 1990년 국제심판, 1998년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 자격을 차례로 취득하며 20여 년 동안 총 350여 차례 국가대항전 A매치 심판을 봤다.

그랑프리· 월드리그·세계선수권대회·올림픽 등 중요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12회나 주심으로 심판대에 오르는 등 한국 배구계에서 가장 성공한 심판으로 꼽힌다.

KOVO 심판위원장 재직 시절에는 트리플크라운과 비디오판독·여자부 2점 백어택·심판 알코올테스트·재심요청 제도 등을 정착시키며 국내 프로배구가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건태 심판은 6일 뉴시스와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가감 없이 털어놨다.

◇김건태 심판과의 일문일답

- 은퇴식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심판 생활에 대한 한(恨)의 표출이었다. 그 한은 나보다 더 많이 심판을 봐야 알 수 있다. 가능하다면 내 속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다."

- 배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언제인가.

"1967년이다. 사연을 이야기하면 길다. 나는 사정상 고등학교를 또래들보다 2년 늦게 입학했다. 선생님이 배구를 해보라고 하셔서 처음 시작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 늦은 나이에 배구를 시작한 셈이다.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웃음) 운동을 잘했다. 기량이 괜찮아서 4년 만에 테헤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혔다."

- 잘 나갔는데 왜 그만뒀나.

"1974년도 겨울은 엄청나게 추웠다. 그해 레이노스병이 찾아왔다. 구정날(설날) 갑자기 오른손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동맥이 막혀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도 손이 차갑고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 1975년에는 모든 신경 조직을 다 뜯어냈다. 안 그러면 피가 돌지 않아 손이 썩는다고 했다. 운동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서 결국 조기에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충주비료와 럭키에서 일을 했다. 아주 열심히 근무를 한 편이었다."

- 안정적인 회사원에서 힘든 배구 심판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배구 기자재 담당관을 맡게 됐다. 일을 하던 중 김순길 선배가 찾아와 '배구 선수 생활도 했고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행정 능력도 갖췄으니 심판을 해보라'고 설득했다. 김 선배의 설득을 이기지 못해 억지로 심판의 길로 입문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심판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 관심이 없는 사람치고는 진급이 빨랐다.

"1990년에 국제심판이 됐다. 그때 세계 최고의 심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시아대회에서 심판을 보라고 불러도 나는 세계대회가 아니면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1998년에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이 됐다. 8년 만에 FIVB 심판이 된 것은 전례가 없었다. 그만큼 빨랐다. 1995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심판을 보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1997년과 1998년에 중요한 대회의 결승전을 잘 치르다보니 남들보다 빨리 FIVB로 갔다."

- 과정이 꽤나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에는 수도승 생활을 시작했다. 일단 감독이나 코치, 선수, 팀 관계자들을 무조건 만나지 않았다. 다들 배구를 하면서 맺어진 가까운 선후배 사이인지라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사생활은 철저해야 했다. 공개적인 자리 외에는 절대로 사람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 지금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A감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내년이면 코트에서 만날 수도 있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차라리 만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사람들과 점점 멀어졌다. 외롭고 고독한 날들이었다."

- 심판들 역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전성기가 있나.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 분야를 1만 시간 경험하고 공부해야만 전문가 소리를 듣는다. 심판은 산전수전 공중전 등 다 겪어야 한다. 구단으로부터 욕도 먹고 싫은 소리를 다 들어봐야 한다. 1990년대에는 슈퍼리그 전 경기를 녹화해 세 번씩 돌려봤다. 내가 심판을 본 경기 뿐 아니라 남의 경기까지 다 봤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중에 비디오를 보면 판정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아쉬움이 생기면 이틀 동안 잠도 못 잔다. 스스로 용납이 안 됐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200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브라질과 유고의 월드리그 결승전이다. 당시 5세트 스코어가 31-29였다. 세계대회와 올림픽, 월드리그 같은 큰 대회에서는 일반 세트도 중요한데 그때는 결승전 5세트가 30점을 넘겼다. 1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보고 있는데 '실수를 하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 국제대회 심판 배정은 어떻게 하나.


"'언더 더 도어(Under the door)'라는 것이 있다. 내일 경기가 있으면 밤중에 방문 틈으로 심판 배정이 적힌 종이가 날아온다. 종이를 기다릴 때는 '내가 내일 배정이 되나'라는 생각에 잠을 못 자다가 배정이 확정되면 신경이 쓰여서 잠이 안 온다."

- 체력 관리가 중요해 보인다.

"정말 철저히 했다. 평소에 13㎞ 이상의 조깅을 매일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조깅을 했고 일주일에 2~3번은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체력이 떨어지면 좋은 판정을 내릴 수가 없다. 내 체중은 예전부터 86㎏이다. 주위에서는 다들 건강해 보인다고 하지만 이미 속은 다 타서 없어졌다."

- 선수들이 거칠게 항의하면 속도 좀 상할 것 같다.

"내 아들이 33살, 31살이다. 선수들이 아들 또래다. 선수들이 대놓고 욕을 하면 경고를 주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모르는 척 하는 편이다. 한국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리면 자연스레 '아이씨~'라고 하지 않나. 여기에 한 글자만 붙이면 욕이 된다.(웃음) 나중에 해당 선수를 경기장에서 보면 '한 글자 더 붙여서 욕을 하지 그랬냐'라며 웃는다. 선수들 중 가장 매너가 좋은 이는 현대캐피탈의 최태웅이다. 어필할 때도 정중하게 다가와서 말을 하고 합의 판정이 필요할 때는 손도 들어준다. 선수들의 어필은 프로배구 출범 후 나아진 편이다."

-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는데.

"팬들과 팀들이 '도대체 심판들이 왜 못 보느냐'고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를 하던 중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심판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팬들이 갖는 불만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것 같았다. 7년 전 FIVB에 'V-리그에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겠다'고 했더니 그런 것을 왜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FIVB에서 비디오 판독을 실시하려고 한다. (FIVB는 2013년 월드리그 결승전에서 챌린지 시스템 형식으로 처음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그래도 나는 '아웃'으로 판정했는데 비디오 판독이 '인'으로 나오면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다."

- 최근 V-리그에서는 합의판정이 너무 많다.

"동감한다. 진수성찬을 차려놔서 먹던 중 다른 일을 하고 10분 뒤에 다시 먹으려고 하면 밥맛이 싹 사라진다. 영화를 보던 중 중간에 필름이 끊어지거나 음악 감상 중에 소리가 중단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 것은 물 흐르듯이 가야 한다. 지금은 합의판정이 10번까지 갈 때도 있다. 물론 합의판정을 안 해서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 무척 어려운 문제다."

- 심판들의 국제 경쟁력이 어느 순간부터 정체된 느낌인데.

"배구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 전체의 문제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2002년 월드컵까지 개최한 나라다. 그런데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하는 심판은 단 한 명도 없다. 국제연맹에서 심판으로 활동하는 것은 자국 협회의 국제 경쟁력과도 연관이 있다.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심판은 물론 국제연맹 임원을 찾기도 힘들다. A매치에 가보면 일본이나 러시아, 이탈리아, 브라질, 세르비아 심판들은 자기네 나라 임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나는 늘 혼자였다. 누가 끌어주고 밀어준 일도 없었다. 2년 전부터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을 하고 있는데 한국 심판들이 오면 정말 잘 챙겨주려고 한다. 지난해 5월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 장웅 IOC 위원의 딸을 만났다. 현재 배구 국제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그 친구도 한국이나 북한에 임원이 한 명도 없어서 설움을 많이 당했다고 했다. 내가 많이 가르쳐줬다. 국제연맹에 올리는 보고서도 잘 써줬다."

- 자기계발에도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것 같다.

"심판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은퇴 후에는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국제 흐름을 알아야 하고 타 종목의 규정도 꿰고 있어야 한다. 국제 대회에 나가려면 언어는 필수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심판도 잘 봐야 한다. 24시간 심판만 생각해야 한다. 배구 심판은 시작과 함께 주부심으로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다. 선심부터 열심히 하면서 기록하고 계속 갈고 닦아야만 큰 심판이 되는 것이다. 욕을 먹을 때는 먹어야 한다. 그 과정을 버티기가 참 어렵다."

- 현재 한국 배구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슈퍼리그 마지막 결승전 때였다. 현대와 삼성이 맞붙었는데 1500명도 안 왔다. 그마저도 다 무료관중이었다. 프로 출범 10년 만에 이 정도 성장했다는 것은 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이다. 용병에 의존하면서 한국 배구 특유의 조직력이나 스피드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현재 모든 국제 배구는 직선의 배구를 표방한다. 하지만 한국만이 포물선의 배구를 하고 있다. 용병에게 크게 올려주고 해결하라는 식이다."

- 경기력를 제외하고 보면 V-리그가 자리를 많이 잡은 편인가.

"세계적으로 제도나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리그가 V-리그다. 러시아나 이탈리아 리그는 선수들의 연봉이나 기량만 높고 다른 면은 아직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우리가 더욱 발전하려면 한국 배구 실정에 맞는 로컬룰을 개발해야 한다."

- 후위 공격 2점제를 입안하기도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2003년 슈퍼리그 여자부에서 백어택이 얼마나 나왔는지 알고 있나. 고작 3개다. 한 시즌을 통틀어 나온 백어택이 3개다. 한국 여자배구의 공격 루트 중 후위가 없었다.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했다. 백어택 2점제가 나쁜 점도 있다. 하지만 팬들이 '옳다', '그르다'를 두고 많은 토론을 했다는 자체로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만큼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트리플크라운은 세터나 센터들이 하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선수 이름을 매스컴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제도인 것 같다."

- 심판만 30년 가까이 했으니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한 번은 국제대회 경기 중 쓰러진 적이 있다. 병원에 갔더니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신은 곧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아니다. 나는 항상 '안 된다, 안 된다'는 틀에서만 살았다. 나에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운동을 하루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고 심신의 안정이 없었으면 안 됐다. 술을 한 잔 마시면 심판이 술 먹는다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경계했고 누가 볼까봐 옷도 늘 깔끔하게 입고 다녀야 했다. 모범생처럼 사는 것만 되는 것이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삶이었다. 나는 잘 때도 심판, 일할 때도 심판, 쉴 때도 심판이었다."

- 심판들의 고충에 비해 대우는 여전히 형편없는 것 같다.

"배구 심판들은 풍족은 커녕 그냥 3D 업종이라고 보면 된다. 그 흔한 4대 보험도 안 된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쉽다. 한이 맺힐 정도다. 그래도 나는 성공한 심판으로 불리지만 은퇴하니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팬들과 주위에서 '고생했다'고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것이 보상금이자 퇴직금이다. 심판은 그냥 그만 두면 그만 두는 것이다. 퇴직금이나 국민연금, 보험 등 아무 것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얼마 전 뉴스 초대석에 나갔는데 퇴직금이 없다고 이야기하니 캐스터가 깜짝 놀랐다. 그런데 나는 걱정거리도 아니다. 후배 심판들은 정말 큰 문제다. 애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심판 수입으로는 정말 많이 부족하다. 총각 심판들은 장가도 가야 하는데 돈 때문에 못 가는 애들도 많다.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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