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영 기자의 사하라 사막 완주기]

세계 사막마라톤의 대명사인 MDS(Marathon Des Sabes) 대회에 제주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 임재영 제주주재기자와 오지트레일 러너인 안병식 씨가 출전했다.

7일 동안 식량과 장비 등을 배낭에 짊어진 채 244㎞를 뛰고 걷는 극한의 레이스이다.
이 대회는 세계트레일러닝협회(ITRA)가 선정한 세계10대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완주기는 동아일보 임재영 기자의 이번 극한의 레이스 참가에서 느낀 격변적인 감정을 기고식으로 기재한다.

▲ 동아일보 임재영 제주주재기자
모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모래는 더욱 발을 끌어들인다. 사막의 상인무리인 카라반은 수많은 낙타를 이끌고 지나가지만 본체만체 한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다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 몇 개의 헤드 랜턴이 어지럽게 비추고 삼각텐트 안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린다. 그때야 사하라사막 244㎞를 뛰고 걷는 레이스에 도전한 자신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레이스를 펼치는 도중 가장 힘든 과정인 일명 ‘롱 데이 레이스’(81.5㎞)를 하다 사막 한 복판 모래위에서 밤하늘을 베게삼아 잠시 누웠다가 꿈을 꾼 것이다.

10일 오전 5시, 또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방은 온통 암흑천지. 오로지 200m 간격으로 코스를 표시한 야광스틱 등만이 길을 안내했다. 저 멀리 성큼성큼 걷는 외국인 선수를 쫓아갔지만 금세 간격이 벌어진다. 몸을 달궜던 태양의 열기는 식었지만 미세한 모래먼지는 여전히 내장 속을 파고든다. 듄(Dune)으로 불리는 모래언덕을 넘을 때는 휘청거리면 헛발질의 연속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반달로 변해가는 달 주변으로 하얀 달무리가 생겼다. 빛과 어둠이 임무를 교대하는 여명의 시간, 사하라가 민낯을 내밀기 시작했다. 태양의 빛을 받은 모래언덕은 여인의 둔부마냥 농염하게 펼쳐졌다. 새벽에 먹이를 찾아 나선 낙타 어미와 새끼는 느긋하게 풀을 뜯었지만 결승선을 향하는 발걸음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마음은 바쁘지만 발은 여전히 무겁다. 자갈을 밟을 때마다 물집이 잡힌 발바닥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모래밭이든, 자갈밭이든 고통이 전해지기는 매 한가지였다. 포기하고픈 마음을 고쳐먹기를 수차례 한 끝에 골인했다. 다시 한고비를 넘겼다.

●서바이벌 레이스

▲ 동아일보 임재영 제주주재기자
6일부터 12일까지 모로코에서 열린 제29회 MDS(Marathon Des Sabes·사막마라톤). 사하라사막 북서부지역을 걷고 뛰는 세계 최고 권위의 사막마라톤이다. 1구간 34.0㎞, 2구간 41.0㎞, 3구간 37.5㎞, 4구간(롱 데이) 81.5㎞, 5구간 42.2㎞를 6일 동안에 걸쳐 진행한 뒤 7일째 되는 날 7.7㎞의 유니세프(UNICEF) 자선레이스를 펼친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45개국 1029명에 이른다.

이 사막마라톤의 특징은 7일 동안 자신이 먹을 식량과 장비 등을 배낭에 짊어져야한다. 선수가 자급자족하는 ‘서바이벌 사막마라톤’이다. 대회주최 측에서 조명탄, 위성추적기 등을 지급하지만 레이스기간 동안 물과 비박(bivouac·야영지)의 베르베르인 텐트(모로코 현지 베르베르인들이 사용하는 삼각형태 천막), 의료 등만을 지원할 뿐이다. 외부에서 식량, 차량 등의 도움을 받으면 실격이다. 출발과 도착, 체크포인트(CP·코스 중간 점검 지점) 등에서 정해진 일정량의 물을 받지 않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도 페널티가 주어진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첫 레이스부터 험난한 여정이었다. 사하라사막의 진수를 보여주려고 작심한 듯 장장 15㎞에 이르는 모래언덕이 가로막았다. 악몽 그 자체였다. 흙 설탕을 잘게 부셔놓은 듯한 사막 모래를 밟으면 밀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무릎을 펴고 서 있어도 그대로 내려갔다. 미세한 모래먼지는 신발의 숨구멍을 뚫고 양말 속까지 침투해 발과 마찰을 일으켜 물집을 만들어냈다.

간신히 모래언덕을 지났지만 평지라고 다를 바가 아니었다. 굳은 흙처럼, 단단한 바위처럼 보이는 바닥을 밟아보면 풀썩 발이 빠졌다. 참가선수들 대부분이 잔혹한 모래언덕을 되새기며 혀를 내둘렀다. 전체 레이스 구간 가운데 200㎞에 가까운 코스가 모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파른 오르막이더라도 단단한 흙길이면 감사한 생각이 들 정도다.

사막의 태양의 열기는 무서우리만큼 강했다. 45도를 오르내리며 몸을 달궜다. 바깥에 드러난 피부는 빨갛다 못해 까맣게 변했다. 건조한 날씨다 보니 땀이 흘러내릴 새가 없이 금방 마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람이 불면 마르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모래먼지가 뒤섞일지라도 바람이 기다려졌다. 땀이 흐르지 않는다고 방심하면 오산이다. 실제로는 상당한 양의 땀이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탈수증을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소금을 챙겨 먹어야했다.

모래언덕과 태양의 열기, 여기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선수들이 감내해야하는 부분이다. 식량을 비롯해 침낭, 램프, 칼, 호루라기, 소독약 등의 필수 장비 외에도 비상식량, 여벌 옷, 코펠, 매트, 스틱, 테이프, 자외선 차단제, 휴지 등을 합치면 배낭 무게는 10㎏내외가 됐다. 여기에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1~3L의 물을 담으면 무게는 더욱 늘어났다. 사막마라톤은 ‘무게와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이스가 진행될수록 식량이 사라지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는 줄어들지만 체력고갈도 동시에 나타나면서 몸으로 느끼는 무게는 처음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가슴 속 오아시스

 
힘든 레이스에서도 낯설었던 사하라는 어느새 익숙하게 다가왔다. 사하라 속살을 보고자하는 만큼, 눈으로 가슴으로 들어왔다. 모래언덕은 태양과 바람이 만들어낸 훌륭한 조형물이었다. 태양이 뜨거운 열기로 바짝 말려놓으면 바람은 그 모래먼지를 옮겨 신비한 능선을 조각했다.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산, 거대한 모래성이 병풍처럼 펼쳐진 가운데 메마른 호수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불모의 땅에서도 국화, 메꽃과 계통의 꽃이 띄엄띄엄 꽃망울을 활짝 펼쳤다. 물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데도 그들은 질기게 생명을 퍼트리고 있었다. 사막의 처음과 끝에 자란다는 타마리스크, 예수의 월계관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아카시아(싯딤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는 열기로 가득한 사막의 평원에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밤하늘을 무수히 수놓은 별빛은 축복이었다. 북두칠성, 오리온자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지친 몸과 마음에 단비를 내리듯 쏟아져 내렸다. 사하라사막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우리에게는 ‘환상’이었다.
태양과 모래를 견뎌내며 밤하늘에서 위안을 얻은 900여명의 선수들이 12일 오전 최종 출발선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픈 발을 보듬느라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사하라의 인간펭귄’을 보는 듯 했다. 며칠동안 입은 옷에는 땀과 소금기가 섞인 하얀 줄무늬가 징표처럼 새겨졌다. 제대로 씻지 못한 몸, 누런 옷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배어나왔지만 출발신호와 함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통증, 어깨를 옥죄인 고통이 더해가면서 어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모래언덕을 지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 결승선이 눈에 잡혔다. 어디선지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발걸음을 재촉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희열이 복받쳐 올랐다. 무릎을 꿇으며 나도 모르게 “해냈다”를 외쳤다.

극한의 레이스를 펼치는 이들이 가장 자주 듣는 “왜 가요”, “힘든 것을 왜 해요”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기자가 가장 느낀 감정은 고난의 과정을 극복한 뿌듯함이었다. 일상생활에 얼마나 적용될지 알 수는 없지만 삭막하고 메마른 몸과 마음에 ‘오아시스’가 생겨난 것은 분명했다.
이번 MDS에 한국에서는 기자를 포함해 모두 17명이 도전장을 냈다. 백전노장의 울트라 마라토너를 비롯해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로 자처하는 여성, 전역을 앞둔 육군대령, 대학제적생, 동물병원장, 방송촬영을 위한 연예인 등으로 다양했다. 참가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완주’라는 공통목표를 가졌다. 14명이 완주에 성공했다. 도전에 대한 성취감, 포기하고픈 마음을 딛고 일어선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참가한 이유, 완주 후 감정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인생에서 모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자신들의 길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MDS:
1984년 당시 28세인 프랑스인 콘서트 프로모터인 패트릭 바우어(현재 대회 매니저)가 홀로 350㎞의 사하라사막을 횡단한 뒤 1986년 23명이 참가한 최초의 사막마라톤 대회인 MDS를 열었다. 해마다 규모가 늘어 최근 매년 1000여명이 참가한다. 130명의 코스 자원봉사자, 450명의 진행요원, 50여명의 의료진이 지원하고 12만L의 물, 300동의 텐트, 120대의 차량이 쓰인다. 촬영과 긴급구조를 위해 2대의 헬기가 뜨고 위성통신시설이 갖춰진다. 한국에서는 2001년 당시 은행지점장인 박중헌 씨가 처음으로 참가한 뒤 매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인 여성이 MDS에 참가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개 사막마라톤대회(이집트 사하라, 중국 고비, 칠레 아타카마, 남극)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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