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관광진흥과 홍기확 주무관

▲ 홍기확 주무관
조선시대 관복의 소매는 폭이 굉장히 넓었다. 이 소매는 물건을 넣거나 통풍이 잘 되게 하는 실용적인 이유 이외에도, 가끔은 뇌물을 수수하거나 지방을 순시할 때 금은보화와 같은 진상품을 챙기는 어두운 이유로도 쓰였다. 과거시험에서는 이 소매에 ‘컨닝페이퍼’를 빼곡하게 만들어서 시험장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에도 뇌물죄는 있었다. 처벌은 재물의 무게로 정해졌다. 한 관(3.75kg)의 뇌물을 받으면 태형이 70대였으며, 55관(206kg)을 받으면 곤장 100대에 3천리 유배, 80관 이상이면 교수형이었다. 뇌물을 바친 백성도 처벌을 받았는데,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은 후 노비가 되었다.
중국 명(明)나라 우겸(于謙)은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 명나라 관리의 기강해이는 유명했다. 지방의 관리가 황제가 있는 수도로 올라갈 때는 재물과 그 지방의 특산물을 싸들고 명문세가에 바치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러나 우겸은 수도로 올라갈 때마다 빈손이었다. 이른바 정치를 알고서도 모른 척했다. 그러자 누가 금은보화는 아니더라도, 지방의 특산물이라도 가지고 가야 하지 않느냐고 권했다. 우겸은 멋들어진 시로써 대답한다.
"두 소매에 맑은 바람만 넣고 천자를 알현하러 가서,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면하리라(淸風兩袖朝天去, 免得閭閻話短長)"
여기에서 나온 고사가 청풍양수(淸風兩袖-두 소매안에 맑은 바람만 있다.)이다.
우리의 소매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거운 재물(財物)이나 죄물(罪物)인가, 아니면 청풍(淸風)이나 청렴(淸廉)인가?
이른바 ‘김영란법’이라고도 하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이 지난 5월말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들이 어떤 것이든 받으면, 대가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작년 이맘때 고위 공직자가 건설업자의 별장을 휴식 차 갔을 때,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증거가 없어 해당 공직자를 사실상 처벌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이 법은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처벌을 가하는 강력한 돌려차기다.
청렴은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분명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처벌로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효과가 있다면 도입이 필요하다. 제도가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시대는 지났다. 청렴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제도가 현실을 예측하고 앞서야 한다.
청렴, 그 맑은 바람을 사시사철 느끼고 싶다. 두 손의 소매 안에 누구나 맑은 바람만 넣고 다니는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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