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어린이 400여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은 이를 고의로 수혈한 외국의료진의 책임이라며 사형을 선고한 리비아 법원의 판결을 놓고 국제적 비판과 함께 판결의 공정성 논란이 대두되자 리비아 정부가 자국 법원의 판결을 감싸고 나섰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리비아 트리폴리 법원은 어린이 426명에게 에이즈 바이러스 오염 혈액을 고의로 수혈한 혐의로 기소된 불가리아 간호사 5명과 팔레스타인 의사 1명에게 지난 2004년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리비아 법원의 판결이 과학적 근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학계의 비판이 거듭 이어지면서 판결의 공정성을 놓고 국제적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리비아 정부는 자국 법원의 판결을 국제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압두라만 샬감 리비아 외무장관은 "리비아는 미국, 유럽, 어느 국가로부터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사건의 최종 판단은 리비아 최고법원에 달려 있다"고 못박았다. 그는 "누구도 리비아의 사법에 개입할 수 없다"며 "이는 우리(리비아)의 국가원수인 가다피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한편, 피고인의 변호인단은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60일 안에 대법원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피고 의료진들은 지난 1998년 426명에게 에이즈 감염 혈액을 고의로 주사한 혐의로 1999년 수감됐다. 현재까지 에이즈 감염 혈액을 수혈받은 어린이 426명 중 52명이 숨졌다.

▲ 계속되는 진실 공방...'희생양 만들기' VS '정의의 실현'

트리폴리 법원의 판결을 놓고 사형의 선고받은 간호사들의 모국인 불가리아는 판결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게오르기 파르바노프 불가리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스타니셰프 불가리아 총리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리비아 당국은 즉각 개입해 판결을 재조사하고 잘못된 판결을 기각함으로써 불가리아 간호사와 팔레스타인 의사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사법위원회의 프랑코 프라티니는 이같은 판결에 "경악"을, 미 백악관은 "실망"을 표현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측은 "판결의 공정성에 대해 심히 우려하는 바"라고 밝혔다.

그러나 감염된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법원의 판결에 희색을 보였다. 해당 병원에서 수혈을 받고 에이즈로 숨진 여자 어린이 모나(7)의 부모는 "정의가 실현됐다"며 "피고들은 하루 빨리 처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비아 법원의 판결이 국제적 논란에 휩싸인 데는 사건의 진상에 대한 리비아 검찰의 주장이 각국 의료 전문가들의 분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피고인들은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하며 리비아 검찰측이 고문을 통해 억지 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감염이 리비아 병원의 위생 문제로 비롯됐다며 병원측이 책임을 회피하고자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억울함을호소했다.

의료진의 변호단측은 에이즈 감염 사례가 발생한 것은 이들 외국인 의료진이 일하기 시작한 1998년 이전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변호단의 이같은 주장은 프랑스와 영국 등의 의료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진은 "어린이들이 1998년 3월 감염됐다는 리비아 검찰의 주장은 우리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이들은 훨씬 이전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리비아 측은 현재 피해아동의 가족에게 각각 1000만 유로의 보상금을 지급할 경우 사형에서 감형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불가리아 정부측은 보상금 합의는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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