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1일 전면 개방, 쌀 시장 판도는?

쌀 시장 개방, 1994년부터 20년간 미뤄… 의무수입물량 눈덩이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에 합류하기 위해 UR참여를 선언했다.

이로써 수입 농산물에 대한 장벽을 없애고 ‘관세화’의 물결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예외없는 관세화(tariffication without exception)’ 의무였다. 쌀 시장 개방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소용돌이쳤다. ‘식량안보’ 문제까지 불거져 나온 상황에서 무조건 빗장을 푸는 것은 정부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결국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쌀 시장 개방 유예를 신청했다. 대신 해마다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수입량은 해마다 2%씩 늘어난다는 조건이었다. 이후 2004년 유예기간이 종료되자 한국은 두 번째 유예를 신청했다.

20년 유예가 끝나가던 지난 18일, 정부가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더 이상 쌀 개방을 미루면 유예의 대가로 늘려오던 의무수입물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오히려 경제에 타격을 준다는 판단에서였다.

올해 쌀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쌀 생산량 423만톤(지난해 기준)의 9.7%에 해당하는 40만8700톤까지 불어났다. 더 이상 개방을 늦추면 이보다 2배 이상 의무수입량을 늘려야 한다.

늘어나는 수입량에 반해 지난 20년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국내 쌀 농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게 된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17일 기습적 쌀 전면개방 발표 중단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내년 1월1일 전면 개방, 쌀 시장 판도는?

정부는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수입쌀에 대한 관세를 400% 안팎으로 높게 책정해 국산 쌀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국산 쌀값은 가마(80kg) 당 17만원 수준이다. 수입쌀의 평균 가격은 6만5000~7만원 선이다. 여기에 400%의 관세를 매기면 26~28만원이 된다. 수입쌀이 국산 쌀보다 비싸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까지 높은 관세율을 유지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한 번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 높은 관세를 지키기 어려워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금 당장은 고관세를 유지하더라도 WTO와의 추가 협상이 시작되면 관세율이 점점 낮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값싼 수입쌀이 국내시장에 쏟아지게 된다.

앞으로 정부가 체결할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의 통상 협정도 문제다. 그동안 체결된 FTA 협상에서 쌀을 제외할 수 있었던 건 ‘쌀 관세화 유예’라는 기본적인 방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외국쌀 수입이 급증하면 특별긴급관세(SSG)를 부과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즉 관세율을 400%로 설정했을 때 쌀 수입량이 과거 3년 평균치보다 5%이상 늘면 133%(관세율의 1/3)의 특별긴급관세를 발동해 총 533%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 지난 18일 열린 쌀 전면개방 저지 광주전남농민 투쟁선포식. ⓒ전국농민회총연맹

불붙은 농심(農心)… 10년 전 목숨 건 농민투쟁 반복되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민들은 쌀 주권이 농민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강조하며 “쌀이 무너지는 순간 농촌도 무너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005년 한-미FTA 쌀 협상 비준 저지투쟁 당시 여성 농민 故오추옥씨는 ‘쌀 개방 안 돼’를 유서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어 여의도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했던 故홍덕표 농민과 故전용철 농민이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숨졌다.

또다시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투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성난 농민들은 지난 18일 창녕 도천리에서 400여 평의 벼 논을 갈아엎었다.

광주·전남 농민회는 21일 정부의 쌀 관세화 발표를 "식량 주권과 농업을 포기한 행태“라며 화형식을 진행하는 등 규탄집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쌀 관세화는 전면 개방의 시작점"이라며 "정부는 고율관세를 적용하면 의무수입물량 외에 한 톨의 쌀도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결국 한중 FTA 협상과 TPP협상을 통해 관세감축과 철폐의 압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쌀 전면 개방선언을 '식량참사‘로 규정했다.

이 외에 정부가 협상이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도 않고 너무 쉽게 식량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국회와 농민단체·전문가들이 참여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여론의 파고 속에서 9월 WTO 통보 시한을 앞둔 정부가 불붙은 농심을 어떻게 잠재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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