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4일 탄생한 제스피, 8억2000만 원 매출 달성
100% 맥아로 만들어지는 유럽식 정통 맥주의 맛 "늬들이 알아?"

제스피(Jespi)가 출시된 지 이제 막 1년이 됐다.

제스피는 지난해 7월 24일 공식 매장 오픈행사를 갖고 국내산 100% 맥아로 만들어진 맥주의 맛을 제주도민들에게 선사했다. 시중에 출시 중인 카스(cass)나 하이트(hite) 등의 국산 일반 맥주와 무엇이 다르다고 이를 특별히 바라볼까.

▲ 제스피(Jespi). 제스피엔 ‘제주의 정신(Jeju+spirit)’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제스피는 우선 전분이나 기타 첨가물 없이 100% 맥아로 만들어진 정통 맥주다. 제주산 백호보리와 삼다수로만 만들어진다. 국산 맥주의 종류는 기껏해야 3∼4종류다. 대형맥주 회사 2곳에서 국내 시장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하우스(크래프트) 맥주까지 합하면 종류는 꽤 된다. 그러나 국내 하우스 맥주 시장만을 다 합쳐도 점유율은 1%가 채 안 된다.

크래프트 맥주는 밀러나 버드와이저와 같은 대형 맥주사와는 다른 특색있고 차별화 된 지역맥주를 말한다. 주로 중소형 맥주사에서 생산·판매된다.

크래프트 맥주의 특징은 맥아(보리)나 홉 등 맥주 맛을 내는데 필요한 재료 외에 쌀이나 옥수수처럼 원가를 낮추는 재료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혹 맥주의 개성을 위해 극소량의 허브 등을 첨가하는 것은 허용되기도 한다.

최근 10여 년 동안 서양에선 대규모 맥주회사에 반기를 든 전통적 방식의 소규모 양조장들이 힘을 얻으면서 브루어리 퍼브(brewery pub, 양조장 술집. 가게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파는 술집을 말한다)가 늘고 있다. 제주에도 제스피를 포함해 몇 곳이 생겨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입 맥주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술집들도 늘고 있다.

지난 16일에 발표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맥주 수입 총량은 5만3618t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9.2%나 증가했다. 2000년만 하더라도 맥주 수입량은 3444t에 불과했다. 일본 맥주가 수입 물량 1위, 네덜란드가 2위, 독일 맥주 수입량이 3위를 차지했다.

"국산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말이 업계에 심심찮게 퍼지던 때가 있었다. 해외 매체에서 국산 맥주의 맛을 보고 내린 평가였다. 수입 맥주가 거의 없던 시절, 국산 맥주 맛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맥주 맛만큼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다.

국내 주세법에 의하면 국내서 맥주를 생산할 때의 의무적인 맥아 사용 비율은 10% 이상이면 된다. 반면 네덜란드 하이네켄의 경우 100%, 미국 버드와이저는 70% 이상이어야 한다. 대부분 해외 유명 맥주의 맥아 비율은 최소 66.7% 이상이다. 맥아함량 비율이란 맥주의 주 원료 중 보리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며, 100%가 아니라면 옥수수나 쌀 등의 다른 곡물로 채워져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산 맥주의 제조사들은 영업 비밀이라며 맥아 비율을 공개하지 않았었다가 지난해 공개했다. 제조사들은 하이트가 70%, 드라이피니시D와 스타우트가 80%, 맥스와 골든라거가 100%라고 밝혔다. 뒤늦게 공개한 이유는 수입맥주에 비해 국산맥주의 맥아함량이 매우 낮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막상 공개해 놓고 보니 국산 맥주의 맥아 비율이 낮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수입맥주 물량이 폭등하는 것일까. 거기엔 제조방법에 따른 맛의 차이와 원료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량 생산되는 맥주는 대부분 라거(lager) 계열의 제품이다. 그 이유는 에일(ale) 보다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일 맥주는 맥주를 발효시킬 때 통 위로 오르는 '상면 발효효모'를 이용해 만드는 맥주를 말한다. 라거 맥주는 에일과는 반대로 '하면 발효효모'로 만든다. 이 두 맛의 차이는 확연하다. 라거 맥주의 맛은 에일 맥주에 비해 향이나 깊은 맛이 떨어지지만 깔끔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에일은 제조 원료에 따라 특유의 향이 묻어나며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 제스피(Jespi). 왼쪽부터 필스너, 페일에일, 스타우트, 스트롱에일, 바이젠.

제스피는 출시 초기 4가지 종류로 출발했다.

라거(lager) 계열의 맥주인 필스너(알콜 4.5%) 1종류와 에일(ale) 계열의 3가지 맥주를 선보였다. 페일에일(4.5%), 스트롱에일(6.5%), 스타우트(5.0%)가 에일 맥주다.

필스너는 호프의 풍부한 향과 쌉쌀한 쓴 맛이 깨끗한 황금빛 맥주다. 페일에일은 감귤향 맛이 감도는 맥주로, 끝 맛이 깔끔하다. 스트롱에일은 4가지 종류 중 알콜 함량이 제일 높다. 스타우트는 초콜릿과 카라멜 맛 등이 어우러져 부드럽고 거품이 풍부한 흑맥주다. 이후 골든 에일 맥주가 추가 됐다가 최근 바이젠(weizen, 5.0%) 밀맥주로 교체됐다. 바이젠은 밀과 효모로 만들어진 바닐라향이 독특한 에일 타입의 부드러운 맥주다.

국산 맥주가 천편일률적으로 라거 맥주임을 감안하면 왜 맛이 다른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제스피의 맥아는 오로지 제주산 백호보리로만 쓰인다. 국내·외 소규모 맥주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의 경우 주로 수입 맥아를 사용한다. 국내산 맥아가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제스피를 생산하고 있는 제주도개발공사(사장 오재윤)는 최근 크래프트 맥주 시장 확대를 위해 미국의 맥주회사인 브루클린사(사장 로빈 오타웨이)와 손을 잡고 '제주 크래프트' 맥주사업을 위해 합작 법인회사를 설립키로 결정했다.

수입 맥주량의 폭등, 점차 늘어나는 국내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 이 모두가 그동안 국내 시장을 독점했다시피 한 대형 맥주회사들에 대한 반란이다. 좀 더 다양한, 조금 더 정통한 맥주의 맛을 알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

내년 용암해수단지(구좌읍 한동리)에 들어설 예정인 '제주맥주 주식회사'는 브루클린사 51%, 개발공사 36.5%, 도민주 공모 12.5%를 출자지분으로 하여 자본금 120억 원까지 출자하게 된다. 내년 3월 출시가 목표다.

이러한 움직임들에 맞춰 최근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등 국내 기업들이 에일 맥주 신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것도 이러한 크래프트 맥주시장을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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