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에서 불고 있는 좌파 열풍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실시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 사회민주당(PSDB) 제랄도 알키민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제치고 재선에 성공한 것.

이로써 올들어 치러진 중남미 7개국의 대통령선거에서의 좌파와 우파의 스코어는 4대 3이 됐다.

▲ 빈곤층 사로잡는 정책으로 재선 성공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동북부 빈민촌에서 태어난 노동자 출신으로 지난 1980년 노동자당을 설립,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룰라 대통령의 이후 정책 역시 그의 출신에 기반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당선 이후 이른바 '굶지 않는 브라질'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빈곤층과 저소득층 600만여 명이 중산층으로 흡수되고 실업률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등의 성공적 결과를 보였다.

이번 재선 성공의 배후에도 이같은 룰라 대통령의 빈민 우선 정책과 이에 따른 브라질 빈민층의 열광적인 지지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29일 유세장에서 "모든 브라질 국민이 매일 '필렛 미뇽(fillet mignon, 스테이크의 일종)'을 먹을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약속해 한동안 선거 부패 관련 추문으로 잃었던 민심을 되찾았다.

그는 이날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서도 자신을 지지해 준 모든 브라질 국민들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빈곤층이 정부의 우선 보호대상"이라고 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그는 재선 후에도 경제 안정화와 인플레이션 억제, '세금인상 없는 빈곤 탈출' 등의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 '남남 협력'을 주도해 온 룰라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국제 경제 지형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미국보다는 개발도상국들과의 관계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 룰라의 좌파 정책 '너무 온건하다'

그러나 그의 좌파 정책은 4년 전 초선 당시와 비교했을 때 대폭 완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우파 정권인 엔리케 카르도수 전임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시장을 적극 개방하는 등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도전해 왔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EU)은 지난 26일 유럽의회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위원회의 조제 이그나시오 살라프랑카 부위원장을 인용, 룰라 대통령이 압승하더라도 좌파에 편향되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살라프랑카 부위원장은 룰라 대통령이 선거 유세과정에서 내뱉은 좌파적 발언이 모두 선거용일 뿐이라며 초선 때와 마찬가지로 재선 이후에도 성장과 분배 병행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의 좌파 정책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같은 남미 내 좌파 정부보다도 훨씬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라질 정치 전문가 역시 룰라 대통령이 재선 후에도 이같은 성향을 버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차베스 대통령과 과격한 언사를 주고 받으며 전면전을 벌여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룰라 대통령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후문도 나오고 있다.

▲ 룰라 재선..남미 주도권 다툼 가속화될까

이같은 맥락에서 룰라 대통령의 당선은 남미 좌파 국가들간 주도권 다툼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강경 반미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이 온건 성향의 룰라 대통령의 남미 주도권 장악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

사실상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알력 다툼은 이미 가시화돼 왔다. 볼리비아의 에너지 국유화 선언으로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는 이면에 차베스 대통령의 견제가 숨어 있다는 지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차베스 대통령은 영토, 인구,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이미 여타 중남미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는 브라질의 영향력 확대를 바라지 않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룰라 대통령의 지역 내 주도권 장악은 곧 자신의 역할 축소를 의미한다.

이에 차베스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의 주도권 장악을 한층 견제할 것으로 전망되며 따라서 룰라 대통령의 재선 이후 남미 좌파의 풍향계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 역시 한동안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서울=뉴시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