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잡고 우리 죽이려다가 배고프니 내려왔지?”
제주시‧제주도하나센터 ‘차가운 시선’

▲ 이씨의 집 앞에 빗자루와 우산이 나란히 걸려있다. ⓒ뉴스제주

그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식당에서는 밥값을 일부러 2배씩 받고, 행인들은 자신이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침을 뱉는다고 했다. 옆집, 윗집 이웃들이 서로 짜서 일부러 벽을 두드려대고, 몰래카메라가 24시간 자신을 감시한다고도 했다. 그는 도청기를 찾기 위해 주방의 벽지를 뜯어냈고, 머리를 쥐어짜며 긴긴 새벽을 견뎠다.

20년 전 북한을 떠나 이모(45)씨는 제주도에 정착해 3급 정신장애인이 됐다.

# “교과서에서 제주도는 따뜻한 곳이라고 해서…”

이씨는 함경북도 출신이다. 두만강을 국경으로 중국과 마주하는 한반도 최북단에서 나고 자랐다. 군인이었던 그는 20년 전 고향을 등지고 국경을 넘었다. 이후 중국에서 안마 일을 하며 10년을 지냈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홀로 지내기란 쉽지 않았다. 돈이 거의 없었다. 그는 제 2의 삶을 꿈꾸며 2003년 한국행을 택했다. 그중에서 제주도로 내려온 까닭은 “대륙은 너무 추웠는데 교과서에서 제주도는 따뜻해 아열대식물이 자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2의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착금을 모두 펀드로 날렸다. ‘무조건 10% 오른다’는 은행원의 말을 너무 쉽게 믿었다. 단번에 이씨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그는 제주도 길바닥을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씨는 고물을 줍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잘 곳이 없는데 재워달라’는 말에 할아버지가 흔쾌히 응했다. 이후 그를 양아버지로 모셨다. 이씨는 “양아버지와 함께 고물을 줍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1년 후 이씨는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그나마 생계를 이어주던 기초수급이 끊길 때는 아는 탈북자들에게 돈을 꾸고 쌀을 빌렸다. 몇 달간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일만 시키고 돈을 안 줬다. 이씨는 주차장 주인을 노동청에 신고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당시 노동청에 근무하던 여직원이 딱한 사정을 알고 이씨를 도왔다. 덕분에 2005년 이씨는 제주시 모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는 “그때 여직원이 아니었으면 10년간 노숙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이씨는 안정적인 생활을 찾는 듯했지만 이내 환청과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 이씨는 창밖에서 누군가가 몰래카메라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제주

# “총잡고 우리 죽이려다가 배고프니 내려왔지?”

사람들은 그에게 “총잡고 우리 죽이려다가 배고프니 내려왔다”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억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토로해봤지만 모두 똑같이 비아냥댔다. 인근 주민들은 이씨가 종종 놀이터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이웃이나 아르바이트 동료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탈북자 몇 명과 노숙자 한 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남파공작원들은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이씨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계략을 짜서 나를 괴롭힌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그는 ‘정수리가 쾅쾅 찍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증상이 너무 심해 관리사무소와 보건소에 아무리 건의해도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느니 영원히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후 그는 3년간 탑동 일대에서 잠을 자고, PC방에서 밤을 새고, 여인숙을 떠돌았다.

결국 그는 지난 4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당시 담당 전문의는 “이씨는 피해의식이 많아 사람들을 잘 믿지 못했다”며 “병원치료가 더 필요했지만 보호의무자인 제주시장의 협조를 얻지 못해 3개월 후 퇴원했다”고 말했다.

# 제주시, 북한이탈주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무연고 정신질환자인 이씨의 법률상 보호의무자는 제주시장이 된다. 또 ‘정신보건법’ 22조는 ‘보호의무자는 정신질환자의 재산상의 이익 등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정신질환자를 유기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시는 병원이 이씨의 치료 연장 협조를 요청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퇴원 후 1달간 또다시 길거리에 방치됐다.

지난달 30일 제주도의회 복지안전위원회 소속 홍기철 의원은 제320회 임시회에서 이씨의 사례를 들어 “보호 의무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정신장애인을 유기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복귀시설 운영비, 장애인 이용시설 운영비 등 예산을 요청할 자격이 과연 있느냐”며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10년간 제주시가 취한 조치는 이씨를 조건부수급자로 지정한 것이 전부다. 이에 따라 이씨는 2009~12년 수급을 받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차례 의무적으로 자활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이씨의 정신질환 증세는 더 악화될 뿐이었다.

아라동종합사회복지관 조성태 관장은 “이씨의 경우 가정방문 등 주기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지만 아직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 제주도하나센터는 도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탈북주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뉴스제주

# 제주도하나센터 “정신장애 가진 사람 없다”…파악조차 안 돼

 제주도하나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안정적인 사회정착 지원을 위해 2010년 설치된 통일부 소속 기관으로, 현재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에서 수탁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하나센터는 정작 도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탈북주민이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하나센터 관계자는 21일 “제주도 전체 북한이탈주민은 180여명으로 많지 않은 편”이라며 “센터가 생기기 전에 정착한 주민들도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 “남한에 적응하느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있지만 도내 북한이탈주민 중 특별히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단언해 관리‧감독 소홀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하나센터는 탈북민들의 초기 정착을 돕는 기관이기 때문에 설립 이전에 넘어온 분들의 경우 사후관리가 안 되는 등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6월 기준 제주도내 북한이탈주민은 총 178명으로 남성 51명, 여성 127명이다. 이는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적은 수치다. 제주도하나센터 설립 전 유입 인구는 100여명을 훌쩍 넘는다.

#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 악화되는 경우多… 사후관리 필요

북한이탈주민의 대부분이 탈북 과정에서 쫓기거나 구금시설에 수용된 기억 등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남한에서의 부적응으로 우울증이나 정신건강상 질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실제로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약 26명의 북한이탈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이 북한이탈주민 2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 이상인 55.2%가 ‘가끔 또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이 외에 78.6%가 ‘우울하거나 슬픈 생각을 한다’고 답했으며, 63.4%가 ‘무기력하고 식욕상실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걱정ㆍ불안ㆍ불면증 증세가 있다’는 응답자가 81%에 달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여야는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열고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가결해 일반적인 상담서비스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 대한 전문적인 검사도 이뤄지도록 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충남도는 본격적인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 관리 사업에 나섰고, 부산시는 올해 중점 추진과제로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지원안을 선정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다.

그러나 제주도는 현재 미동도 없는 상태다.

제주도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현재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을 다룬 법률 개정안과 관련된 사업 계획은 없다”며 “올해 북한이탈주민 관련 예산은 9400만원으로 대부분 제주도하나센터 위탁금으로 지원하며 도는 따로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관계 부처와 담당 기관들의 ‘차가운 시선’이 만들어낸 복지 사각지대에서 이씨와 또다른 북한이탈주민들이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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