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실업·시‧도팀 전무, 유망주 그만두거나 타 지역 대표로 활약
단단한 ‘무관심’의 벽… 테니스장이 되어버린 ‘연정정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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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정구의 실패? 아니 ‘필연’

이변은 없었다. 지난 1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육대회 정구 단체전 8강전에서 제주선수단은 3개 종별에서 모두 탈락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제주도에는 고등부·실업·시‧도 소속 팀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 출전한 제주선수단은 모두 아라초등학교 정구선수 출신이지만, 지금은 어엿한 직장을 가진 일반인들이다. 이들은 전국체전이 제주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따로 시간을 내고 사비를 털어 정구 훈련을 해왔다.

반면 타 지역 선수단은 각 지자체나 실업팀에 속해 돈을 받고 운동하는 전문적인 선수들이다. 탄탄한 훈련을 받는 이들과 ‘급조’된 제주선수단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변수진 제주도정구연맹 부회장은 “갑자기 선수들을 모아 훈련을 하기 때문에 지역대표로 출전한 팀과 경쟁을 벌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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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정구

제주에 보급된 구기 종목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정구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10년 새 제주지역 정구 팀의 90%가 해체됐다.

현재 남아있는 팀은 아라초등학교와 지난해 신설된 탐라중학교 2팀뿐이다. 대한정구협회에 등록된 전국 246개 팀의 1%도 채 안 된다. 가장 많은 지역은 대구와 경북, 충북으로 각 23개의 정구팀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 1618명의 선수 중 제주지역 선수는 39명에 불과하다.

인프라 역시 열악하다. 도내에 남아있는 정구장은 이제 2곳, 제주종합경기장 연정정구장과 아라초등학교 정구경기장 뿐이다. 탐라중학교 팀은 경기장이 없어 연정정구장에서 훈련을 받는다.

지자체에 지원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비인기 종목에 굳이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냐는 경제 논리와 냉정한 현실뿐이었다.

변수진 부회장은 “이때까지 연맹 소속 선수들은 5~6년에 한 번씩 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었다”며 "올해는 제주도에서 개최됐기 때문에 출전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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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인재

“제주에는 정구 팀이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갔다. 혼자 다른 지역에서 고된 체력훈련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금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제주에 팀이 있었더라면 집에서 다닐 수 있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어릴 적 운동이 하고 싶었던 김상현(26) 선수는 아라초등학교 정구팀에 입단했다. 졸업 후 들어갈 팀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 재빠른 운동실력을 인정받아 부산지역 학교에 스카우트됐다. 제주를 떠난 김 선수는 이후 진주와 대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초‧중학교를 졸업한 정구 꿈나무들은 이후 입단할 팀이 없어 타 지역으로 가거나,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변수진 부회장은 "제주 출신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기량이 뛰어나 경북 등 많은 지역에서 많이 스카우트 해간다"며 "유망주가 제주에서 길러지지 못하고 다른 지역 대표로 뛰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지난 2일 전국체전 정구 남고부 단체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제주출신 김용준 선수(경북, 문경공고 3)도 제주출신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 이후 들어갈 팀이 없어 제주를 떠났다. 이날 김 선수가 따낸 메달은 경북지역으로 돌아갔다.

▲ 김용준 선수는 제주 출신이지만 입단할 팀이 없어 경북팀으로 소속으로 제95회 전국체전 정구 대회 단체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뉴스제주

한편 최근 제주종합경기장 내 연정정구장은 주말마다 테니스 클럽별 월례대회가 열리고 있다.

정구장이 본래의 목적과 달리 테니스 동호인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자리를 뺏긴 정구 선수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변 부회장은 “테니스 동호회가 단체로 이용할 때는 운동을 하던 정구선수에게까지 나가라고 한다”며 “인기종목에 밀려 선수가 정구장에서 운동을 못하게 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구 꿈나무들을 비롯해 제주에 남아있는 39명의 선수들마저 갈 곳을 잃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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