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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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4일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나는 한나라당 공천으로 제주도지사 후보에 입후보한 일이 있다.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무렵, 모 신문사 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그 내용중에 『현 후보는 “4.3사건 때 군인들이 고향집을 불태워 버렸다.”고 선거유세 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 100년사】라는 책에는 현 후보의 집이 한라산 폭도들에 의해서 불태워졌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과연 어느 말이 맞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기자의 질문을 받은 나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제주 100년사】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으나, 나는 그 책을 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책을 본 일이 없어서 뭐라 답변할 수 없다고 말하자, 그 기자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 책의 문제되는 해당부분을 복사한 용지를 내게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읽어 보아도 분명히 한라산 폭도들이 우리집을 습격하여 불태워 버렸다고 씌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저자에게 그렇게 말해준 바가 전혀 없었다. 다행히 저자가 생존해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저자와 연락이 닿아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이 내용을 도대체 어디에서 입수하여 기록하게 된 것입니까?” 나의 질문에 그는 대답하기를 “전에 제남신문 기자로 근무할 때, 편집국장이신 김종철 선생님과 현 형이 사제지간으로서 자주 술자리를 같이 할 때 저도 동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분이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가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었습니다.

그 후 이 책이 발간될 즈음, 문제의 그 부분을 기록하면서 군인들이 민가를 불태워버렸다고 차마 쓸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고 해서, 그냥 한라산 폭도들이 불태웠다고 쓴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는 현 형에게 이제와서 누가 되는 기록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군사정권하의 시대를 바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그냥 ‘불타버렸다.’ 고만 표현해도 될 것을, 꼭 누가 불태웠다고 구체적으로 써서 좀 더 실감나는 문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지나친 의욕이 그만 이런 오류를 범하고야 만 것이다.

더구나 소설이나 에세이같은 류의 집필이 아니라, 【제주 100년사】라는 중요한 역사를 기록하는 책을 발간하면서, 기록의 출처도 정확해야 하겠지만, 직접 본인에게 확인하지도 않은 기록을 함부로 활자화함으로써 결국 역사의 왜곡을 초래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역사를 저술하는 사가의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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