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아직도 이게 뭔지 모르세요?

▲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왼쪽)와 구성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 ⓒ뉴스제주

2014년 6.4 지방선거 이후 제주정치의 핵심적 화두는 ‘협치(協治, governance)'였다.

원희룡 지사가 취임하기 이전, 지방선거판을 돌면서부터 슬로건으로 내건 ‘협치’는 이젠 행정이나 정치에 관여돼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됐다.

사실 ‘협치’는 이전부터 행정가들이나 정치인들이 행해왔다. 정책 집행에 있어 행정 편의주의가 아니라 주민, 도민들과 소통하면서 일을 추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협치’였다. 다만, 원 지사가 이러한 형태의 작업을 보다 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협치’에 대해 “일방통행식 관치행정을 탈피하는 개념”이라고 정의 내렸다. 원 지사는 “협치가 기구나 제도로 특정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 전문가, 시민단체, 분야별 종사자 모두 협치의 주체다. 의회도 가장 중요한 협치의 주체”라고 밝혔다.

원 지사가 이렇게 정의를 내렸지만, 문제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은, 아직까지도 국내 학계에서조차 정확한 개념정리가 안 된 이 정체불명의 단어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공격대상의 단골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행정부와 도의회 간에 조금이라도 갈등으로 전개되면 의원들은 “이게 협치냐”라고 으르렁댔다.

더구나 가장 문제시 됐던 건 원 지사가 등용하는 핵심 인사들이 ‘협치’라는 그림으로 포장된 측근인사가 아니냐는 문제로 비화됐다. 이른바 '송일교‘라는 ‘비선라인’을 타고 도내 각 기관의 주요보직에 ‘원 지사의 인물들’이 자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스런 눈초리다.

이와 함께 인사청문회 자리에 들어선 제주시장이나 도내 출자 및 출연기관장들은 도의원들로부터 매번 “원 지사의 추천을 받고 공모한 것이냐”는 질문을 수차례 들어야 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원 지사는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 종교계, 시민단체, 언론계 등 각 분야 전문가 그룹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결정한 것인데 그것을 마치 특정 인물이 인사를 주도했다고 생각하는 건 억측”이라며 “특정 그룹에 의해 판단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저에 대한 저평가”라고 말했다.

협치 논란은 인사 정책뿐만 아니라 도의회와의 전면전을 양산해 낸 단초가 되기도 했다.

“도의회도 협치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 원 지사의 말을 빌려 제주도의회는 원 지사에게 ‘예산협치’를 제안했다. 그러자 원 지사는 “예산만큼은 협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과정에서 도의원들이 재량사업비 명목으로 의원 당 20억 원을 제주도정에 요구했다는 말이 터져 나와 도정과 의정은 앙숙이 돼 버렸다.

그러다가 원 지사는 문화예술분과준비위원회(처음엔 협치위원회였다가 논란이 일자 준비위원회로 명칭을 바꿨다)를 조직하고 협치위원회 조례가 통과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의 원성을 받아가며 기어코 예산을 편성해내고 만다. 그래서인지 원 지사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꾸렸던 협치정책실을 이달 17일에 정책보좌관실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에 의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두고보자”던 도의회 의원들은 ‘예산전쟁’을 예고했고, 실제 도정이 꾸린 내년도 예산안을 대폭 칼질했다. 이러한 양 기관의 대립 촉발은 극한 갈등으로 치닫게 했고 결국 2015년도 예산을 부결시키는 사태까지 이르게 했다.

협치에 대한 명분을 내세우며 팽팽한 기 싸움에 나선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의장. 내년도 예산안이 이대로 가결되지 못하고 준예산 체제로 가게 될 경우 ‘협치’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이 때문에 두 기관 모두 연내 처리를 목표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겉으로는 여전히 “내가 하는 게 로맨스”라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원 지사는 이런 과정을 두고서도 ‘협치’라고 말했다. 협치를 어디든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되는 만병통치약처럼 쓰고 있다.

게다가 도정이나 의정 모두 이번 예산안 부결 사태를 두고 서로 “너한테 책임있거든” 식으로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고 있다. “이래서야 협치가 되겠느냐”는 비아냥은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할 것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고 있는 도민들이 해야 할 쓴소리다. [뉴스제주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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