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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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한 자리에 안자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지만,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관계인 초등학교 선배님께서 만나고 실어한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선배가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아갔다. 선배는 나를 보자, 내 손을 붙잡으며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안부를 주고 받은 후, 나는 조심스레 나를 찾으신 이우를 여쭤보았다.

“나, 성당으로 데려다 주게. 평소 내가 자네와 가깝게 지내지 못했지만, 늘 자네의 신앙생활에 감탄하던 나였네.” 하고 나를 부른 이유를 말했다.

선배의 상태로 보아 회복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신부님께 말씀드려 대세(정식으로 세례주는 대신 약식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느낀 나는 선배 주소지의 관할성당으로 찾아갔다.

성당은 신자가 사는 구역을 중요시하므로 내가 다니는 성당이 아니라, 그 선배가 사는 동네의 성당이라야 한다.

보통의 경우는 아무리 생명이 위독하더라도 신자가 아닌 사람을 위해 신부님 수녀님이 직접 나설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간곡히 사정 얘기를 드렸더니 움직여 주셨다.

신부님과 수녀님은 나의 부탁대로 병원으로 가 주셨다. 선배가 세례를 받는 동안 나는 대부역할을 수행했다. 선배는 소원대로 세례를 받았고,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병원을 떠나신 지 30분도 되지 않아,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 분의 임종을 지킨 셈이었다. 정말 이렇게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30분도 안되어 세상을 떠나는 복된 돌아가심이 어디 있단 말인고....

선배의 집안에서는 성당예식을 모르는 입장이고 이왕 이렇게 인연을 맺었으니 옆에서 장례절차를 잘 지도해 다라라는 유족들의 청이 있어 호상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일포날은 서울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망인의 둘째 동생과 제주에서 사업하는 셋째동생 등이 모였다.

낮동안에 북적이던 조문객들도 잦아들어 조용해 졌다고 느낀 시각에 느닷없이 큰 소리가 들렸다.

“너! 현가(玄家)놈이 왜 우리 집안에 와서 감 놔라, 밤 놔라 참견하는 거야! 가! 이 새끼야!” 하고 셋째동생이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는 나보다 한 해 후배였고,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장으로서 우리은행과 거래하며 내 도움을 오히려 많이 받았던 사람이 사장체면도 없이 나에게 막말을 한 것이다.

느닷없는 그의 돌출행동에 나도 어리둥절했지만, 나와 마주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의사인 망인의 둘째 동생, 즉 그의 형도 깜짝 놀랐다.

곧이어 동생의 무래함에 화가 난 둘째가 “아! 이 놈아! 조문 오신 소님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마주 소리쳤다.

오히려 셋째는 더욱 더 질세라 “이 새끼야! 너도 의사냐? 너도 히포크라테스 선서한 의사 맞아? 웃기고 있네.” 하며 바로 손위인 형에게도 대들며 막말을 해댔다.

둘째가 참지 못하여 벌떡 일어나며 “너는 바람피워 마누라한테서 쫓겨나, 자기 집에도 못 들어가는 주제에 큰 소리를 쳐?” 하고 동생의 목덜미를 잡았다.

이러다가 형제끼리 큰 싸움이 벌어질 판이라 온 집안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뜯어 말렸고, 셋째를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셋째는 술을 많이 마신 탓도 있었지만 평소 전통적인 유교집안이었는데 천주교 신자인 내가 나타나서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한편 둘째 형 내외조차 이미 서울에서 천주교에 다닌다는 것을 고 형에게도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장례미사에 물론 그가 참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장지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례가 모두 끝나고 돌아오면서 둘째를 비롯한 상가의 어른들은 나에게 죄송하다고 섯째의 무례를 겁 대신 사죄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셋째를 만나볼 기회가 업었다. 그도 얼마 없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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