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100명 투입해도 안 되자 경찰이 해산 시킨 뒤 철거
부상자 속출, 24명 연행, 욕설·몸싸움 난무... 2일부터 공사재개

▲ 천막이 철거되고 난 후의 군 관사 행정대집행 현장. ⓒ뉴스제주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하 제주해군기지) 군 관사 건립을 둘러싼 강정마을회와 해군 측 간의 충돌은 31일 오후 9시를 기해 마무리됐다.

31일 오전 4시께부터 강정마을회 주민 및 활동가들은 군 관사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공사장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 옆으로 쇠파이프를 이용해 7m 높이의 망루를 설치했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망루 맨 위에 올라가 해군의 행정대집행을 끝까지 필사항전으로 나섰다. 고권일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도 천막 위에 올라서 공권력에 맞섰다.

해군은 이날 오전 7시 20분께 100여 명의 용역들을 이끌고 나와 강제 진압에 나섰다. 먼저 김희석 소령이 행정대집행을 집행하기 위한 계고장을 낭독한 뒤 천막과 망루를 둘러싸던 주민들을 밀어부치기 시작했다.

▲ 망루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주민들과 해군 간의 대치는 계속 이어졌다. ⓒ뉴스제주

주민과 활동가들도 100여 명 나서며 대치에 나서자 해군도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소강 상태로 접어들던 낮 1시 10분께,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경찰의 호위 속에 용역들은 몸으로 주민들을 밀어부친 뒤, 천막 주변에 쌓아 올려져 있던 나무더미들과 철조망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활동가 2명이 연행돼 갔으며, 수십 명이 나무더미를 감싸고 있던 철조망에 찔리면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해군에 의해 고용된 용역들은 몸집이 좋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주민들과의 잦은 몸싸움에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쏟아 부으며 극한 대치로 이어졌다.

이어 오후 2시 30분부터 천막을 철거하기 위해 수 백 명의 경찰들이 나섰다. 경찰은 군 관사 정문 안으로 스크럼을 짜며 인간 바리케이트를 형성해 주민들이 천막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 경찰들이 망루 위에서 시위 중이던 주민들을 연행하기 위해 강제 진압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추락했으나 매트리스 위로 떨어져 부상을 입진 않았다. ⓒ뉴스제주

이를 이용해 해군과 용역들은 칼과 가위로 천막을 뜯어내며 철거하기 시작했다. 천막 안과 주위를 둘러써 앉아있던 주민들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끌려나갔다. 경찰은 5∼6명이 한 사람에게 달라붙어 팔, 다리를 잡고 들어 올린 뒤 경찰 바리케이트 밖으로 내쳤다.

경찰이 천막 안에 있던 시위자들을 모두 몰아 내자, 군 관사 공사를 저지하던 강정마을회의 천막은 그대로 무너졌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강정마을회에게 남은 건 망루와 그 밑에 있던 차량(미니밴) 뿐. 주민들은 물 샐 틈 없는 경찰의 비호 아래 망루 밖으로 밀려났고 망루 위에 올라 서 있던 9명의 시위자들만 남겨졌다.

▲ 포크레인을 동원해 주민들을 밀어내고 있는 해군, 이날 행정대집행 현장엔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도 참석했으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뉴스제주

망루 진압은 오후 4시 55분께부터 시작됐으나 7m 높이 위에 올라서 있던 터라 해군이나 용역, 경찰 모두 이들을 끌어내릴 수 없었다. 이에 주민들은 추운 밤을 새서라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해군은 이미 설치 돼 있던 펜스 밖에 또 하나의 펜스를 더 설치해 나갔다. 그런 뒤 정문 옆에 임시초소로 사용한 컨테이너 건물을 옮겨 놓은 뒤, 망루 밑 미니밴 주위를 펜스로 포위했다. 주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경찰들이 미니밴 위에 올라서 시위자들을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주민 한 명이 추락했다. 다행히 망루 주위로 깔아 놓았던 매트리스 위에 떨어져 부상을 입진 않았다. 이를 본 주민들이 격렬히 경찰과 부딪히자 또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밤 늦도록 이어진 행정대집행 대채 현장. ⓒ뉴스제주

해가 수평선 뒤로 넘어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해군과 용역은 철수했다. 하지만 400여 명에 이르는 경찰들은 서로 교대해가며 주민들이 망루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섰고, 경찰은 망루 위에서 시위를 벌이는 주민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해 가기 위해 경찰버스를 망루 옆에 주차시키고 매트리스를 주변에 깔았다.

무기한 대치가 이어지던 오후 7시 45분께,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이곳을 찾았다. 망루 위에서 밤 새워가며 시위를 이어갈 주민들의 건강이 걱정돼서였다. 이날 기온은 영상 2도. 바람도 매섭게 불면서 체감기온은 영하권에 가까웠다.

▲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이날 행정대집행 현장을 방문해 망루 위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던 주민들과 대화에 나섰다. 강 주교의 중재로 이날 행정대집행은 오후 9시께 마무리됐다. ⓒ뉴스제주

강 주교는 주민들과 대화에 나서기 위해 버스 지붕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주민들은 쉽사리 저항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강 주교는 대치상태를 풀고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강월진 서귀포경찰서장과 만나 대화에 나섰다.

강 주교는 강 서장에게 "주민들이 내려와 서로 대치상태를 풀고 모두 해산한 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조사를 마치면 풀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주민들은 망루에서 모두 내려왔고 경찰들은 모두 철수했다. 이때가 오후 9시경. 이날 오전 7시부터 진행된 행정대집행은 14시간 만에 끝이 났다. 주민들도 물러났으며, 망루 위에서 저항하던 시위자들은 일단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이동했다.

▲ 경찰들이 버스 위로 올라서 망루 위 주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제주

31일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주민 및 활동가 등 모두 24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 가운데 망루 위에서 시위를 벌였던 조경철 강정마을회장 등 12명은 풀려났다. 부상자 인원 수는 파악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모두 물러나자 해군은 1일 오전 3시께 망루를 철거하고 차량도 이동시켜 공사장 정문 앞을 치웠다. 이에 군 관사 공사는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해군은 당초 해군기지 군 관사 건립을 위해 이곳 부지 일대에 616세대를 입주시킬 목적으로 계획했으나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지며 72세대로 축소했다.

해군기지 반대 측은 군 관사 자체가 주민동의 없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반대활동에 나섰다. 이에 원희룡 도지사가 중재에 나서는 듯 했지만 해군 측과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다.

▲ 군 관사 행정대집행 현장. ⓒ뉴스제주

제주도정은 군 관사 대체부지를 제시했지만, 해군 측이 올해 안으로 완공되야 할 것과 해군기지에서 차량으로 5분 이내 거리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대체부지는 5분 거리 내에 있었지만, 대체부지에 대한 토지매입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올해 안으로 공사를 마무리하기란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실상 도의 제안을 거부한 셈이다.

해군기지추진사업단 관계자는 "72세대엔 작전수행 필수병력이 입주해야 하기 때문에 5분 이내에 반드시 지어져야 하고, 올해 중으로 군 관사 가족들이 입주해야 할 상황이라 이번 행정대집행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 말에 따르면, 군 관사 공사 재개는 농성장 주변을 정리한 뒤 2일부터 당장 재개될 예정이며, 나머지 세대 입주를 위한 미분양아파트 확보 계획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31일 행정대집행이 이뤄지기 전날 한·일지사회의에 참석키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원희룡 지사는 이날 급히 제주도로 복귀해 비상대책회의를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유감을 표명하며 "주민 안전이 최우선이 돼야 할 것"만을 강조할 뿐 대책마련을 내놓진 못했다.

▲ 김희석 소령이 31일 오전 7시를 조금 넘은 시각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읽으면서 시위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제주
▲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용역들에 의해 강제로 옮겨지고 있는 양윤모 감독. 양 감독이 격렬히 저항해 후송 도중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뉴스제주
▲ 군 관사 행정대집행 현장. ⓒ뉴스제주
▲ 군 관사 행정대집행 현장. 극렬한 대치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뉴스제주
▲ 군 관사 행정대집행 현장. ⓒ뉴스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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