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충열 제주영화제 집행위원장

“10회가 되면 어마어마한 영화제가 될 줄 알았는데...”

현충열 제10회 제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안타까운 비명의 한 마디다. 무엇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국제적인 규모로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봐왔기에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이기도 할 것이다. 허나 이런 아쉬움을 토해내도 현충열 위원장은 “그냥 좋댄다”. 이유는 제주영화제를 아직까진 ‘민간이 주도하는 영화제’로 이끌고 와서다.

지난해 제주영화제는 기념비적인 ‘제10회’를 맞았지만 예년에 진행됐던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다만 지난 4회 영화제 때부터 줄곧 참석해 온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의 퀄리티(질)가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 정도가 제10회 영화제라 부를 만하다. 물론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분도 있겠지만, 감히 단언컨대 4회 때 보다는 낫다. 그러니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 현충열 제주영화제 집행위원장. ⓒ뉴스제주

현 위원장은 “물론 지금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10주년이 되는 해엔 이 영화제가 도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규모면에서도 다른 영화제 못지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 위원장은 “이 영화제가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 못했다”며 “중간에 제주도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10회까지 민간 주도로 이끌어왔다는 점에 큰 자부심이 인다”고 밝혔다.

10회를 맞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냐는 질문에 현 위원장은 “내부 구성원들이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 큰 성과”라며 “전용관을 확보하고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도민들이 이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영화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한 해였기에 앞으로 더 노력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제주영화제는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제를 표방한다. 독립영화제를 딱히 “무엇이다”라고 확실히 규정짓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현 위원장에게 물어봤다. “독립영화제가 뭐에요?”

현 위원장은 “자본 사상으로부터 독립해서 인간 고유의 감성을 뿜어내는 영화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현 위원장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한국에선 어마어마한 영화지만 외국에선 독립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며 “감독이 갖고 있는 사상들이 내보일 수 있는 영화들이 독립영화들이라 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자본이나 외압에 그닥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식대로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 위원장은 앞으로 제주영화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목적도 추구하는 것도 그냥 독립영화제였으면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 지난해 12월에 개최됐던 제10회 제주영화제 행사 포스터. ⓒ뉴스제주

# 민간이 주도하는 영화제, 뭐가 다른 걸까?

제10회 제주영화제는 제주도정이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받는 예산이 단 돈 한 푼도 없다. 현충열 제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준다고 한 적도 없고 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냥 예전부터 해왔던 그대로 쭉 가는 거다”고 말했다. 지난 몇 번 정도는 지원받은 바 있다. 왜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관이 끼어들면 <식코>나 <다이빙 벨>과 같은 영화를 틀 수 없기 때문이다.

현충열 위원장은 “흔히 영화제하면 부산국제영화제와 많이들 비교하시는데, 자연환경이 뛰어난 제주에서도 국제영화제를 하려면 얼마든지 충분히 가능하다”며 ”부천이나 광주, 부산 지역의 영화제가 잘 되는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민간이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사건으로 논란이 됐던 <다이빙 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서울독립영화제는 이 영화를 틀지 못한다. 이유는 단 하나, 영화제에 정ㅍ관이 끼어 있어서다. 나라의 녹(이른바 혈세)을 먹는 영화제다 보니 요구하는 것도 많아진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반드시 ‘관’이 끼어들었다고 해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대게 그런 경향을 띤다는 얘기다.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엔, 부산시가 행·재정적으로 영화제를 지원한다.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영화제의 뒤를 밀어준다.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파트너십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바로 이러한 정책적 구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제주도는 아직까진 부산시와 같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다.
제주도는 재정자립도가 취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 2010년부터 ‘민간보조금 기준보조율 제도’를 도입해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에 50%의 자부담을 사업자가 지게 했다. 이러다보니 재정규모가 열악한 단체는 사업을 아예 포기하거나 지원 요구 자체를 하지 않는 현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 타 지방과 비교를 해보자. 전국 17개 시·도 중 부산이나 대구 등 8개 시·도는 정액(100%) 지원, 울산·대전 등 6개 시·도는 90%를 지원해 왔다. 자부담은 권고사항일 뿐이었다. 헌데 제주도는 50%다. 이러니 제주도의 문화예술산업 발전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느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선 6기 원희룡 도정이 들어와서는 자부담 비율을 10%대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문이 제기됐다. 이에 원 지사가 취임하기 전 꾸려졌던 새도정준비위원회는 문화예술행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비율을 100%로 상향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도청 관계자는 예전 관행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제주도는 제주탐라문화제나 4.3예술제, 국제관악제 등 큰 규모의 사업에만 90∼100%의 보조금을 집행하고, 도에 예산지원을 요청한 다른 문화단체엔 50%의 자부담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도의회 의원들도 “일반 도민은 참여하지 못한 채 전문가들이 모여 대형 사업에만 편성하고 있다”며 원 지사의 문화예술분과 준비위원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한 것을 두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특히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큰 사업비가 투입되는 예산들을 쪼개 여러 사업들에게 나눠주거나 신규 항목을 만들어 증액시켰다.

이를 두고 원 지사는 “지역구 챙기기 혹은 선심성 예산”이라며 “동의하지 않겠다”고 맞서면서 2015년도 제주도 예산안이 1636억 원이 삭감되며 도민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

▲ 제10회 제주영화제 때 상영됐던 작품들. ⓒ뉴스제주

# 제주도가 자행했던 ‘사전검열’ 과거, 원희룡 지사라고 달라질까?

제주영화제는 2009년까지 7회를 치러왔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 후 2013년에 8회, 2014년 9회를 맞이하고서 지난해 10회 문을 열었다.

그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논란은 지난 2010년 김태환 전 지사에서 우근민 전 지사로 이어지는 시절이다.

제주영화제를 주최하는 (사)제주씨네아일랜드는 2010년 4월, 예술영화전용관 사업과 관련해 제주도정과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이유는 실로 매우 명백하고도 어처구니없이 간단했다. 당시 제주도는 “도민정서에 반하는 영화를 틀어선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고, 씨네아일랜드는 “무슨 소리냐, 영화를 선정할 때 사전에 검열을 받으라는 말이냐”고 항변했다.

그 예로 제주도는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다룬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 Sicko>나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경계도시2>를 상영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상업영화가 아니기에 일반 극장에선 좀체 보기 힘든 영화들이다.

당시 이에 대한 논란이 언론을 타고 불거지자, 참여환경연대는 “지금이 5공 시절이냐”며 제주도의 사전검열 방식에 강한 비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문화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공무원들의 수준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형국이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는 시기였다.

예술영화전용관은 구 코리아극장에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결국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때마침 제주시는 구도심 공동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 지역의 상권을 살리고자 코리아극장을 활용하겠다며 ‘구도심 활성화 사업’을 제주도에 제출했고, 제주도는 이를 받아 안아 코리아극장을 제주영상위원회가 운영하도록 맡겼다.

영상위원회는 코리아극장을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로 명명한 뒤, 철 지난 상업영화들을 틀기 시작했다. 2010년 겨울부터 가동된 이곳엔 기대와는 달리 노숙자들로 들끓었다. 이른 겨울아침에 제주시 탑동 부근에서 무료 급식으로 배를 채운 이들이 편히 쉴 곳으로 따뜻한 극장 안이 최고였다.

당시 상영된 영화들은 가족영화가 주를 이뤘고, 입장료 없이 무료로 운영됐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제한없이 극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노숙자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일반 시민들도 이곳으로 향하지 않게 됐고, 자연스레 영화 상영 시간 내 관객들의 수는 겨우 10명 남짓했다.

결국,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주시는 탑동에서 무료배식을 중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홍보도 열악했으며, 도지사가 당연직 위원장으로 있는 제주영상위원회에선 무소불위, 그 누구의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아 방만경영으로 이어졌다.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도민정서에 부합되는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제주도정의 이러한 생각은 결국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를 이렇게 껍데기만 남은 극장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게다가 제주영상위원회는 ‘영상미디어센터’를 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난타 극장으로 전용시킨지 벌써 7년이 다 돼가고 있다. 하라는 사업은 안 하고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아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제주영상위원회 소속 A 관계자는 난타 공연을 이끌고 있는 기업 PMC 프로덕션을 감싸 안으며 두둔하기까지 했다. 이 관계자는 <뉴스제주>와의 통화에서 ‘영상’을 다루는 공공기관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A 관계자는 영상미디어센터를 도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에 “물론 맞는 말이지만, 난타공연으로 제주의 야간관광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측면도 있다”며 “당장 이들을 나가라고 해버리면 기업의 입장에서도 곤란해 질 것”이라고 답했다.

# 제주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처럼 규모 커질까? 아직은 토대가 너무 허약해...

대개 예산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갑의 위치에 있는 ‘관’은 예산을 받아가는 단체를 ‘을’로 여기고 명령하기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정부 정책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창 의료민영화 시범적 도입으로 논란이 들끓던 때에 제주에선 <식코>가 상영될 수 없었다.

그래서 현충열 제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50억 원을 줄테니 국제영화제를 하라가 아니라 그 돈을 10년 동안 탄탄하게 다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주연 제주영화제 사무국장도 “도민들이 독립영화를 찾아보는 향유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영화제로 갑자기 키우는 것은 무리”라며 “우선 바탕이 튼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씨네마테크 영화도서관과 예술영화전용관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공무원을 포함해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오 사무국장은 “특정 영화를 틀지 말라는 지시가 있는 한 도정으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며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정책적인 파트너십으로 이뤄져야 제주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 위원장 역시 “민간 위주로 운영될 것이 아니라면 (예산을)준다고 해도 받기 힘들다”며 “시민들의 볼 권리 향상을 위해 예술영화전용관을 마련해 다양한 영화들을 찾는 도민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동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토대가 너무 허약하다”며 국제영화제로의 발전가능성에 대해선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며 “왜 제주는 안 돼”라고 자조하거나 배 아파해야 할 건 문화예술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공무원들이어야 한다. [뉴스제주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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