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현의 美樂壘] 사랑에 관한, 짧지만 영원히 읊어지는 이야기들 2.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

난센스인지 아닌지 모를 간단한? 퀴즈 하나를 던져 주겠다.

지구엔 약 6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 이 중 남자 혹은 여자가 약 30억 명일테다. 만일 여러분이 신의 능력(?)을 갖고 임의대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때 선택되어진 이 두 명의 남녀가 만나게 될 확률은 어떻게 될까?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대략 3부류의 형태로 대답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0.00001%의 극히 드물 확률일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아마 대다수일 거다. 이들 부류는 대부분 현실주의자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지금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는 당연하다.

반면 오히려 100%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이상주의자에 가깝거나 과도한 낙천주의자다. 눈에 뻔히 보이는 대답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를 좋아하는 유형이라고 여길 수 있다.

여기에 51% 혹은 49%라고 말하는 이들이 정말 아주 간혹 있다. 일단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거나 중도주의자 혹은 치고 빠지기를 잘 계산하는 유형이다. 질문에 숨겨진 의도를 교묘히 파악해서 어떻게든 답변을 마련하는 명석함 혹은 잔꾀를 지녔다.

하지만 이 질문엔 트릭이 하나 숨겨져 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내가 선택한 두 명을 만나게 하고 싶다면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인물 한 명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이러면 100%다.

그런데 남극에 1명, 아프리카에 1명을 선택했다고 해서 이 둘이 만나게 될 확률이 0%라고 단언할 수 없다. 영화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처럼, 사랑은 기적적으로 어디선가 이루어져 왔다. 영화라서 기적적이라고 치부하지 말라. 실제 지구 어딘가에선 영화보다 훨씬 기적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있을테니. 당신의 경우도 충분히 그러할 수 있다.

그런 것이다. 인연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 여기에 ‘사랑’의 애틋함과 특별함이 녹아있다. 인류 60억 명 중 단 두 명, 내가 너를 만나 좋아하고 당신이 나를 만나 서로 좋아한다면 이것 자체가 100% 기적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기적(miracle)’이다.

그러한 사랑의 특별함, 기적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 있다. 길거리에서나 TV, 극장, 관광지에서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있는 존재는 모두 특별하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왜 이별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이들은 서로에게서 느끼는 ‘특별함’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해서다. 처음에 느꼈던 애틋한 감정들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서로가 변하고 있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황대권 수필가가 쓴 <야생초 편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다”

특별한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특별할 수 있다. 로또 1등 당첨 같은 것만이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특별하다. 앞서 구구절절이 예를 들어 말한 ‘60억 명 중 2명’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찾는 평범한 사랑을 애써 외면하고 특별한 느낌만을 찾아 헤매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사랑에는 애틋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특별함은 찾으려고만 한다면 일상에서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특별한 사랑의 기쁨은 영원하지 않다. 사랑의 특별함을 유지하려면 서로 끊임없이 변화되는 것들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인내가 필요하다.

배성아 작가가 쓴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에 깃든 이 문구를 읽어보자.

사랑도 아주 특별한 것을 원하고 원했던 적이 있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가져보지 않은 특별한 감정을 탐미하고 또 탐미했다. 결국 그런 어려운 목표 앞에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랑도 뻔한 게 좋다. 남들처럼 만나서 좋아하고, 때 되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웃어주고 화해하고! 사랑은 열정보다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걸, 참 뒤늦게 알았다.

국내 TV 드라마에 숱하게 등장하는 “내겐 뭔가 보다 더 특별한 사랑을 해야만 해”라는 잠재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는 한,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은 뜬구름과도 같이 항상 멀리 있다.

‘기적’을 ‘사랑’이라 표현한 노래가 있다. Mary Elizabeth McGlynn이 부른 <I want love>.

내겐 사랑으로 흘러넘치는 컵을 원해요, 비록 그게 내 마음을 채우기엔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난 사랑으로 가득 찬 통을 원해요, 비록 그게 내 마음을 채우기엔 충분치 않다는 걸 안다 해도. 난 사랑으로 가득 찬 강을 원해요. 하지만 그래도 그 텅 빈 구멍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는 걸 알아요.

사랑으로 흘러넘치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것은 내 욕심이고 사랑이 이뤄진다 한들 ‘자기만족’일 뿐인 사랑에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할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후렴구에 “I need a miracle and not someone's charity(내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지 누군가의 동정이 아니에요)”라면서 “you'd be amazed at how little I need from him(내가 그에게서 필요한 게 얼마나 조금인지 당신은 놀랄걸요)”라고 강조한다.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당신 곁에서 같이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Dream Theater가 노래한 <I walk beside you> 곡 또한 평범하게 사랑하고 싶은 특별함을 선사한다. 이 곡은 드림씨어터가 여태껏 해왔던 스타일이 아닌, 아주 대중적인(!) 곡이다. 가사도 쉬울뿐더러 팝 적인 멜로디가 귀에 착착 감긴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얼마나 멀든지 상관없어. 너와 나란히 걸을께”라고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멜로디와 가사는 듣는 이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아무리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같이 있겠노라고 다짐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Simon & Garfunkel의 그 유명한 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들려준다면 최고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거칠게 흐르는 강물 위에 놓인 다리처럼 내가 당신의 발 밑에 있어 줄께요)라는 후렴구엔 “그러니 나를 발판으로 삼아 이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시면 돼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의 이런 희생에 따른 조건은 그저 당신이 내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고 살아가려면 집, 자동차, 든든한 통장과 직장 등 현대문명의 물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들이 필요하다. 돈 많은 남자,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가 결혼대상 1순위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조건은 필요충분 아이템이 돼 버렸다. 이렇게 현실에선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쉽게 내 자신과 타협해 가며 사랑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조건들에 맞춰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라 한들 누구나 모두 마음 한 켠에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물질적이든 육체적이든 정신적인 사랑만 추구하는 관계이던 상관없이 모든 이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사랑이 영원하길 바란다. 그 영원함은 오로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마음만이 가능하게 만든다. 돈이나 섹스 같은 것은 부수적인 조건으로서만 작용할 뿐이다.

그 마음을 변치 않기 위해 서로는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우리 삶을 관통하는 아주 단순한 진리다. 물론 말은 쉽다.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단순히 아는 것과 가슴에 새겨지는 의식과는 다른 차원의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The Stratovarius의 <Forever> 곡은 그래서 바이블이 됐다.
이 곡은 최수종과 배용준이 출연해 1996년에 방영된, 역대 최고의 시청율(60%)을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의 주제가다. 노래가 워낙 유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어떤 제목으로 불렀는지 잘 몰랐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크게 발달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그룹 이름마저 생소한 스트라토베리우스를 어떻게 알겠는가.

가사는 은유적이면서도 단순하고 쉽다. 어려운 표현 하나 없이 진심을 담아냈다. 노래에서 ‘나’는 당신 곁을 항상 지키고 있는 바람이자 별이자 먼지이기 때문에 영원히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사실 이 곡은 사랑에 관한 노래지만, 떠나간 그대를 영원불멸하게 그리워하는 고백이다.

The Cardigans의 <Lovefool>도 떠오른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고 매우 반복적으로 간청하는 이 곡은 왠지 모르게 더 사랑스럽게 들린다. 후렴구 말미에선 “I can’t care about anything but you(난 당신 말고는 어떤 것도 관심 없어요)”라는 말로 당신에게 완전히 중독됐음을 고백한다.

지난해 초 tvN에서 방영됐던 <로맨스가 필요해>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구걸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뜨거움이 아니라 애틋함이다. 나는 속마음을 감추는데 익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꾸 깊어지는 진심은 농담의 뒤편에 감추었다.

누구나 과거엔 Jose Feliciano가 불러주는 것처럼 <Once there was a love>의 이야기들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것이 첫사랑이든 짝사랑이었든.

미셸 공드리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자. 그리고는 엔딩곡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을 듣는다. 다시 시작된 사랑을 찾아 멀리도 돌아 온 이들에게, 조엘이 클레멘타인에게 했던 말처럼 “It’s OK”라고 말해보자. 누구나 언젠가는 ‘사랑’이 무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니까. [뉴스제주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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