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스물일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최연주 기자
  • 승인 2015.04.12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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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 7년차 '육짓것'의 사는 이야기

스물일곱. 제주 이주 7년차. 서울 도심 속 고층 건물을 보면 어지럽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아, 이제 나도 제주 사람 다됐져"

제주에서 하는 일? 돈 되는 일은 다한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애월의 'G편의점'에서 오후 10시부터 오전 9시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햇수로 따지면 3년째다.

이 나이에 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 내가 제주 이주민이 돼야 했던 이유도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요양' 차원의 이주였다.

어머니의 간병은 내 몫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세가 깊어지며 혼자 간병하는 것이 버거워졌다. 결국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셨다.

내 차례였다. 내가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이 육짓것, 곱게랑 봐줍써"

제주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내가 살던 곳과는 매우 달랐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잦은 이사, 안다녀 본 지역이 없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다.

"빠르게"에 익숙해져있던 나는 이 곳만의 '여유'가 적응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짙은 배타성. 언어도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나는 제주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육짓것'이었다.

아는 사람도, 취미 생활도 없었다. 하루 일과는 어머니의 간병과 제주에 내려와 시작한 '법'공부가 전부였다. "취미를 갖자" 무심결에 집어든 <월간독자Reader>.

글을 쓰고 채택되면 '소정의 원고료'를 준다기에 내가 쓴 글을 보냈다. 그것도 그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마감 날'.

학창시절 육상부를 했었다. 그 때 경험을 짧게 담았는데 그게 됐다. "어라?" 재미가 들렸다. 이후 <좋은생각>, <샘터>에도 내 글이 실렸다. "내가 소질이 있나?" 부모님은 이 소식을 듣고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니?"

"소설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는 생각도 잠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절박함이 살아났다. 시기가 맞았고, 시작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소설가로써 한 발짝을 내딛었다.

"소개가 늦었네요. 신인 작가 '차영민'입니다"

"소설이 뭘까?" 공부를 제대로 하자 싶어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도서관을 뒤지며 '소설'에 대한 이론 공부를 시작했다. 2011년이었다.

모 출판사 공모전인 '나는 작가다' 프로젝트를 포함한 여러 공모전에 참여했다. 글 쓰는 법은 직접 부딪히며 배웠다. 모르는 건 물어봤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본격적인 습작기는 1년 남짓. 2012년 나를 알아봐준 은인 '새움 출판사'를 만나 첫 소설이 나왔다. <그 녀석의 몽타주>다.

내 첫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이는 열일곱이지만 얼굴 나이는 서른다섯인 '안동안'이라는 캐릭터가 겪는 일상 에피소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내 얘기냐고? 사실 "그렇다" 목욕을 하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이건 써야해" 마음을 먹었다. 100% 내 얘기는 아니지만 가령 고등학교 때 일명 '빵(담배)'를 뚫어줬던 경험이 가미되긴 했다.

이 책을 쓸 때 가장 중요했던 건 '쉽게 읽히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독자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독자도 중요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다른 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래 봬도 '팬레터'를 받은 몸이시겠다. 많진 않지만 초판이 다 나갔다. 작가로서의 삶? 계속 '전진'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살아가는 열혈 청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자 소설가인 차영민(27)씨. ⓒ뉴스제주

"왜 편의점이냐고 물으신다면…" 제주로 간 젊은 작가의 알바학개론

편의점을 선택한 이유. 물론 '생계'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소'라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편의점에는 '5대 진상님'이 있다. 한 명 소개하자면 아, '소녀감성 아저씨' 얘기를 들려줘야겠다.

그는 중국 황실에서 키웠다는 개 '차우차우'를 닮았다. 사자와 곰을 섞어놓은 듯 생겼다는 그 개 말이다. 어찌 보면 무섭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그 얼굴을 닮았다.

그는 '비'가 올 때만 편의점에 등장한다. 그것도 '보슬비'가 내리는 날만.
그는 편의점에 들어서 맥주를 한 캔 산다. 편의점 안에선 음주행위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아랑곳 않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본다. 그리곤 나에게 말을 건다. "차 작가, 그거 알아? 내 가슴에 소녀가 울어"

가슴 속 소녀는 열일곱 꽃띠. 그는 40대다. 그리고 애가 셋이다.

나의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에세이 <효리 누나, 혼저옵서예:제주로 간 젊은 작가의 알바학개론>에 실린 이야기다.

글을 쓰며 할 수 있는 일.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낮보다 한산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내게 제 격이다. 편의점 카운터 옆 조그마한 탁자가 나의 두 번째 일터다.

주변에서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편의점 점장님도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좋냐'며 나를 응원한다. 그러기에 할 수 있었던,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을 쓰다보면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편의점'은 내게 아주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입체화시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아주 소박하지만 재밌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명 '편의점 에세이'. 시장조사를 철저히 했는데 '편의점 에세이'는 내가 독보적이다. 이달 내 두 번째 책이 나온다.

"실패해도 괜찮아" 오늘도 어둠을 달린다

나는 소설을 쓰는 것을 가르치는 일도 한다. "신인 작가 주제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 교육의 목적은 흔해빠진 이론 강좌가 아닌 "나도 하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용기'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영문 모를 '편견'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꼭 책을 많이 읽어야만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읽기와 쓰기는 별개다.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글을 쓰고 싶어도 못쓰는 것은 안 쓰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내 글이 잘 될 것이란 착각 모두 버린 '생각하는 글'을 썼으면 한다.

제주는 '영감'의 섬이다. 이야기 거리를 찾기 위해 발길을 뗐는데 일이 커졌다. 제주를 알다보니 제주도에 대한 역사가 궁금해졌다. 정리가 되지 않은 역사, 어둠에 가려진 역사.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파고들어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아니겠는가? 제주를 배경으로 한 '탐라도'를 써보려 한다. 아, 물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소설가가 나의 '전업'이 될 때까진 계속할 생각이다.

누군가는 나를 불안하게 본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안정과 돈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실패해도 괜찮다. 밤 10시, 나는 여전히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어디일지 모르는 길을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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