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굽이굽이 도로를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서자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서자 아직 마르지 않은 합판냄새가 났다.

오늘(16일) 문을 연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번지 '기억공간 re:born'이다.

▲ 기억공간 re:born. ⓒ뉴스제주
▲ 노랫가락을 따라가니 기억공간 re:born 옆집 대문 앞에서 조그마한 추모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뉴스제주

세월호 사고로 주인을 잃은 '아이들의 방'이 그곳에 있었다. 아이들의 교복, 교과서, 운동화, 가정통신문, 그리고 너무나도 시렸던 4월의 그 날 아이와 함께했던 휴대전화까지 26개의 기억이 담겼다.

언뜻 언뜻 낯이 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3반 예슬이, 친구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줬던 4반 차웅이, 친구들을 구하겠다며 갑판에서 선실로 다시 돌아간 2반 온유.

그리고 예지, 주희, 태민이, 혜선이, 순범이, 은정이, 하영이, 혜경이, 지현이, 수진이, 성호, 민성이, 윤민이….

▲ 기억공간 re:born, 그리고 아이들의 방. ⓒ뉴스제주

이날 전시는 유난히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엄마들이 많았다.
5살, 10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오지수(39)씨는 "애들이 있다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아직까지는 사진을 보는 것도 마음이 착잡하지만 매일 눈물을 흘리고, 슬퍼만 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 아이들과 함께 기억공간 re:born을 찾은 오지수(39)씨. ⓒ뉴스제주

이 공간 탄생에 함께한 김동현(39·시민단체 간사)씨는 "이 곳은 기획부터 공간, 행사준비까지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함께한 '다 같이 만든 공간'"이라며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도 아주 많이 오셨다. 관심이 많았다"며 "공간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들의 마음이 비슷비슷한 것 같다"고 전했다.

'기억공간 지킴이' 황용운(36)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고민이 많았다"며 "친구들이 향하던 곳에 기억과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에 (제주에)오게 됐다. (공간을 만드는 일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감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 기억공간 지킴이 황용운(36)씨. ⓒ뉴스제주

아이들이 캄캄한 바다 안에서 잠든 후로 만 1년. 366번째 4월16일이 밝았다.

기억공간 re:born은 화요일을 제외한 매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그들을 기억해 줄 발걸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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