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소망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꿈 이야기

민호가 처음 이 곳을 찾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민호는 제멋대로 되지 않으면 책상을 걷어차고 달아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는 수업 도중 친구와 다퉈 선생님이 결국 수업을 포기했던 일이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인지능력이 있는 장애아동을 놀려 아이가 이 곳을 떠난 적도 있다. 민호는 좀처럼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 민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다. 선생님들의 집요한 관심과 칭찬이 그제야 와닿았을까? 민호는 같은 반 장애아동을 잘 보살펴 '모범상'을 받았다.

민호의 엄마는 중국 사람이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제주에 터를 잡은 엄마는 경마장을 전전하는 아빠를 대신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민호가 이 곳을 찾은 것도 그맘때였다. 서귀포시 중정로 95-9. 아이들만큼 예쁜 벽화를 따라 주택 끄트머리에 자리한 '소망지역아동센터'다.

▲ 소망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는 주택 안 골목 예쁜 벽화가 눈에 띈다. ⓒ뉴스제주

민호는 2권의 사진집을 낸 어엿한 '사진작가'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사진프로그램을 통해 4명의 아이가 개별 작품집을 냈다. 2013년도에는 아이들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도 열렸다. 특히 민호가 두각을 드러냈다.

▲ 아이들이 낸 사진집 중 민호의 사진집 일부. ⓒ뉴스제주

현재 중학교 1학년이 된 민호는 여전히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재주가 참 많은데도 스스로 '해도 안 되는 아이'라 여긴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다가온다.

민호에게는 아직 뚜렷한 꿈이 없다. 그러나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사진' 또한 민호에게는 계속 하고 싶은 일이 됐다.

▲ 민석이가 6학년 때 쓴 시 "아빠가 화난 날" ⓒ뉴스제주

민석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시다. 화가 난 아빠의 모습을 '도깨비'에 비유하던, 아빠를 유난히 무서워하던 민석이….

처음 본 민석이에게는 분노가 가득했다. 친구들이 조금만 건드려도 화르륵 타올랐고, 손이 올라가기 부지기수였다.

민석이는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도,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내뱉는 막연한 말이었다.

그런 민석이에게 '음악가'라는 꿈이 생겼다.
바우처를 연계해 학원비를 지원 받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모집 기간이 끝난 오케스트라를 찾아 사정사정해 오디션도 봤다. 마침 첼로 파트가 비어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된 민석이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을 배우면서는 단 한 번도 결석 해본 일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지환이는 올해 소망지역아동센터에 왔다. 작년까지 다른 곳에 있었지만 그 곳에서 관리를 부탁받았다. 아이는 잘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 밑에서 혈육이 아닌 삼촌, 고모와 함께 산다.

아직은 이 곳에 오는 것을 어려워한다. 피시방, 집, 운동장… 아이를 찾으러 다녀야만 한다. 하지만 언젠간 꿈을 꾸게 될 지환이를 위해 그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망지역아동센터에는 민호와 민석이, 지환이 뿐만 아니라 지구처럼 둥근 공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축구시합을 하고 싶다는 호성이, 궁금한 별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은하, 개를 좋아해 사육사가 되고 싶은 은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꼭 결혼을 하고 싶다는 현수, 꿈이 많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정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돼 엄마를 돕고 싶다는 승민이, 만화가가 돼 사람들 얼굴에 웃음을 그려주고 싶다는 지빈이 등 27명의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강미경 센터장은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한부모 가정뿐만 아니라 정말 가슴 아픈 친구들도 많지만 누구 하나 악한 아이는 없다"며 "이 꼬리표가 되레 낙인효과를 만들어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급하게 아이들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아이들은 기다려줘야 한다. 끌었다가 놔주기도 하고, 혼도 냈다 받아주기도 해야 한다. 아이들을 믿고 사랑으로 기다려줬을 때 오는 대가는 너무도 달콤하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도 돌이킬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큰 성장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소망지역아동센터 강미경 센터장. ⓒ뉴스제주

강 센터장은 "아이들에게 '꿈을 꾸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한다"고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양육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시계는 어른들의 시계보다 느리다. 특히 취약계층의 아이들의 시계는 더더욱 그렇다. 아이들의 꿈은 우리의 내일이다. 이해와 애정어린 눈길로 아이의 하루를 기다려준다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됐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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