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정폭력 신고 해마다↑ 올해 646건 접수·138건 입건
구제방법 홍보·후속조치 마련 시급… ‘폭력의 대물림’ 막아야

▲ 4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구속된 남편 현모(30)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부검 결과 아내 A씨의 사인은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규명됐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도내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013년 2216건, 2014년 2702건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뉴스제주

삼도동 아내 폭행치사 사건

“그 집에서는 밤새 도망 다니는 소리가 났어요.”
이웃 주민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 물건 집어던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찬바람이 불던 새벽과 어느 봄날에도, 묵직한 발걸음이 한 쪽으로 향하더니 문이 쾅 닫히길 반복했다. 둔탁한 진동이 밀려오면 이내 세 살배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온 동네에 울러 퍼졌다.

“그때 환하게 웃던 얼굴이 눈에 밟혀서…”
지난해 여름. 아이 엄마가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뼈밖에 남지 않은 팔다리에 멍이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토끼눈을 한 이웃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 엄마는 환한 웃음으로 온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고 한다. “그냥 넘어졌어요 아주머니.”

“경찰은 그냥 갔지. 없는 척 하니까”
그해 봄. 아이의 울음은 도돌이표였다. 밤새 참다못한 이웃들이 112에 신고했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희미한 조명이 꺼졌다. 똑똑똑. 노크에도 반응이 없었다. 경찰은 돌아갔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았다. 그 집으로 향하는 좁은 길목에 노란 테이프가 붙었다.

“죽을 것 같았으면 말이라도 하지.”
지난달 4월 26일 새벽 6시35분. 아이 엄마는 들것에 실려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아이의 얼굴에도 파랗게 멍이 비쳤다. “아내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한 남편 현모(30)씨는 다음날 폭행치사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외상성 경막하출혈. 아이 엄마의 눈가에는 핏덩이가 고여 있었다.

▲ 4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구속된 남편 현모(30)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부검 결과 아내 A씨의 사인은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규명됐다. ⓒ뉴스제주

여전히 매 맞는 아내

제주지역 가정이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도내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013년 2216건, 2014년 2702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중 형사 입건된 경우는 2013년 320건(14%), 2014년 299건(11%)에 불과했다.

올해는 4월말 기준 646건의 신고가 접수되고 이중 138건(21%)이 입건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신고 645건·입건 60건)보다 입건된 건수가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합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13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간 폭력 발생률은 45.5%에 달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고작 1.8%에 그쳤다.

가정폭력사건 피의자 재범률은 2008년에 7.9%, 2009년 10.5%, 2010년 20.3%, 2011년 32.9%, 2012년 32.2%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제주가족사랑상담소 김명수 소장은 “제주의 경우 학연·지연 등으로 뭉쳐진 좁은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수치심을 감내하면서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특히 부모의 경우 아이에게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참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제주가족사랑상담소 김명수 소장은 “제주의 경우 학연·지연 등으로 뭉쳐진 좁은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수치심을 감내하면서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특히 부모의 경우 아이에게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참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뉴스제주

피해자가 막상 신고를 결심하더라도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을 단순히 가정 내 불화로 치부하면서 외면해온 관행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발표한 ‘2014 제주특별자치도 여성·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27.1%가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를 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이 4대 사회악에 포함되면서 각 경찰서에 여성청소년 수사팀을 신설하는 등 적극 단속하고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사법적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폭력의 대물림’ 막으려면

전문가들은 숨은 피해자에게 구제방법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명수 소장은 “가정폭력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며 “실제로 상담소를 찾는 대다수가 과거 치료를 받은 분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경우”라며 도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를 주문했다.

2차 피해 등을 줄이기 위한 후속조치도 시급한 상황이다.

김 소장은 “신고에서 판결·치료까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부부가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폭력이 재발하거나, 가해자가 쉼터에 찾아와 협박을 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양 쪽이 함께 상담·치료를 받으며 부부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가해자들 중 70~80%가 어릴 때 가정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며 "오늘날 모든 범죄가 가정폭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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