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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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팔십평생을 살아오면서 그간 내 주변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일도 세월이 지나 되짚어 보면 이제야 이해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며, 그 사람이 그 때 왜 그랬을까? 하고 두고두고 의문이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1998년 6월 4일 제주도지사 선거 후보로 출마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현직지사 S는 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W 후보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S는 나에게 말했다.

“공천을 못 받은 저는 이제 출마할 수 없게 되었으니, 선배님이 나서셔서 W후보가 당선되어 깃발을 휘날리며 별도천을 건너올 때 우리 모교 후배들이 느끼는 수모를 막아 주십시오. 나의 모든 조직을 동원해 도와 드리고, 정책자료도 몽땅 드릴 터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 통해서 들은 게 아니라, 그와 만난 자리에서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고, 전화로도 수차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 당시 나는 금융기관에서 일생을 마치고 정년퇴직하여 감귤과수원에 매달려 있던 터였다.

DJ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나랑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략했고, 한나라당에서 한 자리 하려고 들락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도지사 출마를 포기해 버린 상태라, 거대야당이면서도 도지사 후보를 낼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나를 도지사 후보로 내세울 수밖에 없이 한라라당은 나에게 손을 뻗친 것이다.

느닷없는 출마 요구에 결심을 못하고 있는데 민주당 공천에서 떨어진 현직 S지사가 적극 협조하겠다는 제의를 해 옴에 따라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후보출정식 전날 S 지사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에 모 식당에서 단 둘이 조반을 같이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다음 날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나갔다. 한 시간 가량 여러 가지 말을 나누고 일어서 나올 때 그는 “이제 사무실에 가면 기자회견 하여 불출마 선언 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 식당 안주인에게 자기 대신 도지사 출마하는 분이라며 나를 인사소개까지 시켰다.

승용차에 오르기 직전에는 수행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를 켜안고 “건투를 빕니다.”라고 까지 응원해주며 헤어졌다.

선거 사무실에 돌아와 참모들과 S 지사와의 아침 식사 결과를 말씀드리고 있는데, 사무원 한 명이 황급히 뛰어 들어와 “S 지사가 무소속 출마선언했습니다.” 라고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하겠다고 말하며 방금 헤어졌는데....불출말선을 출마선언으로 잘못 들은 거 아냐? 도청 공보실로 확인해 봐.” 하고 지시했다.

도청 공보실에 확인해 본 결과 분명히 출마선언 기자회견이 맞다고 했다. 조반 같이 먹고 헤어진 지 30분도 되지 않아 출마 선언 기자회견이라니....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다니, 배신감에 차가 떨렸다.

나는 공당의 공천을 받아 이미 출마선언을 한 이상 끝까지 간다는 자세로 선거운동하면서도, 배신자에 대한 배신감과, 같은 고등학교 동문끼리 표를 가르는 분열행위에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S지사가 물려주겠다던 조직도 없어졌고, 정책과 관련한 자료도 전혀 받아볼 수가 없어진 마당이라 승산이 없다는 것을 초반부터 감잡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우리 두 사람 모두 고배를 마셨고, W 후보의 승리였다.

1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따금씩 불쑥불쑥 드는 의문이 그것이다.

“그가 왜 그랬을까? 현직 지사의 체통과 위신이 있으련만, 어찌 그리 손쉽게 약속을 뒤집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보곤 했었다.

어느 날 친한 선배와 저녁을 같이 하면서 또 다시 이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다. 나는 “솔직히 말씀드려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현직 지사였고, 나와 조반 같이 먹고 난 후 불과 3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에 약속을 뒤집고 출마한 이유를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왜 그랬을까?” 하고 말씀드렸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선배가 “그것도 몸람서?(모르는가?) 그 날 아침 단 둘이 만나자고 한 것은 지금까지 공천운동 등으로 사전 선거운동하느라 이미 많은 자금을 썼으니, 자네더러 그것을 보충해 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해 우회적으로 돌려 조반 같이 먹자고 말한 것인데, 자네는 그 숨은 뜻은 모르고 그가 진심으로 말한 줄 알고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하고 와 버렸으니, 괘씸해서 바로 출마선언해 버린 거 아닌가. 자넨, 서울대학 나왔젠 해도(나왔다고 하는데도)되게 멍청하네.” 하고는 갈갈갈갈 웃어제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내 자신이 멍청한 게 맞았다. 하지만 그 때 만약 그뜻을 알아차렸다해도 사전선거 비용을 보충해 줄 능력도, 자신도 없었고, 그런 부정과는 손잡을 생각도 없었으니, 이제와서 그냥 멍청이란 말 들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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