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다툼 이어 조례안 두고 도정-의정 간 전쟁 재개될 듯
농수위, 문광위 "이대로라면 조례안 전부 보이콧하겠다" 선언

예산 전쟁에 이어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간에 또 다시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번엔 '조례안' 전쟁이다.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행정에서 보조금을 집행할 시 명시된 사업에 한해서만 예산이 지출되도록 변경됐다. 보조금 집행에 대한 관리 강화를 위해 '지방보조금 심의위원회'도 생겼다.

문제는 이 '지방보조금 심의위원회'가 자칫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심의위가 보조금 편성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심의하게 되면, 의회의 역할을 제한하거나 빼앗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은 예산을 편성하고, 의회는 이를 검토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 제출된 수많은 조례안들. ⓒ뉴스제주

게다가 행정에선 각종 사업 추진에 따른 예산을 집행하려면 그 근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조례를 만들어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러다보니 행정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반드시 관련 근거를 제정한 '조례'가 필요해진다.

실제로 이번 제2차 추경에서 원희룡 제주도정은 세부적인 사업집행을 위해 각 사업에 관련된 조례안을 65건이나 만들어 의회에 제출했다.

이를테면 제주특별자치도 도정소식지 발행부터 문화의 집 설치 및 운영, 제주메밀산업 육성 및 지원 등 하나의 사업마다 일일이 조례를 제정해 관련 근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많아졌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렇게 제정된 조례 이외의 사업들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지원 근거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행정에서 예산을 투입할 수 없게 된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제주도의회 일부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은 이번 회기에서 "조례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제주도의회 의회운영위원회(위원장 이선화)는 1일 김용구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을 비롯한 도청 관계 부서 관계자들을 의회운영위원장실로 불러 이번 제2차 추경안에 따른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 도의회 각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이 자리했다.

이번 추경안을 두고서도 서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됐으나 정작 논란은 '조례안'에서 터졌다.

박원철 농수축경제위원장이 먼저 이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박 위원장은 "이번 회기에서도 조례안이 일괄해서 많이 들어와 있다. 지방보조금 심의위원회도 생긴 마당에 이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바뀐 지방재정법에 따라 명시된 사업만 집행하라고 해서 자꾸 그러는데 그건 정말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다른 위원회에선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소속 위원회에선 조례안을 다루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조례를 만드는 취지는 좋은데 세부항목으로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 경우엔 어떻게 할거냐. 어려운 단체의 경우, 일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는 곳에는 해당이 안 되니 지급하지 않을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장애인경제협회나 사회적경제 관련 시설들에서 운영비나 인건비 등 지원 근거가 사라지게 될 수 있어 의회에서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거다"고 설명했다.

이에 안창남 문화관광스포츠위원장과 이선화 의회운영위원장도 "부작용이 많다. 공동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소속 위원회에서 조례안을 심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집행부에 밝혔다.

김용구 실장은 "조례 제정이 안 되면 예산편성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필요하다. 예산을 안 줄려는 게 아니라 주려고 하니 그 근거가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말했다.

강승부 제주도 총무과장은 "조례개정 작업을 하는 이유는 사업명이 누락되면 못 받게 되니까 거기에 누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사업명만 세부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위성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근거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 부기되는 모든 사업의 세세목까지 사업명(조례)이 있어야 하는 것이냐"며 "지사가 다른 사업을 추진하고 싶으면 조례를 만들지 않고선 못하는 것이냐.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조례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박 위원장은 "나중에 지방재정법이 또 바뀐다고 하더라도 한 번 바뀐 조례들을 다시 돌려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조례개정안을 다룰 때 신중해야 하는 것"이라며 "현행 조례에서 융통성을 가지고 사업집행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과도한 지방분권 침해다. 해결책 마련되지 않으면 조례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차 표명했다.

만일 도정에서 제출된 조례안들이 줄줄이 '보이콧'되면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집행 근거를 확보할 수 없게 돼 이는 결국, 다시 도정과 의정 간 예산 전쟁의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