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지원조례, 타 시도처럼 반영하지 않을 시 전부 '보이콧' 경고
14일 오전까지 적절한 대답 회신 요구, 기대에 부응 못할 시 처리불가 방침 밝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위원장 박원철) 소속 도의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농수위 박원철 위원장은 회의를 진행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정회를 선포했다.

박 위원장은 양치석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장에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거 같으니 낮 12시까지 시간을 드리겠다"며 "그 이전에 대답을 주지 않을 경우, 사업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경고했다.

▲ ⓒ뉴스제주

농수위 의원들이 제주도정에 강력하게 항의한 이유는 보조금 지원조례에 명시한 조문 내용 때문이다.

지방재정법이 올해 5월 개정되면서 행정에서 보조금을 민간단체에 지원할 시 그 지원근거를 명시하지 않으면 집행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제주도정은 그동안 추진 중이던 모든 개별 사업들에 대해 일일이 조례안을 만들어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다보니 제주도의회 역시 개별 안건들을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번 제333회 임시회에서만 130건에 달하는 보조금 지원조례를 심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졌을뿐만 의회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행정에서 만든 보조금 지원조례를 검토하기 위해 도정 내부에 '보조금심의위원회'가 조직됐다. 집행부의 예산 집행을 살피는 기관이 도의회인데, 행정에서 이런 권한을 수행하겠다는 것이 '옥상옥'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 왼쪽부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소속 좌남수 의원, 하민철 의원, 박원철 위원장, 허창옥 의원, 위성곤 의원. ⓒ뉴스제주

# '그 밖의...' 조항 없는 보조금 지원조례, 제주도만 왜?

이 때문에 도의원들은 의회의 고유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려는 방식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농수위 의원들이 더욱 반발하고 나선 것은 타 시도에서 입법예고한 보조금 지원조례들과 달리 제주에선 의회를 견제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서다.

위성곤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동홍동)은 "보조금 지원조례로 예산지원 근거를 직접 규정으로 명시하는 것은 지나치게 지방자치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민철 의원(새누리당, 연동 을)은 "다른 지방과 비교는 해봤느냐"며 "제주엔 자치시가 없는데 아무런 고민없이 너무 성급히 추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창옥 의원(무소속, 대정읍)은 "충남도 같은 경우엔 '그 밖의 사업에 대해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조항을 넣어 지원 근거를 명시하고 있는데, 왜 제주에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허 의원은 "예산을 집행하려면 지원근거를 마련하라는 것이 이번 지방재정법 개정의 취지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 밖의...'라고 해서 포괄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감귤혁신 5개년 추진계획에 따른 지원조례를 보면 영세·여성 농업인에 대한 지원조항이 이번에 빠졌다.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거 아니냐"고 힐난했다.

이에 양치석 국장은 "일리있는 지적이지만 행정 입장에선 포괄적으로 명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내년부터 시행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러한 답변에 박원철 위원장이 발끈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 올해 지원하지 않고 내년에 하겠다는 것이냐. 조례안 제출하면서 충분히 의견을 수합할 수 있었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

허 의원은 "영농약자에 대한 감귤예산 지원을 5개년 추진계획에 넣어 시행하겠다고 해놓고선 이에 대한 지원근거가 없는 것은 행정에서 정책개발도 안 하고, 신규사업도 안 하겠다는 거 아니냐"며 "이대로 둘 수 없다. 고스란히 도민에게 피해가 가는 사항이라 정회를 선포하고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건의했다.

박 위원장은 "조례에 이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으면 정회도 안 하고 그냥 산회시켜 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좌남수 의원(새정치민주연합, 한경면·추자면)은 "이번 조례안들을 보면 보조금 지원근거를 마련하는데만 혈안이 돼 있다"며 "기존 사업들에 대한 보완이나 수정하는 항목들은 전혀 없다. 지원근거 조례에도 행정에서 원하는 것만 담아놨다"고 비난했다.

박 위원장은 "충남에서 입법예고한 보조금 지원조례 사례들을 보면, '그 밖에 군수(또는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에 대해선 지원한다고 명시했다. 여기 지자체들은 다 바보냐. 제주도 공직자들은 똑똑해서 이렇게 해석한 것이냐"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의회의 권한을 제한시키려는 이러한 조례는 인정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전부 심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사수정 낮 12시 50분]12시에 회의를 속개한 도의회 농수위는 오는 14일 오전까지 회신할 것을 제주도정에 주문했다.

박 위원장은 "지방자치법상의 조례를 제정하고 개정하는 목적은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고 도민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서 조례 제정이나 개정시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출된 조례안들은 통합적인 가이드라인도 부족했고, 지방재정법 개정에 의해 마련한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지방자치를 축소하는 이러한 조례안들을 동의할 수 없다"며 "14일 오전까지 의견을 가져와라. 거기에 포함돼야 할 것은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방안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박 위원장은 "그렇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고 최후통첩 사인을 보냈다.

한편, 이날 농수위는 '제주특별자치도 농지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과 '제주특별자치도 약용․특용작물산업 등 육성 및 지원 조례안'에 대해서만 수정가결 처리하고,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과 '제주특별자치도 농수축특산물공동상표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심사 보류시켰다.

나머지 경제산업국과 농업기술원, 해양수산국 등의 소관업무에 있는 보조금 지원조례들은 전부 잠정 상정보류키로 결정했다. 이들 안건은 14일 도정에서 어떤 해답을 도의회에 제시할 것이냐에 따라 운명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도의회 농수위에서 심사보류 또는 상정보류한 조례안들.

<심사 보류된 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농수축특산물공동상표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상정 보류된 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음식 육성 및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말산업육성 및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친환경농업 육성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지역특화품목 명품화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친환경우리농산물․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토종농작물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귀농․귀촌인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여성농어업인 육성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농어업유산 보전 및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농․임․축․수산업의 수급안정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농어업․농어촌지원에 관한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4에이치활동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산업 육성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 제주특별자치도 항만의 관리․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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