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눈을 가렸지만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낯설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던 중 굳이 눈을 가려야겠냐고 살포시 물어봤다. 내 오른팔을 붙잡은 군사가 가리는 게 파내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며, 광대뼈에 단단하고 뾰족하며 차가운 물체를 슬쩍 들이댔다. 나를 호위하며 안내하는 것도 충분히 벅찰 터인데 구태여 노고를 더할 필요가 없다고 하자, 대답 대신 뒷덜미를 붙들고 낯설지 않은 거친 손맛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금세 호흡은 거칠어졌고 다리가 풀려 보폭이 엉키려고 할 때 멈춰 섰다. 양쪽에 있던 두 사람은 뜻을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로 잠시 대화를 주고받더니 내게 앉으라고 동시에 소리쳤다. 깔고 앉을 것이라도 구해달라고 했더니, 내 오금에 거칠고 깊은 발길질로 대답을 대신 했다. 흙바닥이라 엉덩이 대신 무릎을 꿇고 앉는 게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것이냐고, 정녕 그러하다면 호의를 감사히 받겠다고 하자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때 코로 스며든 지린내가 살짝 섞인 비린내, 딱 그것이었다. 탐라에서 처음 눈 떴을 그때, 저승사자인 줄 알았던 지슬과 처음 만나면서 맡은 그 냄새였다. 내게 무사라고 불러줬던 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와 함께 집에서 먹었던 지슬을 떠올리니 입 안은 금세 침이 고였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생긴 타오르는 갈증을 잠시 잊어버릴 만큼.
여전히 앞이 보이진 않으나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그와 걸었을 때 봤던 파도가 보였다. 강화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물빛, 그 때문에 저승으로 착각할 뻔했던. 지금 내색하진 않으나 어쩌면 착각할 뻔했던 그곳으로 지금 갈지도 모를 스산함이 몰려온 건, 단순히 내 귓가에 날카롭게 스치는 바람 소리 때문은 아닐지. 날카로운 바람이 내 뒷목에 바짝 스칠 때 등골에 땀과 경련이 저절로 일어났다.
기왕 나를 푹 쉬게 해줄 배려라면 눈이라도 풀어달라고 했다. 잠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금방 출렁이는 물결을 직접 보게 해줬다. 안개 대신 어둠과 달빛이 내려앉았지만 확실히 지슬과 처음 만났던 곳이었다. 주변엔 불빛 하나 없었고 오로지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에 비친 달빛과 나를 향한 칼날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는 헛소리 못 골앙 어떵할 거라. 펜안히 가불라이.”
눈을 파는 대신 가려줬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군사가 다시 칼을 높이 치들었다. 여기까지 동행하며 베풀어준 호의, 멀리 가는 길에도 잊지 않겠다고 하자 곧바로 칼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침조차 꼴깍 삼킬 새가 없이 눈앞으로 칼날이 스쳐 지나갔다. 참았던 숨을 토할 듯 깊게 내뱉었고 팔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널브러졌다. 두 사람은 내 얼굴 위로 칼을 몇 번씩 휘두르면서 키득거리더니, 조금 멀리서 낯선 발소리가 들리자 급히 칼자루를 집어넣었다.
“기절했느냐?”
낯선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고갯짓했다. 두 사람이 황급히 나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면서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그였다. 성주 옆에서 시중을 들던 녹색 관복 차림의 사내. 목소리는 냇가에서 자맥질하는 어린 소녀보다 더 가늘었으나, 수염은 노인의 것보다 더 길고 허옇게 서려 있었다. 군데군데 주름도 굵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도대체 나를 어찌하고 싶은지 묻자, 정녕 알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다. 억양은 탐라 사람들과 같았으나 고려말을 제법 잘 쓰는 편이었다.
“너는 지금부터 죽었느니라.”
지금까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하던 판에 확실히 선을 그어주니 고맙다고 하자, 그는 침까지 튀기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네놈은 정신을 바다에 던져버렸구나. 성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살려줄 것이니, 부디 입은 가볍게 놀리지 않는 게 장수의 비결일 것이다.”
그는 내 아래턱을 붙잡고 계속 침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폭삭 속았으니 잠시 눈이라도 붙이라며 다시 천으로 눈을 가렸다. 딱히 속은 거 같진 않았다고 대답할 찰나에 뒤통수에 묵직한 것이 떨어졌다. 조금은 더 그와 얘기하고 싶었으나 묵직한 배려에 힘입어 눈은 힘이 풀려가면서 절로 감겼다.

“이보, 어서 일어나시게!”
누군가 내 뺨을 후려치듯 두드려댔다. 눈을 뜨면서 무심결에 다리를 갑자기 확 들었다가, 그만 근육이 꽉 뭉치고 말았다. 신음이 터질 새도 없이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크고 작은 목조선들이 해안선을 따라 일렬로 정박했고, 줄에 포박된 사람들이 배에 차례차례 오르는 중이었다. 줄 하나에 여러 사람이 엮여서 가는 모습이 걷는 것보다는 질질 끌려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중에 몇몇은 제풀에 쓰러졌는데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몽둥이로 내리치면서 행여 다시 일어나지 못 하면 그대로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일어날 거면 일어나고, 앉아있을 거면 앉아있게.”
갑작스럽게 고성이 귀청을 찢어놓을 듯 강타했다. 바로 내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인데 머리와 수염은 온통 허옇게 서렸고 굵은 주름이 얼굴을 뒤덮은 노인이었다. 한마디씩 할 때마다 위태롭게 달랑거리는 앞니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어쩌면 탐라를 빠져나갈 수 있는 지금으로써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우리를 묶어둔 자들은 탐라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 온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간간이 송나라와 왜, 유구 등등 다른 나라 말이 들려왔다.
“베리지 마라.”
마침, 내 옆을 지나가던 이와 눈을 마주쳤다. 각진 얼굴에 눈이 아래로 축 처졌고 턱 아래로 칼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굵직한 목소리가 말끝에는 반드시 갈라졌다. 차림새는 나와 그리 큰 차이가 없었으나 손에 머리통만 한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옆에 있는 노인이 저자가 우리를 안내해줄 사람이라고 일러줬다. 베리지 말라, 아무래도 버리지 말라는 얘기 같은데 초면에 처음 한 말치고 뜬금없었지만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생겨나게 했다. 계속 눈을 쳐다보면서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베리지 말라난!”하고 소리치는 게 아니던가. 한 번 더 강조해주는 그 마음,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하자 뒷목을 잡으며 다른 데로 가버렸다.
함께 있던 노인은 탐라 사람과 대화가 잘 통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개경에서 평생 뱃사공을 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기력이 쇠하여 지난 몇 해 동안은 장거리 항해를 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특별히 부탁받고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태웠는지 물어보니 다름 아니라 나와 같은 배를 탔던 게 아니던가. 새로운 탐라 부사와 인연이 있어서 동행했다는 그, 탐라로 내려오는 바다가 거칠었고 특히 암초와 스치듯 부딪쳐서 배가 좌초될 뻔했다고. 겨우 탐라 앞바다까지 내려왔으나 큰 파도와 부딪쳐서 몇 사람이 실종되었다던데, 겨우 도착한 항구에는 환대 대신 군사들이 포위해서 눈코 뜰 새 없이 압송되고 말았다고 했다. 몇 차례 심문과 감옥 생활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정녕 탐라부사 어른은 저들에게 처형된 건지 물었더니, 자세한 건 내막은 알지 못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미 시체 여럿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 지금은 어디든 좋으니 이 섬만큼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한 줄에 같은 묶여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와 함께 배를 이끌고 왔던 조졸들이었다.
“재게 일어나라.”
내게 버리지 말라고 했던 자가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포구에 갓 정박한 목선 앞까지 안내했는데,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거기서 천천히 내려왔다. 볼은 턱을 덮을 만큼 살이 축 처졌고 눈도 역시 떴는지 분간할 수 없이 살집으로 두둑했다. 팔다리도 살이 축 처져서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림이 거친 물결 못지않았다. 둥그런 막대기를 손에 들고 우리 앞으로 다가오더니 허리와 다리, 가슴팍을 한 번씩 꾹꾹 찔러댔다. 조졸들은 제 나름대로 덩치가 있어서 끄떡도 하지 않았으나 내 옆에 선 노인은 허리를 찔리자마자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난 막대기가 내 허리로 향하기도 전에 다리 힘이 갑자기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라는 고함에 힘을 내봤지만 단단히 뭉친 근육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이건 눈도 성하지 않고 팔다리가 가늘어서 어디다 쓸 곳도 없겠구먼. 얻다가 쓰라고 이런 걸 가져왔는가?”“어신 것보단 나을 거 닮은디예.”
“아니야, 아니야. 이런 건 옮기다가 뒈진다니까. 난 송장은 필요 없으니 저 늙은 것이랑 이 건 안 받겠네. 쓸만한 것 좀 가져오란 말이야!”
목선에서 내려온 자는 고려 말을 사용했다. 개경보다는 강화에서 쓰는 말투였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봤더니 대답 대신 막대기로 내 정수리를 후려쳤다. 내 얼굴에 발을 뻗자, 노인이 재빨리 다가와서 몸으로 막아섰다. 결국, 배에는 노인과 함께했다던 조졸들만 태우고 유유히 떠났다.
“베리지말앙 고마이이시라. 이디서 못 나가민 어떵될지 모른다이.”
우리를 관리하는 자가 다른 데서 남은 사람들과 줄을 이어줬다. 노인은 내 대신을 배를 걷어차였는데 기침할 때마다 피가 섞어 나왔다. 새로운 배가 들어올 때마다 낯선 이와 마주했으나 번번이 비슷한 이유로 남고 말았다. 같은 행동을 수차례 반복하자 어느덧 날이 저물었고 포구에는 배가 딱 한 대만 남아있었다. 묶인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예닐곱만이 남아있었다. 대부분 팔다리가 성하지 않거나, 온몸이 고목처럼 마르거나, 기력이 쇠하여 제힘으로 일어나지도 못 하는 자들이었다.
“무사 베렵냐, 경허도 이젠 어떵헐 수가 어시다이. 게난 베리지 말라이.”
끝까지 우리 곁을 지키며 들어오는 배에서 내리는 사람마다 소개해줬던 그가 혀를 끌끌 찼다. 함께 있으면서 숱하게 눈을 계속 마주쳤는데 볼 때마다 베리지 말라는 말은 꼭 챙겼다. 어떻게든 내게 희망을 주려는 걸까, 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저 배에 얼른 올라타라며 줄을 끌어당겼다. 맨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절대 타기 싫다고 악다구니까지 쓰며 버텼으나 그가 몽둥이를 던지자 입을 꾹 다물었다. 과연 저 배는 어디로 가는 걸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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