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논란 1] 보육대란 현실화 우려
정부와 도청 모두 도교육청에 책임 떠넘기기 '급급'

내년 645억 원의 누리과정 예산 중 458억 원이 2016년도 새해 예산안에 편성되지 않으면 학부모들이 부담해야 하는 어린이집 보육료가 30만 원 가량 인상된다.

이 30만 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무상보육'을 실현하겠다며 정부에서 약속한 보육료 지원액이다. 이 예산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전출되지 못하고 각 시·도 교육청에서 자체 예산으로 해결하라는 통에 보육대란 현실화가 우려되고 있다.

전국 각 지방의 시·도 교육청에선 현실적으로 이를 집행할 예산이 없다. 지난해도 대부분 지방채를 발행해 집행했기 때문에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와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 ⓒ뉴스제주

이러한 가운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위원장 오대익)는 도교육청의 2016년도 새해 예산안 8270억 원 중 81억 5800만 원을 조정했다. 전체 예산안 중 1%에 불과한 액수로 비춰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위는 누리과정 어린이집 부담분에 대한 예산을 마련하고자 정규직 인건비에서 무려 73억 1010만 원을 삭감 조치했다는 점이다. 이외 10개 사업에서 추가로 더 삭감한 뒤 76억 3400만 원을 누리과정 지원예산으로 편성했다. 이 액수는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2개월 분량이다.

이러한 교육위의 계수조정 결과에 제주도교육청은 "매우 당혹스럽다"며 “이대로 본회의에 상정되면 이석문 교육감이 부동의를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감이 부동의를 하게 되면 도의회가 계수조정을 다시 해야 하고 회기가 길어진다. 지난해에도 제주도의회는 연말까지 원희룡 도정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다가 겨우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허나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올해 5월에 지방재정법이 변경되면서 한 해 예산의 연도폐쇄기가 2개월 앞당겨져 모든 사업에 대한 정산을 12월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 예산안 통과가 늦춰져 12월을 넘기게 되면 진짜 ‘예산 파국’ 사태를 맞게 된다.

#논란의 아이콘 ‘누리과정’ 대체 왜?
5세 미만 어린이들의 보육과정을 다루는 제도의 이름이 왜 하필 ‘누리’과정일까.
그렇지 않아도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과 어감이 비슷해 이 제도가 정치적인 의도에서 태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누리과정은 지난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만 5세 공통과정’에 대한 명칭공모를 통해 결정된 이름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이 2012년 2월 13일에 당명을 개정했으니, 새누리당이 ‘누리과정’을 표절(?)했다고 보면 되겠다.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만 5세 공통과정’이란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보육 및 교육과정을 통합한 것을 말한다. 이 교육과정은 지난 2012년 3월부터 시행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인 2013년부터는 3∼4세로 확대됐다.

‘누리과정’으로 만 5세의 어린이들은 모두 같은 내용의 과정을 배우고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월 20만 원의 보육 및 교육비를 지원받게 됐다. 2013년부터는 월 22만 원으로 올랐고, 현재는 29만 원(보육료 22만 원 + 방과후과정비 7만 원)이 지원되고 있다.

월 보육료가 30만 원 가량이 지출되고 있으니, 이 제도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무상보육’인 셈이다.

그런데 왜 이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교육청과 행정 당국 간에 극심한 대립을 겪는 것일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모두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기능이 같다.

하지만 두 곳의 관할 기관이 다르다.
유치원의 관할 기관은 교육과학기술부이며, 유아교육법을 적용한다. 만 3세에서 5세 사이의 아동들이 유치원을 다닌다. 교육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엄연한 ‘교육시설’이다.

이에 반면 어린이집은 0세부터 5세까지의 보육에 중점을 둔 시설이다. 교육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 관할하며 영유아보육법을 적용받는다.

이렇게 관할 주체가 전혀 다른 상태에서 ‘누리과정’으로 교육과 보육을 통합시켜버렸기 때문에 이에 따른 예산집행을 어디서 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다고해서 누리과정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동안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둘 중 어디로 보내느냐에 많은 갈등이 있어왔고, 이에 따라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갈등이 깊어져갔다.

이런 사정으로 누리과정 도입으로 보육과 교육이 통합되면서 풀어 나가려 했던 것이기에 수혜자 입장에서는 환영받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그 모든 갈등의 씨앗, 돈
2012년 3월부터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의 보통교부금으로 집행했다.
2012년에야 만 5세만 해당됐으니 정부가 그리 큰 부담을 안지는 않았으나, 문제는 그 다음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무상보육’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해서 정부는 누리과정 집행에 따른 예산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해야 했으나, 막대한 예산 집행 부담을 떠안게 되자 법을 뜯어 고쳤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에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유치원에 대한 누리과정 예산 부담분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에서 부담토록 변경하는 꼼수를 부렸다.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중앙정부에서 맡지 않고 각 지방정부의 책임으로 떠넘긴 것이다. 어차피 유치원의 관할청이 교육부였기 때문에 교육부 산하에 있는 각 시·도 교육청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까지도 교육청으로 떠넘겼다는 것 때문에 지금의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어린이집 보육에 대한 관할 기관은 엄연히 보건복지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육청의 책임으로 몰아갔다는 점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심각한 오류다.

전국 시·도 교육청의 반발은 당연했다.
그러자 정부는 예비비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 각 교육청으로 교부했다. 17개 시·도 교육청이 나눠 가져야 했으니, 모자란 부분은 지방채라도 발행해서 집행해야 했다.

올해만 누리과정 예산이 전국적으로 4조 원에 달했다.
더군다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1조 5000억 원 줄어들어 더욱 지방교육재정이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5년에도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떠넘겼다.

5064억 원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교부 받았지만,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올해 발행한 지방교육채무는 무려 6조 1426억 원에 달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또한 올해 357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더욱 지방교육청들의 숨통을 조였다.

정부는 올해 10월에 '지방재정법 시행령'과 '지방자치단체 교육비특별회계 예산편성 운용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면서 만 3∼5세 누리과정 예산을 각 지방교육청에서 의무지출경비로 편성해야 한다고 못 박아버렸다.

사실 이는 법령 위반이다.
애시당초 어린이집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상 교육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청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결국, 박근혜 정부가 무상보육을 실현하겠다고는 하면서 자기 주머니 털 생각은 안 하고 ‘손 안 대고 코풀기’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두고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정부에서는 광범위하게 보면 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다고도 하지만 관할 기관이 따로 있는데 단순히 시행령 개정으로만 교육청이 이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법률 모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래서 지난 10월 5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법률 개정은 불법적인 것”이라며 당장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전가하지 말고 중앙정부에서 의무지출경비로 지출할 것을 촉구했다.

제주도교육청의 입장 또한 이와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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