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하량은 줄었는데 8600원까지 떨어진 노지감귤
내년 1월까지 가공용 감귤 수매 예약 벌써 '끝', 버릴 곳도 없는데...

16일 아침, 부랴부랴 일어나 7시에 접수한 차례가 296번이었다. 맙소사.

김 모(36) 씨는 이날 오전 8시부터 1월 분 가공용 감귤 수매에 따른 예약 전표를 배부한다고 해서 1시간 가량 일찍 나섰다. 허나 감귤 가공공장 사무실 앞엔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 상태였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 가공용 감귤 수매 전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농민들. 이날 받은 전표들은 내년 1월에야 수매할 수 있다. ⓒ뉴스제주

어림잡아도 100여 명은 넘게 보였다.
이곳은 제주시 와산리 마을 어귀에 위치한 감귤 가공공장. 제주시 조천읍 관내에서 감귤을 재배하고 있는 모든 농가들이 모이는 곳이다. 김 씨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전표 배부받을 예약자 명단에 겨우 이름을 올렸다. 296번. 김 씨 앞에 무려 295명이나 대기하고 있다는 거다.

전표를 배부할 오전 8시가 다 되어가자, 공장 관계자가 나와 공지했다.

"오늘은 500명까지만 받습니다. 너무 많이 오셔서 이대로 다 받게 되면 1월달 수매 물량이 끝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겨우 1월에 단 한 번 가공용 감귤을 판매하고 끝이라는 말인가. 김 씨는 혼자 왔기 때문에 단 한 개의 전표 뿐이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감했었는지 일부는 처자식들까지 온 가족을 동원해 전표를 받아가고 있었다.

아침 7시에 도착했던 김 씨는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가공용 감귤 수매 전표를 받을 수 있었다. 수매일자는 2016년 1월 17일. 이날 이전까지는 다른 수매차량들로 꽉 차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김 씨는 창고에 재겨놓은 파치(비상품 감귤의 제주어) 물량이 떠올라 머리 속이 하애졌다. 게다가 아직 수확하지 못한 감귤밭을 생각하니 더 까마득해졌다.

그래서 김 씨 뿐만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대다수의 농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번만 붙이고 나머진 다 버려야겠네"

이날 전표 1번을 받았다는 또 다른 김 모(61) 씨도 "일찍 와서 이거 받아 놓으면 뭘하나. 1월에 한 번만 팔 수 있다면 그냥 버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날 사람이 많이 몰릴까봐 좀 더 이른 새벽 4시에 왔다.

그렇게 500명만 받는다던 전표는 오전 9시 정도가 되자 동이 났다. 그 후로 온 사람들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야 했다. 늦게 왔다는 죄(?)로 가공용 감귤 수매를 전혀 못하게 된 셈이다. 억울할 뿐 별 도리가 없다. 새벽 4시에 온 사람도 있었으니.

▲ 가공용 감귤 수매 현장. ⓒ뉴스제주

#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

제주도내 어느 지역엘 가나 상황은 비슷하다.
와산이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남원 같은 곳은 지난해 와산처럼 감귤을 실은 차량을 끌고와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남원 일대는 제주의 북쪽보다 재배면적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대기자들이 그만큼 더 많다.

감귤 가공공장 입구에서부터 먼저 온 순서대로 차량을 세워둔 후 공장의 문이 열리면 한 대씩 들어가 그날 하루 준비된 수용량 만큼 채워나가는 식이다.

지난해 와산에 위치한 가공공장에선 보통 하루에 30대 차량 분의 가공용 감귤을 수용했다. 그러다가 1월이 되자 15차 분으로 줄였다. 공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평균 60∼80대의 차량이 대기줄에 주차돼 있다. 하루에 빠져 나가는 차량이 15대니 꼬박 4∼5일은 기다려야 수매할 수 있는거다. 그러니 그동안 차량은 공장 주변 도로에 묶여 버린다. 그렇게 차량을 대기시켜 놓고 운전자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밭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선 농민들은 매일 같이 아침 일찍 공장으로 나와야 했다.
앞 줄이 줄어들면 그만큼 차량을 따라서 움직여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여나 조금 늦게 도착하면 뒷차에게 추월당해 수매 순서를 빼앗긴다. 안 그래도 속상한데 미칠 노릇인 셈이다.

그래서 와산에 위치한 가공공장에선 수매물량 방식을 전표를 끊어주는 형태로 변경했다. 편의만 좀 나아졌을 뿐, 실제 수매 상황은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 가공용 감귤 수매 가공공장에서 16일 배정받은 농민들이 싣고 온 감귤을 가공용 통에 붓고 있다. ⓒ뉴스제주

# 지난해 15만 톤 수매, 올해는 8만 톤 뿐. 왜?

2015년산 노지감귤은 12월 16일 현재까지 21만 1000톤이 출하됐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5만 톤 가량 적은 양이다. 하지만 여기엔 가공용 감귤 수매량까지 포함된 양이다. 가공용을 제외한 상품 출하량은 13만 6000톤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014년산은 14만 7000톤이었다.

실제 출하량은 약 1만 1000톤이 적은 셈이다. 즉, 지난해엔 유독 가공용 감귤 수매 물량이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제주도는 총 15만 톤 가량의 가공용 감귤(파치)을 수매했다.

허나 올해는 8만 톤 뿐이다.
이에 대해 제주특별자치도 감귤특작과 관계자는 "지난해는 특이한 경우"라며 "롯데 등의 기업에서 수매 물량을 전폭적으로 늘려 2년치 물량을 한 번에 받았던 것이다. 원래는 한 해에 8만 톤 분량의 가공용 감귤을 수매하는 것이 적정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지난해 수매한 많은 물량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도 지난해처럼 또 다시 늘릴 수가 없어 현재의 8만 톤 물량을 더 확대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수매 보전가 50원은 현재 지난해처럼 지원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가에선 21kg 1콘테나에 3200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한 번에 수매할 수 있는 물량은 60콘테나로 제한돼 있다.

이에 따라 김 씨처럼 내년 1월에 단 한 번만 수매할 수 있는 사람들은 60콘테나 이외의 물량을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보니 비상품 감귤들이 비정상적인 경로로 시장에 유통되기 일쑤고, 죄다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일부 농민들은 화가 나 농협 앞 도로에 쏟아부어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감귤은 연년생 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나무에 열린 열매를 전부 따내고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그 다음 해에 감귤이 열리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농가에선 비상품 감귤을 따는 족족 그냥 맨땅에 버려야 한다. 하루 노동력도 7만∼13만 원 선이다. 5∼6명을 고용하면 40만∼60만 원 정도 소요된다. 가공용 감귤 1회 수매하면 대략 20만 원 정도 뿐이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물론 고용된 인부들에게 상품 감귤만 수확해달라고 독려하지만, 감귤을 따다보면 비상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농가는 '죽을 맛'인 거다. 안 딸 수는 없고 비싼 노동력 들여가면서 따려니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행정에선 가공용 감귤 수매 정책 이외에 시장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농가에서 농·감협이나 행정시 및 읍면동에 시장격리 신청을 하면 격리 물량을 확인해 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주산 노지감귤의 시장가격은 지난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다.

▲ 16일 노지감귤 시장가격(위)과 연도별 가격정보.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출하연합회.

# 출하량은 줄었는데 가격은 오히려 하락... 8600원.

대개의 경우,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라 공급량이 줄어들면 시장가격은 상승한다.

제주도 관계자가 밝힌 현재 노지감귤 시세는 평균 1만 1100원이다. 지난해가 1만 1200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허나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출하연합회에서 공시한 16일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 노지감귤 일일가격은 8600원으로 나타났다. 15일에 9400원을 기록했었으나 무려 800원이나 폭락하며 올해 최저가를 기록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건, 출하량이 전날보다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16일 거래량은 총 573톤으로 전날 기록한 618톤 보다 7%나 줄었다. 가격은 9%나 하락했다. 보통 전날보다 물량이 줄어들면 대체로 가격이 오르건만, 800원이나 떨어졌다는 것은 감귤의 품질이 크게 손상됐다거나 수요량이 평소보다 더 급감했다는 뜻이다.

최근 제주산 노지감귤이 좋은 가격을 받았던 건 지난 2013년이다. 이 때 10kg 한 상자의 평균 가격이 1만 4434원(서울 포함 전국 도매시장 기록, 제주감귤출하연합회 자료)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2005년 이래로 가장 높았던 가격이다.

그 이후로 원희룡 제주도정에 들어 제주감귤 시세는 급락했다.
2014년에 무려 4000원 가량 폭락해 1만 771원을 기록했다. 올해산 노지감귤은 현재 1만 832원을 찍고 있다. 상황이 지난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노지감귤의 기준가격이 되는 서울가락동 도매시장에 한정해 보면 상황은 더 안 좋다.

서울가락동 도매시장에서의 2013년산 노지감귤 가격은 1만 4816원이었고, 2014년은 1만 1164원이었다. 올해는 1만 1005원으로 지난 2009년 9896원 이후 최저가격을 잇고 있다.

이러다보니 농가에선 6년만에 찾아 온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 이날 너무 많은 대기자들이 몰려 내년 1월분이 모두 마감돼 버렸다. ⓒ뉴스제주

# 감귤혁신 5개년 계획, 출발부터 삐그덕... 원희룡 향한 흔들리는 민심.

우연찮게도 감귤가격의 황금기는 원희룡 도정이 출범하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우근민 전 도정에서의 지난 감귤가격 시장가격을 보면 상당히 좋은 가격을 유지해왔다. 2010년에 1만 3060원, 2011년산 노지감귤은 1만 3893원을 받았다. 그 이후 2012년에는 조금 낮은 1만 2410원을 보였고 2014년에 1만 4434원이라는 최고 호조가를 경신했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가격만으로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순 있겠으나 기록상으로 나타난 수치를 보면 원희룡 도정에서의 향후 성적이 어떻게 도출될지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평균 가격만 형성됐어도 그럴려니 할텐데 8600원대까지 떨어진 현재의 시장 상황을 보면 암담하기만 하다.

원인을 그저 궂은 비 날씨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2014년산 노지감귤의 시장가격 폭락은 엄연히 날씨 탓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원희룡 지사가 감귤 수확 한 달 전에 느닷없이 발표한 '감귤 유통 5단계 제도개선'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비상품으로 분류됐던 2번과의 일부 규격을 상품으로 분류해 시장가격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전체적인 출하 물량을 줄여야 가격 보전을 노릴 수 있을텐데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설령 그렇게 하겠다고 한들 수확하기 바로 한 달 전에 기습적으로 발표한 지난해의 정책결정은 명백한 실수임이 분명하다. 농가들의 의견 수렴도 없이 책상에 앉아 몇몇이 모여 결정하다보니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5단계로 선과를 하기 위해선 도내 모든 선과장의 선과기 드럼을 새로운 규격에 맞게 교체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나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제도는 올해야 도입됐다.

그래서 올해 '감귤혁신 5개년 혁신계획'을 발표했다.
논란이 됐던 가공용 감귤 수매가 보전은 2018년까지 점차적으로 지원금을 줄이면서 2019년에 폐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허나 감귤실명제 도입과 계통출하 70% 확대 등 큰 그림만 그렸을 뿐 이외엔 구체적인 실천계획이나 방안은 아직도 제시되지 못했다. 게다가 이를 책임지고 주도하겠다던 양치석 농축산식품국장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공무원을 그만뒀다.

▲ 가공용 감귤가공공장 주위에 늘어선 차량 행렬들. ⓒ뉴스제주

올해 감귤폭락의 원인은 좀 복합적이다.
가장 큰 원인이 잦은 비 날씨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시장가격 혼란에 대처하는 행정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의원들이 소비촉진을 위한 홍보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문이 있고서야 행정이 움직였다. 가공용 감귤 수매 물량을 늘리라는 주문에도 꿈적않자, 의원들은 시장격리 조치를 주문했다. 이렇듯 한 발 앞선 정책 시행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일단 관망, 후 조치'로 농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는 원희룡 도정이다.

지금 원희룡 도정은 감귤정책에서만큼은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는 '감귤혁신 5개년 계획'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이날 가공용 감귤 수매 현장에서 농민들은 현 도정을 향해 거침없는 불만을 쏟아냈다.

"원희룡 지사가 처음엔 잘할 것처럼 보이더니 지금 보니 영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나아져 보이는게 없으니 내년에도 감귤 농사로 계속 지어먹고 살아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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