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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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은행 현직에 있을 때에도 은행 대출을 받으면 당연히 사례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추석이나 설에 정종(청주의 상표)두 병이나 사과 한 상자 보내는 정도의 인사를 챙기는 것도 크나큰 사례였다.

내가 말단 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장차 책임자가 되면 이런 것도 시정해야 되겠구나 하는 색각을 하곤 했다.

일부 은행직원 중에는 대출을 해 주고 신세를 망치는 경우를 보곤 했다. 내가 차장, 지점장으로 승진하면서 내 밑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단속하엿고, 나 자신이 그렇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 나의 이런 방침이 알려지고 나니, 우리 은행 거래선들은 대출은 받아 가면서, 정기적금 가입 등 예금에 대해 부타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해 가 버린다고 부하 직원들로부터 은근히 원망을 듣곤 했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 제주도에서 가장 큰 사료공장을 착공하였고, 우리 은행에서는 공장 신설에 필요한 시설자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오랜 기일동안 공사가 진행되더니 드디어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

사장은 지점장인 나를 찾아와, 준공식에 와 달라고 초청장을 주며 그 동안 자금지원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각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무엇인지 물었더니 “약소합니다, 저의 성의올씨다.”하고 내밀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거액의 시설자금을 지원했으니, 직원들 회식이라도 한 번 하라는 뜻에서 돈 봉투를 주는구나, 여기며 받았다. 사장이 돌아가고 난 후, 차장을 불러 “직원회식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봉투를 놓고 갔으니, 회식 한 번 합시다.” 하며 봉투를 건네주었다. 차장이 내 앞에서 봉투를 뜯어보더니 “이게 뭡니까?” 하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봉투 속에는 여자용 스카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공장 시설자금 거액을 지원해 주었으니 당연히 직원 회식을 하라는 뜻으로 돈 봉투를 주는 것으로 지레 짐작한 내 양심이 속보인 셈이다.

평소 그러지 않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창피해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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