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원들, 제주미래비전 '지적' 퍼부어
과업 완료 11일, 설 명절 빼면 단 3일만에 수정되긴 힘들 듯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의지 혹은 고집으로 도민 혈세 16억 9200만 원을 들여 수립된 제주미래비전이 오는 11일에 마무리된다.

원래 용역 수립기간은 지난해 1월 12일부터 10개월 동안이었지만 내용을 보충해야겠다면서 3개월을 더 연장했다. 최종보고서는 1200페이지에 달한다. 용역 수행은 국토연구원과 (주)도시건축소도, (주)한국종합기술, (주)시아플랜건축사무소 등 4개 기관이 컨소시엄을 이뤄 맡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2일 '제주미래비전'의 연구용역을 맡은 국토연구원과 제주도정으로부터 결과보고회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도의원들은 제주도정과 용역진을 향해 맹렬한 비판 세례를 퍼부었다.

지적을 받은 내용들 중 가장 문제시 됐던 건 제주미래비전에 농업과 교육, 복지 분야가 굉장히 소홀히 다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1200페이지나 달하는 보고서 분량에 복지 분야는 단 50∼60페이지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현정화 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장은 "제주도 한 해 예산의 20%를 다루는 분야가 복지인데 이렇게 소홀해서야 되겠느냐"고 질타했다.

뿐만 아니다. 교육 분야에선 대학교육과 국제학교, 평생교육에 관해서만 다뤄졌다. 농수축경제위원회 소속 도의원들도 "1차 산업이 제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면서 "이렇게 할거면 차라리 폐기하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해양 분야에선 단 1페이지에 불과해 제주미래비전이 너무 환경과 개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작성됐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 제주미래비전 수립용역 결과보고회. ⓒ뉴스제주

미래비전에 담긴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의원들이 더 화를 냈던 건 질의응답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된 질의를 할 수 없어 불만이 속출했다는 점이다.

애초 제주도의회는 각 상임위원회 별로 제주미래비전에 대한 업무보고를 하루씩 연이어 4일 동안 갖기로 했었다. 허나 지난달 23일부터 제주에 32년만의 폭설과 한파가 몰아치면서 제주도 전역이 비상상태에 빠지자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2일 단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다보니 4개 상임위 소속 도의원들 모두가 한 자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자니 개인당 7분밖에 주어지지 못했다. 이날 26명의 의원이 질문에 나섰다.

이러니 제대로 된 질의답변이 이뤄지지 못했다.
집행부와 용역진에서 답변이 길어지면 하나같이 의원들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 질문에 대한 답변만 짧게 대답하라"며 답변자의 말을 끊기가 일쑤였다.

이 때문에 질문하는 의원도 답답했고, 답변에 나선 용역진이나 집행부 관계자들도 숨통이 막히긴 매한가지였다.

보다못한 박원철 농수축경제위원장은 "이래서 각 상임위별로 하자고 했던 것이 아니냐"면서 "연구비를 반납하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 심도있게 질의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집행부나 용역진에선 같은 얘기만 반복하면서 자신들의 용역결과를 홍보하는 시간에 그칠 뿐이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좌남수 의원도 "시간이 너무 짧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용역진 들러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강성균 의원은 "지적사항에 대해 보완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는데 용역진에선 자기들이 말하고 싶은대로만 주장하고 있으면 이 자리가 의미가 있긴 하겠나"고 자조섞인 발언까지 내뱉었다.

의원들의 불만이 속출하자 이선화 의회운영위원장이 중재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이런 식으로 질의응답이 이뤄지고 나서 2월 11일에 최종 선택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느냐"며 "용역진은 집행부와 협의해서 마무리 시점을 연기해서 가는 것에 대해 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오는 16일부터 제338회 임시회가 개회되는데 업무보고 자리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며 "지적한 부분들에 대해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하니 연기하는 것이 더 성의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김정학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은 즉답을 회피했다. 국토연구원 소속 조판규 책임연구원도 "지적받은 부분이 일부 도움이 되긴했다"고 답했으나 "11일에 납품하고 그 이후에 수정할 것이 있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예정대로 오는 2월 11일에 제주미래비전 연구용역이 마무리가 된다면 이날 의원들이 지적하고 수정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용역진은 단 3일만에 보완을 해야 한다.

용역진은 주말도 반납하고 과업을 수행했다고 했지만, 오는 6일부터는 설 명절 연휴에 돌입하기 때문에 앞으로 용역을 수정 보완하는 기간은 3일부터 5일까지 단 3일 뿐이다.

설 명절이 2월 10일까지이므로, 이 3일안에 수정 보완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주미래비전은 이대로 11일자로 마무리된다.

허나 이날 의원들이 지적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단 3일만에 수정 보완하기는 힘든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내용 자체가 매우 부실하다는 교육과 농업, 해양, 복지 분야를 3일안에 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10개월도 모자라 3개월을 더 달라고 했던 용역진이다.

이러면 이날 제주도의회에서 가진 제주미래비전 수립용역 결과보고회는 무늬만 '보고회'일 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미 데드라인이 11일임을 의원들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는 예상된 결말이다. 어찌보면 결과보고회 자체도 '짜고 친 모양'으로까지 비춰진다.

제주미래의 100년 대계를 구상하고 만들었다는 제주미래비전은 원희룡 도정의 남은 임기까지가 실질적인 유효기간이다. 도정에선 "유효기간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민선 7기 도정을 이어받을 다음 도지사가 과연 전임 지사의 업적을 이어가려고 할 것이냐는 의문이 따른다.

게다가 애초 '제주미래비전'은 제주도의회에서 승인해줘서 제주도정이 수행한 것이다. 도의회 의원들이 제주도정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이는 어차피 되돌아 올 부메랑이다.

결국 김광수 의원이 말한 것이 딱 그대로다. 김 의원은 "연구진에서 수정 보완할 것이 아니면 이 자리에서 지적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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