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꿈꾸는 제주의 문화예술 미래
젊어서 아름답지만 가진 것이라곤 열정뿐인 제주문화예술의 현 주소

전 세계 영화 시장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그 가운데서도 상업영화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Hollywood)'. L.A에 있죠.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패러디하며 영화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인도의 한 마을 뭄바이(원래는 봄베이, Bombay). 처음엔 '짝퉁' 영화 공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이젠 당당히 그 작품성과 시장성을 인정받아 '발리우드(Bollywood, Bombay와 Hollywood의 합성어)'로 거듭났습니다.

제주에서 이제 갓 태어난 신생 제주 청년예술단체인 '몬딱스'는 그런 발리우드를 따라 제주에서도 '탐라우드'가 조성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꿈꾸며 문화예술의 힘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 제주 청년예술단체 ‘몬딱스’의 연극 <해우소 이야기, 2016> 배우와 스태프들. ⓒ몬딱스

몬딱스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제주도내 고교 연합 영화 동아리인 '오리지널(Original)'에서 만난 이들이 조직한 단체인데요.

오리지널 멤버들은 고교 생활 3년여 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모여 단편영화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해 보면서 제주에서의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고 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대학시절이 떠올랐네요.

2013년이 되던 해, 당시 고교 3학년생이던 이민규(22)와 임태형(22), 오해성(21, 당시 고2) 등 오리지널 일부 멤버 6명이 모여 그해 9월 17일에 '몬딱스'를 창단했습니다.

몬딱스는 '모두'를 뜻하는 제주방언 '몬딱'과 영어에서의 복수형을 가리키는 's'를 붙여 만든 이름이라네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 앞에 둔 고3 수험생들이었지만 영화를 만들고 연극무대를 선보이고 싶다는 열정 앞에선 그 무엇도 방해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우스카니발의 <몬딱 도르라> 음악을 배경으로 삼고 뮤직비디오 한 편을 연출했고, 국내 교육현실을 풍자하고파 <해우소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연극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그 열정 가득한 무대를 보고선 큰 감명을 받았었죠.

▲ 지난 2014년 2월에 선보였던 몬딱스의 연극 <해우소 이야기>의 당시 멤버들. ⓒ몬딱스

특히, 몬딱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민규는 당시 직접 <해우소 이야기>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도맡았습니다. 몬딱스 단원들은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수능시험 준비와 병행하며 외우고마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러한 열정을 꽃피우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단편영화 4편과 2개의 연극무대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올해 1월 15일부터 21일까지는 <해우소 이야기>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재가공돼 세이레아트센터에서 다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2년여 만에 다시 찾았던 무대에선 새로운 얼굴들이 가득했습니다.

여주인공으로 분했던 고채희 씨는 이제 갓 대학 1학년생인 20살이었고, 극 중 현다슬 역을 맡았던 최예지 양은 제주고 3학년생이었네요. 이제 2월이니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장 역할을 맡은 오태경 씨도 20살, 섬뜩한 눈매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 고은초 씨도 20살이었네요. 교장 역할을 맡은 임태형 씨는 22살로 이민규 대표와 친구랍니다. 단원 중 가장 훈남이라는 오해성 씨는 한 살 어렸고, 오해성 씨와 동갑인 김윤기 씨는 자폐아 역을 맡아 놀라운 연기로 연극 무대 후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답니다.

▲ 지난 2015년 2월에 선보였던 <제주도에 지하철이 생긴다면> 연극 멤버들. ⓒ몬딱스

이밖에도 몬딱스를 이끌고 있는 11명의 스태프들도 모두 고교생이거나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랍니다. 지금은 총 18명이 있네요.

그런데 몬딱스 멤버는 수시로 바뀝니다. 군대를 가야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고, 고교 졸업 후 타 지방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엔 잠시 혹은 후일을 기약하며 헤어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불과 2년 전에 봤던 멤버와 많이 달랐던 거였습니다. 사실 이민규 대표도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동아방송 예술대학교로 진학해서 그의 빈자리를 태형이나 해성이가 채워야 했죠. 민규도 곧 군대를 가야 해서 현재는 학교에 휴학계를 낸 상태입니다.

게다가 몬딱스가 자본이 있는 단체가 아닐 뿐더러 신생 단체다 보니 영화 연출이나 연극 무대 준비를 1년 내내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진 못합니다. 시나리오가 갖춰지면 그 때 새로이 배우를 충원하는 형태로 유지됩니다.

매번 같이 하진 못하더라도 후원 등의 방식으로 항상 매 작품마다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당연하게도 모두 자발적 열정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젊은 열정과 패기가 부러울 따름이네요.

하지만 뜨거운 열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 몬딱스의 2016년도 버전 <해우소 이야기> 연극의 한 장면. ⓒ몬딱스

하나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3개월 정도 소요되며, 연습기간은 대략 1달 반 정도 걸리는데, 다른 건 둘째 치고 식비 해결 문제와 연습장소 마련이 난제입니다. 지금은 지인들의 후원과 펀딩 사이트를 통해서 마련해 가고 있다고 하네요.

또한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영화 연출이나 연기를 누군가로부터 배우거나 지도를 받은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기존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스스로 터득해 나갈 수밖에 없다네요.

[기사수정 3월 16일]이러한 제주도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보면, 제주도정이 올해 문화예술을 더욱 발전시키겠다고는 하지만 워낙 문화예술의 토양이 척박해 그다지 큰 희망을 갖긴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제주도교육청은 도내 고교 2곳을 선정해 음악이나 미술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예술중점학교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잘 운영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이에 대해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민규와 몬딱스 내에서 PD를 맡고 있는 윤상운(22) 씨가 답했습니다.

"국제대에 연극영화과가 개설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헌데 예술은 많이 보고 다양하게 느껴야 해요. 제주에선 다양한 예술활동을 보고 경험할 수 있는 토양이 부족해서 아직은 시기상조 인 것 같은데, 육지엔 예술고가 여럿 있어서 서로 자극이 되고 경쟁이 돼요. 제주에 예술고가 생긴다면 한 곳 뿐일텐데 그리되면 고립돼서 시야를 넓히려 하기 보다는 기술력 향상에만 몰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부모이고 자식이 예술을 하고 싶어 한다면 육지로 보낼 겁니다. 그런데 인도에 발리우드가 있는 것처럼 제주에도 탐라우드가 있다면, 제주만의 문화지대가 형성된다면 제주에서 예술을 하라고 권할 순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예술고로 인해서 부모와 자식 간의 대립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연기를 하고 싶고, 영화 연출을 하고 싶다는 이들은 그럼 왜 육지로 나가지 않고 여기서 활동을 하는 걸까요.

"물론 육지로 나가서 더 많이 배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직접 우리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재밌고 더 의미가 있어요. 특히 제주에서 지인들끼리 만들어가는 협동심이 남달라서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이 자리를 키우고 있다는 자긍심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곤 합니다."

윤상운 씨의 힘찬 포부가 담긴 답변이었습니다.

▲ 지난 2013년 ‘몬딱스’가 연출한 단편영화 <몬딱 도르라>의 한 장면. ⓒ몬딱스

민규는 제대로 된 뮤지컬을 준비해 보고 싶은 꿈이 있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이제껏 제주시 지역에서만 공연을 선보였는데 서귀포시민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앞섭니다. 직접 자신의 고향인 제주에서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해보이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어깨가 무겁습니다.

매번 연습장소를 구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정에 문의해봤지만 법인이 아닌 순수단체여서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답변만을 반복적으로 들을 때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몬딱스가 제주도내 문화예술단체로서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대표나 단원 모두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들을 딛고 해결해 나가면서 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에 많은 의의를 둔다고 말해 의젓함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죠. 그래서 민규는 기성세대와 제주도정에 바라는 바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청년들은 경험이 적어요. 예산을 지원받으려면 뭐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는데 그런 것을 알려주는 워크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의 문화예술 시장도 성장해야 합니다. 저희들이 하는 연극은 유명한 무대가 아니에요.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거에요. 연기에 대한 피드백도 받아보고 싶고, 제주에선 어떤 배우들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주목받고 싶기도 합니다. 제주도민이 함께 응원하고 만들어가는 단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지난해 8월에 만들었던 단편영화 <민들레씨>의 멤버들. ⓒ몬딱스

그렇다면 10년 후엔 몬딱스가 어떻게 될지 물어봤습니다.

"지금도 중학생들과 세대차이가 크게 느껴지는데 그때면 기성세대가 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들을 이해하긴 힘들겠죠. 해를 거듭할수록 소통이 힘들다는 것이 느껴져요. 그때가 되면 어른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소통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네요"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예술을 하자, 예술정신만큼은 늙지 말자고 애들과 얘기한 적이 있죠."

"나이가 들면 실험정신이 떨어질 것 같은 우려가 드는데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해 보고 싶은 욕구가 들어요.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서 그거 하다보면 10년이 금방 갈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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