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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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나는 꿈에서도 못 가볼 것으로 생각했던 북한을 5박6일 동안 다녀오는 기회를 가졌다. 그것도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이래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 직항노선 KAL 전세기를 타고서 말이다.
제주산 감귤과 당근을 북한에 제공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북한 민화협 민족화해협의회)이 제주도민을 초청한 것이다. 형식은 초청이었지만, 경비는 물론 자부담이었다.
우리가 방북함에 앞서 관계당국으로부터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듣고 갔음에도 잘 지켜지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나는 그 기간동안 남한과 북한 동포들로부터 느낀 인상에대해 말하고자 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도 약하고 조심성도 없고, 소님으로서의 품위 유지나 손님을 대접하는 자세 등등 모두 서로에게 미흡했던 점이 너무나 많았다.
순안비행장에 내려 8대의 버스에 30여 명씩 나뉘어 승차하였다. 북한측에서도 남자 3명, 여자 1명, 기사1명 도합 5명씩 함께 탑승하였다. 우리를 안내한다고는 했지만, 아직 서로 인사교환도 못한 때였다. 그 때 우리 일행중에서 느닷없이 “순한비행장에는 하루에 몇 대의 비행긱 뜨고 내립니까?” 하고 질문하는 분이 있었다.
이 질문은 얼핏 생각하면 군사기밀을 탐지하려는 행위로 오해받을 우려가 컸다. 당황한 내가 오히려 잽싸게 끼어들어 질문자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당신은 제주비행장에 하루에 몇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지 아십니까? 아무 필요없는 질문을 왜 하십니까?” 하고 가로막아 북한 안내원들로 하여금 답변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였다. 대동강을 건널 때는 어느 분이 또 “대동강 물 깊이가 얼마죠?” 하고 물었다. 북한 안내원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왜 자꾸 하는지. 원.....
“대동강 물 깊이도 상류와 하류, 중앙과 가장자리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요, 그만 질문사지요.” 하고 또 내가 나서서 가로막았다. 김일성 종합대학 앞을 지나가는데 “김일성 종합대학에도 의과대학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이 또 나왓다. 이번에는 안내원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종합대학인데 당연히 의과대학이 있지요!” 하고 대답했다. 개선문 앞에서 열설껏 설명하는 여자 안내원에게 “이거 건립하는데 얼마나 비용이 들었습니까?” 하고 질문하는 분도 있었다. 여자 안내원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 내가 또 끼어들어“국회에서 예산통과시킨 일이 없으니, 얼마 들었는지 모릅니다.” 하고 말해버려 주변에 있던 일행들이 한바탕 웃으며 그 순간을 모년했다.
점심먹는 식당 테이블에는 3가지 술과 3가지 음료병이 놓여 있었다. 일행들은 식당 좌석에 앉자 마자 술병 뚜껑을 모두 열고 맛 보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술값은 마신 사람이 별도로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씩 맛만 보고는 식사 끝나자 그냥 일어서 나와 버렸다. 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술값을 따로 계산해야 하는 것인데도, 그 술값을 누가 지불할 것인지 나 몰라라 하고 나와 버려, 본부에서는 엄청난 술값을 계산하느라 애 먹었다고 한다. 다 마시지도 않고 맛본다고 모두 뚜껑을 개봉해 놨으니,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나 보다.
그런가 하면 북측 식당에서는 우리 일행과 북측 안내원을 합친 밥값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식대를 청구해 왔다. 왜 이리 금액이 많으냐고 했더니 “남반부에서 오신 여러분의 신변 안전을 위해 길을 지키고 있는 요원들도 점심을 먹어야지요.” 하는 대답이었다.
길가의 경기병 밥값까지 손님인 우리에게 내라고 하다니.....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단 말이다.
북에 가거든 쓰레기 버리는 것을 특히 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주던 남측 기관원이 백두산 산정에서 담배꽁초를 숲 속에 던져주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이니, 평소 꽁초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밴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그림, 서예, 수예품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판매를 했다. 나는 속으로 ‘누가 이런 것을 살까?’ 하고 의아해 하며, 그저 다른 구경만 했다. 그런데 나올 때 보니, 우리 일행들이 모조리 싹쓸이하여 물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 달러로 계산해야 하는 것들인데, 도대체 달러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갔길래 사이즈가 큰 그림은 3,000만원 짜리라고 했는데, 앞 다투어 차지해버렸다.
북한 안내원들은 줄담배 골초들이 많았다. 그런데 양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5일재 되는 날 아침, 오텔 로비에서 북쪽 지위자와 단 둘이 대면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에 와 보니, 주체사사이 대단합니다. 주체사상탑도 놀이 올라가 있고, 각 고층건물마다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표어가 쓰여 있어, 같은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주체사상은 행방불명인 것 같습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왜냐구요? 남쪽에서 우리가 왔는데, 당신들은 미제 양담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피우고 있습니다. ‘미제놈들!이라고 비난을 외치면서도 국산 아닌 양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주체사상이 행방불명된 게 맞지요?” 하고 웃었다. 그는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그렇게까지 관찰하셨나요?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피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제주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 가운데 몇몇은 평양에서 거금을 주고 산 그림, 글씨, 수예품을 잃어버렸다고 아우성이었다. 평양에 KAL 지점이 없으니까, 수하물을 꼬리표 없이 그냥 맡겼는데 먼저 내린 사람이 잽싸게 갖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런 귀중품들은 수하물로 붙이지 말고 들고 탔으면 좋았을 것을, 수하물로 붙였다가 그만 분실하고만 것이다. 또한 자기 물건도 아닌 것을 아무 거리낌없이 들고 가 버리는 강심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 문화를 향유할 자격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품위를 지키면서 살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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