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땅바닥에서 올라온 비린내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등골에 땀이 채 가시기가 무섭게, 주변의 웅성거림이 내 귀를 바짝 세웠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내 눈에 고려군과 함께 들어오는 탐라 사람들이 보였다. 잠시 일어난 흙먼지로 형체가 희미했지만 그들의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점차 선명해졌고 앞줄에 있는 지슬이 가장 먼저 보였다. 오른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으나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저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찾아라!”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영암부사의 호령이 허공을 찔렀다. 곧바로 군사들이 탐라 사람들 주변을 빙 둘러쌌다. 몽둥이와 발길질로 사람들을 하나씩 땅바닥에 내리꽂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격하게 일어났지만 막상 탐라 사람들은 양팔로 얼굴만 가릴 뿐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드문드문 기침 소리만 들려올 뿐. 바닥에서 비린내가 더욱 진하게 올라왔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그들의 틈새로 끼어들었다. 군사들은 눈이 반쯤 뒤집힌 채 발이 닿는 대로 밟고 또 밟았다. 자연스럽게 내 얼굴과 옆구리에 그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멈추어라!”

영암부사가 소리치자, 군사들이 그제야 나를 쳐다보며 서로 눈치부터 살폈다. 그들의 부축으로 겨우 몸부터 일으켜 입에 머금던 피를 내뱉었다. 영암부사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지슬을 가리키며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그를 따르는 자들의 시선을 내게로 쏠렸다. 얼굴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영암부사는 나와 마침 지슬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혹여, 그자인가?”
“어찌 그리 경솔하십니까?”

눈초리를 세우며 목소리에 힘이 한껏 실었다. 그의 곁을 지키던 부관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눈을 부라리며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나도 똑같이 눈을 부라렸더니 이마에 핏줄까지 세우며 달려들려고 했다. 영암부사가 팔로 그를 밀어내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들 중에 첩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네. 단지 그 때문일세.”
“어찌 그리 경망스럽습니까?”
“뭣이?”
“문관으로서 낯부끄럽습니다.”

영암부사의 얼굴은 더 짙게 물들었고 턱에 날카로운 선이 드러났다. 부관은 그사이 내 멱살을 붙들며 감히 어느 안전에서 혀를 함부로 놀리느냐며, 당장 찢어버리겠다고 소리쳤다. 꼭 그러고 싶다면, 이라 중얼거리며 혀를 슬쩍 내밀었다. 그는 흰자위를 드러내더니 이마로 들이받으려고 했다.

“그만하면 되었다!”

영암부사가 눈을 부라리자, 부관의 눈동자 제자리로 돌아왔다. 멱살을 잡던 손 역시 자신의 허리로 옮겼다. 난 목덜미를 털어낸 뒤 다시 영암부사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물론 다리에 계속 후들거렸고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내 옆구리와 배에 발자국을 남긴 군사 중 한 명이 다가와서 어깨를 빌려줬다.

“과연 보통이 아니로구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그는, 직접 내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못 본 사이 지슬은 얼굴부터 팔다리, 몸 구석구석 드러나는 곳이 온통 퍼렇고 뻘건 멍이 선명했다. 눈동자 역시 붉게 물들었고 나를 바라볼 때 초점이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으나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입 밖으로 침을 흘러나올 뿐. 어깨를 붙들고 흔들어도 계속 나와 눈을 못 마주치더니 급기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코끝에 지린내가 풍겼고 바닥은 김이 피어오르는 액체가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다. 영암부사와 그 수하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며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함께 끌려온 탐라 사람들은 지슬과 비슷한 눈빛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물음은 바람과 함께 흩날릴 뿐. 지린내가 점점 진하게 풍겨왔다.

“난 자네를 믿지만. 저자는, 글글쎄”

영암부사는 뒷짐과 함께 돌아섰다. 군사들은 부관의 손짓에 따라 사람들 모두 왔던 곳으로 도로 데려갔다. 어찌할 셈이냐고 묻자, 당장 어찌할 생각이 없다는 부관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묻자 지금은 자신과 따라오라며 내 어깨를 서너 번 두드리며 앞장섰다.

영암부사 일행과 함께 성주청 내부를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성주가 집무할 때 사용한 건물 앞에는 관복 차림의 사람들이 먼저 당도한 군사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선뜻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우리를 보자마자 무릎부터 꿇었다. 살려달라고 손바닥을 비볐고 머리를 땅에 찧는 자도 있었다.

뒷짐을 진 영암부사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건물 지붕부터 살펴보았다. 그것도 잠시, 눈이 갑자기 동그래지더니 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 역시도 좀처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개경 여느 관청보다 지붕이 높고 넓었다. 까만 기와는 오히려 황실에서 쓰는 것보다 더 고풍스러웠고 낯선 문양도 함께 보였다. 기둥 역시 굵었는데 개경과 강화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무였다. 여기도 문양이 보였는데 분명 새였다.

정확히 뭐라고 지칭할 수 없는 까만 새 문양이었다. 우리를 안내한 탐라 관리도 역시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하였다. 돌로 쌓은 계단 역시 끝이 어렴풋이 겨우 보일 만큼 넓었고 간격도 제법 높았다. 분명 잔잔한 돌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것인데, 우리가 밟아도 계단 속 돌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건 오히려 점점 그 모습이 가까워지는 탐라 관리들의 다리였다. 난 아파서 휘청거린다지만 그들은 영암부사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발끝을 움직이며 다리부터 온몸을 떨고 있었다. 무릎 꿇고 살려달라는 자들의 손끝도 가까이서 보니 떨고 있었다.

“성주는 어디에 있느냐?”

영암부사는 그들 중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성성한 백발에 허리를 곧게 펴지 못 한 노인이었다. 진상품을 담당한다고 스스로 밝혔으며, 다른 건 묻지도 않았으나 살려만 준다면 뭐든 다 하겠다더니 다시 엎드릴 시늉까지 보였다. 아직 엎드린 자들은 모두 살려 달라 하였고, 뒤에 서 있던 자들도 어느새 모두 엎드렸다. 심지어 성주를 대놓고 욕하는 자도 여럿 있었다. 영암부사는 턱에 손을 올렸고 군사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들 앞에 선 나 역시도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고 다리가 떨렸다. 여태 뭘 제대로 먹은 것도 없건만, 괜히 사레가 들려 헛구역질까지 나왔다.

“괜찮은가?”

영암부사가 두 손으로 내 양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눈앞이 핑 돌고 머릿속 깊숙하게 통증까지 몰려왔다. 심호흡 두어 번 하면서 잠시 흐려졌던 눈앞의 초점을 잡았다. 엎드려 있던 자들 중 낯익은 얼굴을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는 성주의 곁을 꿋꿋이 지켰던, 내게 직접 죽음을 알렸던 자였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른 고개를 땅바닥에 파묻듯 숙였지만 분명 확실했다. 중심을 잃고 옆으로 고꾸라지는 척하며 영암부사의 귀를 빌렸다.

“성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곧장 군사들 손에 끌려 나온 그를 향해 영암부사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살려만 달리던 그가, 나를 쳐다보더니 입가의 움직임을 숨기질 못 했다. 곧장 이어지는 매질에도 성주의 행방은 단 한마디도 뱉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거품을 물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군사들의 발길질에 아무런 반응하지 않고 서서히 눈을 감아버렸다. 성주와 아주 가까웠으리라 추측되는 관리들을 여럿 끌어냈지만 누구에게도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에게선 오로지 살려달라는 말이 전부였다. 결국 영암부사는 관리들을 모조리 하옥하라 명한 후 처소로 향했다. 나도 함께.

“심상찮도다. 정녕 자네가 일러준 것들이 하나도 과정이 없는가?”

영암부사는 처소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물부터 들이켰다. 부관을 포함해 모든 수하를 내보냈다.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다시 물을 한 모금 더 들이켠 뒤 내게도 권했으나 손사래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다시 한 번 더 그동안 보았던 것들을 알렸다.

“아무래도 자네가 직접 움직여야겠네. 그 몸으로 괜찮겠는가?”

앉아있어도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안 쑤신 곳이 없었다. 오히려 속까지 울렁거려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당장에라도 가겠으니, 지슬을 풀어달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에게 목례하고 다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괴성이 바깥 공기를 채웠다. 문 앞을 지키던 군사들의 그림자가 갈팡질팡했고. 영암부사는 허리춤에 찬 칼을 꽉 붙들고 벌떡 일어났다. 내 손끝에서는 낯설지 않은 경련이 휘감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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